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록>의 한 장면

<기억.록>의 한 장면 ⓒ MBC

 
2019년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MBC가 기획한 다큐 < 1919-2019, 기억.록 >(아래 '기억.록')이 지난해 12월 30일 100회로 1년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유관순 편으로 시작한 <기억.록>은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는 물론 한국전쟁 참전용사와 민주화 운동가 등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각계각층 인사를 조명했다.

<기억.록> 종영 소회가 궁금해 지난 20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프로그램을 연출한 김호성 PD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김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프로그램 종영 소감이 궁금합니다.
"짧은 프로젝트도 아니었고, 일반적인 레귤러 프로그램의 경우 4주에서 5주 텀으로 하는데 저희는 매주 제작했었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했어요. 아무래도 더 바쁘게 움직이니 <기억.록>에 애정이 갈 수밖에 없었죠. 지금은 시원하기도 하지만 섭섭한 느낌이죠."

- 처음엔 '이걸 언제 다 하나'란 생각에 막막했을 것 같아요.
"처음 시작할 때는 굉장히 막막했죠. (시작할 때) 저희가 칠판에 월별로 인물들을 적었어요. 후배들이 편집방에 '12월이 올까'라고 장난을 치기도 했어요. 저희에겐 굉장히 막막한 시간이었는데 5~6월 후엔 금방 지나더라고요. 6월 정도 지난 후엔 익숙해져서 쭉쭉 갔는데, 마지막달인 12월이 되니 또 시간이 안 갔어요. 저도 그렇고 최별 PD도 그렇고 99회와 100회를 준비하려니 부담이 컸던 것 같아요. 그때 시간이 잘 안 갔던 것 같아요."

- 마지막 녹화 끝났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마지막 촬영이 서대문 형무소였어요. 메인 촬영은 다 끝나고 나머지 밴드의 인서트를 촬영하러 갔는데 원래 작가들은 안 나오잖아요. 근데 (그때는) 작가들과 다른 회차 PD까지 다 나와서 서로 박수를 쳐주며 마무리했거든요. 서대문 형무소에서 찍었던 많은 것들이 떠올랐어요. 제가 서대문 형무소 많이 갔었거든요. 촬영 초반 추울 때 고생하며 드라마 타이즈 찍던 것들이 (머릿속을) 지나가더라고요. 그러나 슬픈 느낌은 아니었어요. 100편 다 완성했다는 뿌듯함이 있었고요. 사실 촬영도 촬영이지만 마지막 종편 때는 빠진 사람 없이 모두가 다 왔었거든요. 그때 마음이 짠했어요. 종편까지 끝난 뒤엔 이젠 모든 게 끝났구나란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약간 뭐랄까. 허한 느낌도 들었어요."

- 상도 많이 받으셨던데.
"대외적 상은 방심위를 비롯한 여가부 등 네 개를 받았고 내부에서는 격려상 등을 받긴 했는데, 방통위에서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받을 걸로 시작해 마지막에 여가부에서 양성평등 미디어 상과 장관 상 받았죠."

"조진웅씨는 촬영 중간 중간 김구 선생에 대해 이야기 했어요"
 
 김호성 MBC PD

김호성 MBC PD ⓒ 이영광


- KBS에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신경 쓰이진 않으셨어요?
"프로그램을 준비하던 초반에 비슷한 포맷을 제작 중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어요. 그래서 초반엔 신경이 쓰이긴 했는데, 방송이 시작되니 각자 다른 색을 갖고 있더라고요. 방송되는 인물 중에 겹치는 부분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인물이 달랐고요. 나중엔 경쟁이라 느끼기보단 시청자들에게 꼭 기억해야 할 인물들을 같이 알려주는 동반자 같은 느낌이었어요."

- 포맷이 다양했어요. 뮤지컬 포맷도 있었고 드라마 타이즈로 한 것도 있었고요. 그렇게 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PD마다 색깔이 있어요. 저는 드라마타이즈를 많이 했던 거고 다른 PD들은 각자 색에 맞게 제작했었어요. 저, 최별 PD, 노성준 PD, 남민지 PD가 있는데 각자가 가진 색깔을 작가와 협의해서 표현하고 아이디어를 짜는 거죠. 아이디어 짜는 게 힘들었어요. 인물에 맞는 포맷으로 하기 위해 계속 아이디어를 짰죠. 선임 PD인 제가 봤을 때, 각자의 색이 있어요. 각자의 색에 맞게 만들다보니 굉장히 다양해지는 거죠."

