<사마에게> 한 장면

<사마에게> 한 장면 ⓒ (주)앳나인필름

 
폭탄 파편이 온몸에 박힌 만삭의 산모가 병원으로 들어온다. 산모도 아기도 위험하다. 지체할 시간 없이 산모의 배를 가르고 배 속의 아이를 꺼냈는데, 가까스로 꺼낸 아기는 숨을 쉬지 않는다. 의사가 재빨리 아기의 가슴이 움푹움푹 들어가도록 심장 마사지하고 등을 문질러보지만 아이는 점점 파래져 간다. 수술실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던 나는 이 프로세스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손이 움찔거렸다.
 
속으로 소리쳤다. 아기 등 그만 문지르고 빨리 거꾸로 들어서 엉덩이를 쳐주세요! 제발 시간이 없어요. 빨리요! 그제야 의사가 아이를 거꾸로 들고 엉덩이를 치기 시작한다. 너무 늦어버린 것인가. 아이는 축 늘어져 숨을 쉬지 않는다. 나는 차마 더는 보지 못하고 고개를 의자 밑에 처박고 울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소리를 죽이느라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허구라도 견디기 힘든 장면인데, 이건 실제 장면을 찍은 다큐멘터리다.
 
슬픔, 공포, 안타까움, 죄책감, 무력감이 한데 섞여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되었다. 울음소리가 들린다. 내 울음인지, 내 옆의 누군가의 울음인지 분간조차 안 되는 순간, 기적처럼 아기가 운다. 아기가 울고 있다. 아기가 숨을 쉰다. 버텨주고 살아나 준 아기가 고맙고 감격스러워서 또 울었다.
 
무관심했고 무지했다, 이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이 영상은 시리아 알레포 지역에서 부정하게 정권을 유지하려는 자들이 이에 저항하는 알레포 시민들을 탄압하며 벌어진 참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마에게>의 한 장면이다. 시리아 내전이라는 단어는 뉴스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들어와서 박제된 고유명사처럼 내게 무감각했다. 무관심했고 무지했다. 이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바람만 불어도, 비만 와도, 내 한 감정 추스르지 못하고 호들갑 떠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이 영상을 찍은 '와드'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가 민주화 운동에 발을 디디면서 이 모든 기록을 영상으로 찍기 시작한다. 애초 영화 제작을 위해 만들어진 영상이 아니라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진실을 알리기 위한 목숨 건 투쟁의 결과물이다. 영상이 발각되는 날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운명이 돼 버릴 테니.
 
도시는 연일 이어지는 폭격으로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하나둘 도시를 떠나 난민이 되었고, 남은 사람들은 부서진 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떠나는 것도 용기, 남는 것도 용기. 집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은 길 위에서 죽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폭탄을 맞아서 죽는다. 안전한 퇴로는 없다.
 
와드는 이곳 알레포에서 다친 시민들을 치료하는 의사 함자와 결혼하고 딸 사마를 낳는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고 금세 새날이 올 줄 알았다. 영영 일상이 무너져 버릴 줄은 몰랐다. 집 근처에 폭탄이 떨어지고 병원에 환자들이 넘쳐나면서 일이 많아진 함자와 와드는 병원 안, 쪽방에서 갓 태어난 사마와 생활한다. 태어나보니 전쟁터인 사마는 돌도 되지 않았지만 웬만한 폭탄 소리에 놀라지도 않는다. 와드는 이게 더 가슴 아프다. 딸에게 보여줄 세상이 전쟁밖에 없으니.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온몸이 흙먼지에 덮인 채 다섯 살가량의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 들어온다. 흙먼지에 덮인 아이의 얼굴에는 눈물 두 고랑이 깊게 패어 있다. 형으로부터 동생을 받은 의료진이 CPR를 해보지만 아이는 이미 죽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두 형제는 차갑게 식어버린 동생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키스한다. 굵은 흙 눈물을 흘리며 또 만지고 또 키스하고… 차마 이 사실을 믿을 수도, 이 자리를 떠날 수도 없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불행은 소년들을 집어삼켰다.
 
