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한 대학 선배는 소셜 미디어 상에 "올해로 제사가 끝났습니다"라며 사진 한 장을 게시했다. 사진 속엔 (집안 어른들의 이름으로 보이는) 대여섯 개의 위패가 눈에 띄는 제사상에 담겨 있었다. 집안의 어르신인 선배의 어머니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부연이었다. 더불어 올해부터, 내년부터 집안 어른들이 "제사상은 없다"고 선언했다는 글도 여럿이었다.

설 연휴 본가에서 수북히 쌓인 접시를 설거지를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자식들도, 며느리들도, 정작 본인들도 힘들어하는 제사와 명절 음식을 위한 자발적, 비자발적 '노동'을 강요하는 집단 무의식은 어떻게 견고한 성채를 쌓아왔는가.

그 1등 공신이 바로 지상파 주말‧일일 드라마가 설파해 온 한국식 가족주의일 것이다. 기억나지 않은가. '김치 싸대기'를 날리며 '전투'를 벌이고, 기억상실증부터 각종 시한부 환자가 난무하는, 배다른 동생은 기본이요 평생 존재조차 몰랐던 가족에게라도 기어이 '해피엔딩'을 선사하는 한국식 가족 드라마들이 전시해 온 바로 그 장면.

이들의 갈등이 봉합됐고, '해필리 에버 에프터'하게 살 거라는 듯, 한복을 챙겨 입은 온가족이 둘러 앉아 떡국을 먹고, 제사상에 절을 올리며 '한 핏줄'임을 확인하고 확인시키는 명절 풍경.

현실은 어떤가. '명절의 대이동'이란 표현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긴 하다. '명절 노동'에 대한 고찰과 반성이 이뤄지며 제사상을 없애려는 부단한 노력들이 이어지는 2020년, '한국식 가치관'을 강요하는 지상파의 명절 특집 드라마들이 완전히 멸종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주 고작 하루 잠깐 참여한 '명절 노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 문득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 떠올랐다. '비정상' 가족을 통해 전통적인 '현대' 가족의 의미를 묻는 몇 편의 영화들과 함께.

<어느 가족>의 '좀도둑 가족'
 
어느가족 어느가족

어느가족 ⓒ 티캐스트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본 사람들에게서 '부모가 되고 나서 아이를 그리는 방식이 바뀌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들었다. 솔직히 스스로는 의식하지 않고 있다. 6년 전 어머니를 잃고 "아... 이제 누구의 아들도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3년 후 부모가 되면서 세계관(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하지는 않지만)이 확실히 달라졌다. 영화가 감독의 인간관이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라면, 나의 변화는 당연히 작품도 바꿀 것이다."


지난 2013년 발간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에세이 <걷는 듯 천천히>에서 "그렇다면 (3.11 동일본) 대지진도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리 없다"며 자신과 세계(일본)의 변화를 갈망하고 있었다.

<아무다 모른다>를 비롯해 대부분의 작품을 통해 '가족의 문제'에 천착했던 고레에다 감독은 동일본 대지진 직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들로 그 '변화'를 몸소 증명해 왔고, 그 끝에 <기생충>의 수상 한 해 전인 제71회 칸 국제영화제가 황금종려상을 안긴 <어느 가족>이 자리하고 있다.(유감스럽게도, 일본 아베 정부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도 '변치' 않았고, 오히려 지진과 올림픽을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써 먹고 있다).

7년 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부모가 되고 나서 아이를 그리는 방식이 바뀌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대한 고레에다 감독의 대답과도 같다. 이 "애어른으로 살았던 남자의 진정한 부모 되기"는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낳은 정, 길은 정'이란 익숙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큰 울림을 전달했다. '(가족을 가족답게 만드는) 어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이랄까.

<어느 가족>은 한 발 더 나아간다. '비정상' 가족의 사회로부터의 해체를 통해 지금, 여기의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사유한다. 할머니부터 6살 꼬마까지, 영화 속 6명의 가족 구성원은 그 누구도 핏줄로 엮이지 않았다. 그저 필요에 의해 만났고, 느슨하게 연결되거나 스쳐지나 갈 수 있는 인연을 '인간적으로' 소중히 여겼을 뿐이다.

이 '좀도둑 가족'(일본 원제)은 노동하고 싶어도 노동할 수 없는 자, 노동할 수 있으나 떠밀린 자들이고 그럼에도 노동하려는 자들이다. 또 대부분이 가족으로부터, 혹은 가족으로 살고 싶었던 자들에게 상처받고 고통 받은 이들이다. 이들의 일시적인 도둑질은 그저 자본주의 현대 사회를 향한 '반사적' 행동일 뿐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흠집 많은 어른들과 상처 많은 아이들로 구성된 이 가족을 강제로 해체시키는 일본 사회에, 현대 사회에 묻는다. 누가 더 '가족'다운가라고. 동아시아에서도 가족이란 개념과 전통, 풍습을 일본과 가장 가깝게 공유하는 한국인들에게도 이 질문은 더없이 유해해 보인다.

