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방영한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에 출연한 가수 문주란

지난 24일 방영한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에 출연한 가수 문주란 ⓒ JTBC

 
지난 24일 방영한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이하 <슈가맨3>)8회에 출연한 트로트계의 레전드 문주란에 대한 첫 기억은 기묘했다. 명확히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 TV에서 접한 문주란은 자신의 히트곡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를 부르기 전, 이 노래에 대한 엄청난 항의를 언급하며 자신이 작사한 노래가 아님을 분명히 했던 것 같다.

도대체 어떤 가사를 담고 있기에 가수가 대놓고 노래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을 이야기할 정도였을까. 분명한 사실은 문주란이 1990년에 발표한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는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훗날 장윤정, 설하윤 등 후배 가수들에 의해 꾸준히 리메이크될 정도로 범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처음에 사랑할 때 그이는 씩씩한 남자였죠.
밤 하늘의 별도 달도 따주마 미더울 약속을 하더니.
이제는 달라졌어 그이는 나보고 다 해달래.
애기가 되어버린 내 사랑 당신 정말 미워 죽겠네. 
남자는 여자를 정말로 귀찮게 하네.
남자는 여자를 정말로 귀찮게 하네."
-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가사 중에서. 


2020년에 들어도 다소 파격적인 가사를 자랑하는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는 남성 중심적 가부장 문화가 지금보다 훨씬 견고하던 1990년대초에 발표한 노래였다. 가장으로서 온갖 권위는 다 누리려고 하지만 책임과 의무는 아내에게 떠 맡기려는 남자들. 여자는 남자에게 무조건 순종해야하고,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분위기가 팽배 했을 그 시대를 고려해볼 때 매우 도발적인 가사가 아닐 수 없다.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가 발표된 지 1년 후, 매번 아내를 구박하는 독선적인 가부장(이순재)과 그러한 남편에게 꼼짝 못하는 아내(김혜자)가 등장하는 MBC 드라마 <사랑을 뭐길래>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슈가맨>으로 돌아올 줄 몰랐던 전설 문주란의 출연이 그럼에도 반가운 것은 최저음과 고음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연륜과 카리스마가 묻어나는 무대매너 덕분이었다. 이날 설맞이 트로트 특집으로 방송한 <슈가맨3> 8회에는 문주란 외에도 1993년 해학적 가사와 흥겨운 멜로디가 돋보이는 '세상은 요지경'을 히트치킨 배우 겸 가수 신신애가 출연했다.
 
 지난 24일 방영한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에 출연한 배우 겸 가수 신신애

지난 24일 방영한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에 출연한 배우 겸 가수 신신애 ⓒ JTBC

 
'세상은 요지경'은 1939년 고 김정구가 발표한 구전 만요(익살과 해학을 담은 희극적 대중가요)에 1993년 신신애가 가사를 수정해 새롭게 내놓은 노래였다. 오랜만에 방송을 통해 가수로 소환된 신신애 또한 중독성 있는 독특한 퍼포먼스와 남다른 열정으로 무대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리고 <슈가맨3>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두 슈가맨 모두 연예계의 대표적인 비혼 여성이다. 

문주란, 신신애 관련 인터뷰 기사에 빠지지 않는 질문 중 하나는 단연 "왜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으셨나?"다. 이런 질문에 아주 이골이 났을 문주란과 신신애는 여러 인터뷰에서 "난 20대 때부터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매력을 못 느꼈다. 노래에 치우치다 보니까 결혼을 더 안 하게 됐다. 사랑을 해보고 상처도 받고 하니까 이상하게 남자가 싫어지더라"(문주란), "다른 분들은 좋은 짝을 만나서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그런데 저는 비혼주의자다. 사람은 문제 덩어리다. 문제 덩어리인 남녀가 만나면 문제 덩어리가 더 커진다. 해답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부부들이 문제 속에 살더라"(신신애)로 응수한 바 있다. 

"요즘은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가사처럼 남자가 여자를 귀찮게 하면 큰일나요."(문주란)
 
 지난 24일 방영한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에 출연한 가수 문주란

지난 24일 방영한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에 출연한 가수 문주란 ⓒ JTBC

 
<슈가맨3>에서 결혼 문화에 대한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유머러스하게 드러낸 문주란은 거침이 없었다. 이에 거드는 신신애 또한 만만치 않았다. 자신만의 목소리와 생각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여성들. 숱한 결혼 압박 속에서도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지켜낸 문주란과 신신애는 각각 가수, 배우 겸 가수로 그녀들만의 독보적인 캐릭터와 입지를 구축 했다. 이 날 <슈가맨3>에서도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로 스튜디오를 열광의 도가니로 이끈 문주란과 신신애는 전설의 품격을 재확인시킨 역대급 무대 였다. 

<슈가맨3>를 통해 오랜만에 방송 무대에 복귀한 문주란은 남진의 원곡을 편곡하여 발표한 '나야 나'를 열창하였다. 문주란 또한 숱한 히트곡이 많음에도 선배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을 선곡한 것은 수십 년 이상 음악인으로 살아온 그녀의 인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가사 때문이었다. 

"나 건들지 마, 운명아 비켜라.
이 몸께서 행차하신다.
때로는 깃털처럼 휘날리며
때로는 먼지처럼 밟히며
아자 하루를 살아냈네.
나야 나야 나 나야 나야 나.
밤늦은 골목길 외쳐보아도
젖은 그림자 바람에 밀리고
거리엔 흔들리는 발자국
어둠은 내리고 바람찬데
아자 괜찮아 나 정도면"
-'나야 나' 가사 중에서.


전성기 시절 대중들의 사랑을 받긴 했지만, 숱한 스캔들과 루머에 시달려야했던 문주란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가 불미스러운 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의사로 위장해 병원까지 찾아온 기자들과 맞닥뜨려야 했던 문주란은 가수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지난 24일 방영한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에 출연한 배우 겸 가수 신신애

지난 24일 방영한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에 출연한 배우 겸 가수 신신애 ⓒ JTBC

 
신신애 또한 '세상은 요지경'의 인기와 함께 그녀의 물건을 강탈하는 악성 팬의 증가와 함께 여러 해프닝에 시달렸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 연예인을 둘러싼 근거없는 소문과 악플은 여전했고 그녀들의 삶을 지치게 만들었다. 문주란과 신신애 모두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와 삶의 굴레에서 해탈한 도인의 면모가 오묘하게 공존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숱한 루머와 질타 속에서도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로 꿋꿋이 살아남은 문주란과 신신애는 <슈가맨3>을 통해 연륜이 묻어나는 무대 장악력을 보여주었고, 앞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예고하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세상이 강요하는 삶 대신 당당히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살아온 여성 선배들이 아직도 멋지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두 슈가맨의 소환은 가히 성공적이었다. 
 
 지난 24일 방영한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에 출연한 가수 문주란

지난 24일 방영한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에 출연한 가수 문주란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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