미래를 위해, 자유를 위해 카메라를 든 와드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기록하고 있는 주인공 '와드-알-카팁'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기록하고 있는 주인공 '와드-알-카팁' ⓒ 엣나인필름


병원 바닥은 발 디딜 틈 없이 환자와 시체들로 가득하다. 침대에도, 바닥에도, 의료기구에서도 피가 흐른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통곡이 고막을 찢고 심장을 짓이긴다. 영상을 찍던 와드는 촬영을 멈추고 사마가 있는 쪽방으로 달려간다. 맨정신으로 보고, 견디고, 기록하는 일은 극한의 고통을 넘어선다. 방금 죽은 아이가 사마 같고, 통곡하는 어미가 자신 같다.
 
병원 인근에 폭탄이 떨어졌다. 사마는 먼지가 자욱한 곳에서 우유병을 들고 힘차게 빨고 있다가 내동댕이친다. 옆에 있던 누군가 '왜 나를 이런 곳에 태어나게 했냐고 원망하는 모양이다'라고 말하고, 둘러앉은 사람들은 그런 사마를 보며 잠시라도 근심을 잊고 웃는다. 모두 웃고 넘기지만 와드는 그럴 수 없다. 이런 곳에 태어나게 만든 것이 한없이 미안하고 미안해서. 그런 사마가 살아갈 미래를 위해, 자유를 위해 와드는 카메라를 더 굳건히 들었다.
 
폭격은 당해도 추운 건 또 어쩔 수 없다며 병원 안으로 들어온 폭탄 옆에서 손을 녹이는 사람들. 살아있는 자들에게 삶은 계속되고, 그러니 추운 건 춥다. 과일이나 채소는 이미 소진되어버렸고 분유조차 귀한 때에, 이웃집 남자는 감을 하나 구했다. 줄줄이 딸린 자식들을 피해 몰래 아내에게 감을 건네며 아직은 떫으니 잘 익으면 와드랑 나눠 먹으라고 한다. 아내는 세상없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감을 하나 받았으니 오늘은 행복하다고 한다. 나는 영화를 통틀어 이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행복을 찾아내고 기꺼이 그 순간을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이라니.
 
지옥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사랑이 있으니 그곳은 지옥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를 더 깊숙이 껴안으며 서로의 삶을 지탱해주고 살아갈 희망이 되어준다.
 
분홍색 도화지를 잡고 선 사마

무자비한 정부군은 병원마저 폭격하고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즉사했다. 그 시간 병원 밖에 있었던 와드 가족은 생명은 유지했지만 버틸 힘도 돌아갈 곳도 잃었다. 이제 그들도 떠나야 한다. 가까스로 협상이 타결되어 남아있던 사람들이 이송되었고 와드 가족도 몰래 영상들을 싣고 시리아를 떠나며 영상은 끝난다.

와드가 세상을 향해 여기 좀 봐달라고 카메라를 든 것처럼 나도 시리아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글이라도 써서 힘을 보태고 싶다. 이런 작은 관심들이 모여 기적이 일어나길 꿈꾸며.
 
사마는 하늘이라는 뜻이다. 폭탄 없는 파란 하늘, 구름이 떠다니는 평화로운 하늘을 바라는 염원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겨우 뭔가를 붙잡고 설 수 있는 사마가 부서진 도시를 배경으로 분홍색 도화지를 잡고 서 있다. 사마가 붙잡은 도화지에는,
 
 사마에게 한 장면.

사마에게 한 장면. ⓒ 영화사

 
'여기는 알레포. 정의란 무엇인가?'
 
.......... 묵직한 메시지가 뒤통수를 때렸다.
 
이 영화는 전 세계 영화제 62관왕 &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9%를 받았다. 제72회 칸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핫독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영국독립영화상에서는 다큐멘터리 최초로 작품상 수상, 제40회 런던 비평가협회 다큐멘터리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으며, 올해 2월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다큐멘터리 부문 예비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며 벡델 테스트 페스트 선정 2019 최고의 영화 3위, 영화 비평 매체 인디 와이어, 영국 유력지 가디언, BBC 등 해외 매체가 선정한 올해의 영화 TOP 10에 선정되기도 했다(출처- 영화 홈페이지).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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