-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가 3.1운동 편이었던 것 같아요.
"회의할 때 플래시몹을 기획해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꼭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플래시몹 자체가 셀럽뿐만 아니라 연기하는 배우, 합창단 등 많은 사람이 모여야 하잖아요. 그래서 준비도 많이 해야 했고, 오랜 기간을 투자해야 했어요. 어려움이 많은 편이었지만, 노성준 PD가 열심히 준비해서 만들었어요."

- 제작하며 어려웠던 부분 있었을 것 같아요. 
"제 기준으로 힘들었던 건 김상옥 편이 있어요. 용인드라미아에서 촬영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총 쓴 거예요. 총만 쓰는 게 아니라 특수효과로 파편이 튀기고 벽이 뚫리는 걸 했는데, (이전에) 전 해본 적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밤늦게까지 촬영이 진행되었고, 날씨도 춥고 해서 좀 힘들었어요.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새로운 걸 도전하다 보니 어렵더라고요."

- PD님은 드라마 타이즈로 하셨잖아요. 이유가 있나요?
"드라마 타이즈 아닌 것도 하긴 했지만 주로 한 게 드라마 타이즈 맞아요. 제가 드라마 타이즈에 관심 있었어요. 지금은 < MBC 스페셜 >에도 드라마 타이즈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저는 그런 것에 관심 많아요. 그리고 드라마타이즈의 장점이 있어요. 당시를 촬영한 영상이나,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인터뷰가 있으면 더없이 좋으나, 100년이 지난 현재엔 없는 인물이 다반사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드라마타이즈는 당시 인물의 삶과 상황을 자료가 아닌 극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데, 그러면 작은 감정까지 더 공감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드라마 타이즈로) 많이 찍었던 것 같아요."

- 기록자 섭외 뒷이야기 있을까요?
"김연아 선수부터 시작해서 배우 이제훈, 조진웅, 신혜선씨 등 쟁쟁한 사람들이 나왔는데 김연아 선수는 회의 장소에 직접 나와서 유관순 열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김연아 선수는 유관순 열사에 대해 많이 알고, 공부도 많이 했음에도 와서 열심히 제작진의 얘기를 듣고 본인의 생각도 말하더라고요. 김 선수는 예능이나 교양에 잘 출연 안 하기로 유명하거든요. 섭외하기 어려운 사람인데,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라며 흔쾌히 섭외를 수락했고 미팅까지 하며 진지한 자세를 보였어요.

또 배우 조진웅씨는 촬영 중간중간 김구 선생님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김구 선생님이 조진웅씨 삶에 많은 변화를 줬다고 해요. 자기 삶을 바꾼 사람 중 한 명이래요. '눈 내린 들판을 걸을지라도 모름지기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나의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김구 선생님 명언을 듣고 뜻깊게 받아드린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김구 선생님에 대해 제작진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어요. 저희가 현장에서 조진웅 배우에게 많은 것을 배웠죠(웃음). 많은 셀럽들이 바쁜 와중에도 의미 있는 일이라며 재능 기부로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 섭외가 어려웠던 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사실 초반에 많이 어려웠어요. 기획안인 문서만 들고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었고요. 제작물 나오고는 설명하기 조금 편해졌지만, <기억.록>에 출연하시는 모든 분이 유명한 셀럽이고, 바쁘시다 보니 스케줄 잡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다 동참하셔서, 다른 프로그램보단 훨씬 쉬웠던 거 같기도 해요."

"인간이 했던 짓이라고 하기엔 너무 끔찍"
 
 <기억.록>의 한 장면

<기억.록>의 한 장면 ⓒ MBC


- 딱 1년 전이네요.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인물을 물으니 최별 PD님께서 "100인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모자이크 같아서 누구 한 명 뽑을 수 없을 수 없을 것 같다"면서도 "1년이 끝날 즈음엔 누군가 한 명은 있겠다"고 하셨던 기억이 있어요. 1년이 지났는데 PD님은 어때요?
"저는 지난 인터뷰 때도 말했지만 빠짐없이 인상 깊어요. 알고 있었으나 자세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인물이 인상 깊었죠. 그럼에도 한 명을 고르라면...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쳤을 수도 있는데 아무래도 유관순 열사인 것 같아요. 굽히지 않는 독립, 자주정신은 지금 다시 돌아봐도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오랜만에 유관순 열사 편을 보는데 눈물 나더라고요."