<어바웃 레이>의 '어느 삼대'
 
 어바웃 레이

어바웃 레이 ⓒ 오퍼스픽쳐스

 
미국 뉴욕으로 눈길을 돌리면, 이런 가족도 있다. 애인과 함께 사는 '레즈비언' 외할머니 돌리(수잔 서랜든)와 '싱글맘'이자 가족 중 유일한 '헤테로' 여성인 매기(나오미 왓츠), 그리고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4살 때 스스로 남성임을 자각하고 성전환을 위한 호르몬 요법을 받고 있는 16세 레이(엘르 패닝).

호르몬 요법을 성공적으로 마친 레이는 자신의 존재를 모르는 친구들과의 새 출발이 간절하다. 매기는 딸의 정체성과 그에 따른 선택을 인정하고 지지하면서도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는 없다.

돌리는 남성으로 살아가야 할 손녀 걱정에 "그냥 레즈비언으로 살면 안 되겠느냐"라면서도 손녀와 딸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뉴욕에서 살아가는 이 '여성 삼대'의 고민은 어쩔 수 없이 트랜스젠더로 태어난 레이의 평범한 삶으로 수렴된다.

뉴욕과 런던에서 이성애 가족과는 다른 여러 다른 형태의 가족들을 접했다는 <어바웃 레이>의 게비 델랄 감독은 "수십 년간 변화된 성과 성별에 관한 생각들"에 대해 고민하다 "변화된 문화 속에서 틴에이저를 키우는 일"에 관한 이야기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이렇게 <어바웃 레이>는 성소수자 당사자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존재조차 몰랐던 아버지'의 등장으로 갈등이 벌어지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러한 세 사람의 관계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 간다. 갈등이 없는 건 아니다. 아니, 어찌 그럴 수 있겠나. 레이는 끊임없이 내외적 고민과 마주하는 중이다. 성적 정체성은 확고하지만, 치료의 효과도 효과거니와 자신을 바라보는 또래들의 시선과 때때로 친구들로부터 가해지는 물리적 폭력, 그리고 내적인 갈등은 물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면서도 때때로 가족들이 보내는 불완전한 눈빛, 이 모든 것 마저도 이 10대 소년이 감당해야 할 몫이 맞다. <어바웃 레이> 속 가족은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는 한편 아이가 방황하지 않도록 (간섭이 아닌) 염려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담담히 유지한다.

영화는 그 감정들을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다루면서 '여성 삼대'와 성 소수자 버전의 대안 가족의 현재형을 제안한다. 온갖 '명절형 꼰대'들이 난무하는 한국의 상황을 돌아보며 마치 먼 나라 판타지와 같은 설정이라고 허무해하지 말자. 가부장제가 지속된 시간보다는 이를 깨부수는 시간이 훨씬 짧을 테니.

<가족의 탄생>의 '대안 가족'
 
 가족의탄생

가족의탄생 ⓒ 롯데엔터테인먼트

 
"오빠가 데려온 올케와 함께 살게 된 시누이는 오빠의 강압에 의해 그 올케의 아이까지 입양해 함께 살게 됐다. 근데 그 다음날 오빠가 교통사고로 죽었고 그 시누이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과 함께 살아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 무슨 <사랑과 전쟁>이나 <아침마당>에 나올 법한 사연인가. 하지만 당신이 이 시누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동생의 황망한 부재 이후에도 이 '생전 타인'과 살붙이로 살 수 있겠는가.

영화 <가족의 탄생>의 시작은 위와 같은 어느 라디오 청취자의 사연이었다고 한다. 이를 친구에게 우연히 전해 들었다는 김태용 감독(배우 탕웨이의 남편이자 <만추>를 연출한 '그' 김태용!)은 이후 한국영화 사상 두 번 없을 '유사 가족'과 '대안 가족'의 전복적인 상상력을 펼쳐냈다.

군에서 제대하고 사라졌다 5년 만에 나타난 동생 형철(엄태웅)이 어머니뻘로 보이는 중년 여인 무신(고두심)을 데려오면서 고민하는 누나 미라(문소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엄마 매자(김혜옥)의 중년의 사랑이 그렇게 싫었지만 어느 순간 엄마를 찾는 날이 늘어가는 걸 느끼는 선경(공효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후 "헤픈 게 나쁜 거니?"라는 여친 채현(정유미) 때문에 근심하는 스무살 경석(봉태규) 커플의 세 번째 사연이 비스듬하면서도 정서적으로 단단히 겹쳐질 때, <가족의 탄생>은 전통적인 '가족상'에 균열을 내는 동시에 대안적인 가족의 가능성을 긍정하고 희망한다. '우리도 그들처럼' 같이 살아갈 수 있다고, 별로 큰 일도 아니라고. 
 
<가족의 탄생>이 벌써 15년 전 영화다. 한국영화는 이미 이러한 '어느 가족'에 대한 근사한 서사를 품고 있었다. 옴니버스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순간 마법처럼 연결되는 이 '이상한 가족'의 이야기는 '가부장제'를 직설적으로 부정하고 조롱하며 희화하 하는 임상수 감독의 <바난 가족>의 '반댓말'이기도 하다.

두 영화가 나온 2010년대 초중반은 그렇게 '전복적'인 상상력이 가능했던 시대였기도 하다. 그 시절엔 '명절 노동'이란 단어조차 없었다. '민족 대이동'을 , 제사상을, 명절 노동을 앲애고 싶은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그 전복의 상상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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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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