- 공부는 어떻게 하셨어요?
"우선 대략적인 인물 공부는 기본적인 자료와 평전으로 하고요. 그 안에서 자세히 알아야 할 부분들이 생겨요. 사실 확인해야 할 부분도 생기고요. 이런 부분은 인물의 기념사업회나, 국회도서관, 논문 등 다양한 곳에서 추가적으로 자료를 받아 공부해요. 그래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기억.록> 자문 교수님을 통해 더 알아가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 공부하며 충격적이라거나 놀란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이야기인데... 물론 유해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듣긴 했죠. 그러나 알고만 있었지, 사진이나 자료로 자세히 보지는 못했거든요. 제작과정에서 사라진 유해에 대해 알아보면서 안중근 의사가 갇혀있던 뤼순 감옥에 대한 자료를 보게 되었거든요. 충격적이었던 게 같은 작은 나무통에 사람들 처형해서 넣더라고요. 인간이 했던 짓이라고 보기엔 너무 끔찍했던 일이었어요. 고문했던 방법들은 (너무 잔인해서) 더 설명할 필요도 없고요. 그런 상황을 독립운동가들은 분명 알았을 텐데, 그럼에도 독립에 대한 의지와 기상을 보이며, 행동으로 옮겼다는 게 정말 대단하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어요."

- 1919년부터 2019년까지 대한민국을 돌아 본 건데 PD님이 돌아본 100년의 대한민국은 어땠어요?
"지난 100년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자유를 위해 참 처절하게 싸웠어요. 그런데 그 처절한 싸움과 희생의 주인공은 대단히 높은 지위와 권력을 지닌 사람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이었어요. 지난 100년의 대한민국에는 계속 자유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포기하지 않은 정신이 있었고, 그로 인해 계속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100년 동안 대한민국은 참 대단히 많이 성장하고 발전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성장했음에도,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부분에는 많이 부족했고, 그로 인해 존경받고, 대접 받아야 할 사람들이 잊힌 100년이었다고 생각해요."

- 그들은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했을 것 같아요. 당장 독립하진 못해도 자기의 독립운동으로 인해 혹 자지대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독립하겠다는 생각 아니었을까요?
"맞아요. 그분들이 뿌린 거고 우리가 열매를 거두는 거죠. 그러니 대단한 거죠. 그럼 우리도 씨를 뿌려야는데... 우리가 후대를 위해 씨를 뿌릴 수 있겠느냐는 반성의 시간도 갖게 되더라고요. 이 프로그램 하기 전엔 독립운동가나 6.25 참전용사, 민주투사가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좀 더 자세히 알고나니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 100회에서 '내가 꿈꾸는 나라는 ___ 입니다'를 시민들에게 물으셨잖아요. 그렇다면 <기억.록>을 연출하신 PD님이 꿈꾸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요?
"제가 언론인 쪽에 있잖아요. 그렇다보니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말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나라, 그리고 모두가 평등한 그런 나라, 그게 제가 꿈꾸는 나라죠."

- <기억.록> 연출하며 느낀 점 있을 것 같아요.
"제가 < PD수첩 > 할 때, 언젠가는 다큐멘터리 하려고 독립운동가에 대한 걸 스크랩 하긴 했었어요. 결국 긴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기억.록>을 하게 됐죠. <기억.록> 전후를 비교하자면... 전엔 다 알지 못했던 독립운동가의 삶과 민주투사, 예술가 삶을 <기억.록>을 하며 예전보다 잘 알게되어 뜻깊고 보람차요.

굉장히 힘들었고 1년 동안 많이 바쁘긴 했으나 많은 것의 척도가 되는 프로그램이기도 했어요. 각자의 삶이 있잖아요. 이런 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제가 100% 수용하지 못하겠지만 보니 좀 더 알게 되고 그래서 <기억.록> 자체는 척도가 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 왜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까요?
"제대로 된 기록이 없다면 미래를 준비하지 못할 것 같아요.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 있을 것이고, 또 실패의 역사를 통해 반성해 가는 것이 있을 테니, 기록과 기억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의 우리의 상황은 존경해야 할 인물은 잊히고, 반성해야 할 부분은 가려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대로 된 기억과 기록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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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너뷰'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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