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샬럿 호네츠 구단주)은 1986-1987 시즌부터 1992-1993 시즌까지 7시즌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다가 1995년 복귀 후 다시 3시즌 연속 득점왕에 올랐다. 물론 조던은 메이저리그 도전으로 인한 두 시즌의 공백이 없었다면 8시즌 연속 우승과 함께 12시즌 연속 득점왕도 충분히 가능했을 거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크게 의미가 없다.

득점에 조던이 있었다면 리바운드에는 데니스 로드맨이 있었다. 빅맨으로는 신장(201cm)이 작았던 로드맨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 샌안토니오 스퍼스, 시카고 불스를 거치며 7시즌 연속 리바운드왕을 차지했다. 유타 재즈의 '패스 마스터' 존 스탁턴은 1987-1988 시즌부터 1995-1996 시즌까지 무려 9시즌 연속 어시스트 타이틀을 독식했다. 스탁턴의 통산 어시스트 1만5806개는 NBA에서 영원히 깨지기 힘든 '불멸의 기록'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그 대단했던 조던도, 로드맨도, 스탁턴도 개인 타이틀을 10시즌 연속 유지하진 못했다. 그만큼 한 분야에서 10년 넘게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V리그에는 그 어려운 개인 타이틀을 10년 넘게 지키고 있는 선수가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V리그 최고의 미들블로커이자 10년 가까이 국가대표 주전 센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요미' 양효진(현대건설 힐스테이트)이 그 주인공이다.

홍지연-장소연-정대영으로부터 여자배구 센터계보 이어받은 '거요미'
 
 양효진은 지난 10번의 시즌 동안 한 번도 여자부 블로킹 여왕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양효진은 지난 10번의 시즌 동안 한 번도 여자부 블로킹 여왕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 한국배구연맹

 
1990년대 여자배구 최고의 센터는 단연 호남정유(현 GS칼텍스 KIXX)의 무적시대를 이끌었던 홍지연이었다. 당시로선 흔치 않던 187cm의 장신센터였던 홍지연은 호남정유의 92연승과 겨울리그 9연패,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홍지연의 전성기가 저물어 갈 때 즈음엔 센터의 교과서로 불리는 '이동공격의 달인' 장소연(SBS 스포츠 해설위원)이 한국여자배구 센터 계보를 이어 나갔다.

동갑내기 강혜미 세터와 함께 1990년대 선경을 이끌던 장소연은 IMF외환위기로 팀이 해체된 후 현대건설로 이적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현대건설의 겨울리그 5연패의 주역으로 활약했다(당시 현대건설은 '국가대표 트리오' 장소연, 강혜미,구민정이 한 팀에 모여 있던 '드림팀'이었다). 장소연은 프로 출범과 함께 현역 은퇴를 선언했지만 2009년 전격 복귀해 2009-2010 시즌과 2011-2012 시즌 KGC인삼공사의 우승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장소연이 현대건설로 이적하고 1년이 지났을 때 현대건설은 청소년 대표 출신의 센터 유망주를 영입했다. V리그의 초창기를 풍미했고 지금도 여전히 V리그 정상급 센터로 활약하고 있는 정대영(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이다. 정대영은 센터임에도 속공과 블로킹은 물론이고 후위공격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만능 센터였다. 정대영은 V리그 원년에는 득점상과 블로킹상은 물론이고 수비상까지 휩쓸었을 정도로 공수를 겸비한 최고의 센터였다.

장소연과 정대영으로 이어진 현대건설 센터의 계보, 그리고 한국 여자배구의 센터계보는 '거요미' 양효진으로 이어졌다. 사실 2007년 프로에 입단할 때만 해도 양효진은 190cm의 큰 신장을 제외하면 배유나(도로공사), 하준임, 김나희(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등 입단 동기들과 비교해 크게 돋보이는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양효진은 큰 신장을 활용한 타점 높은 공격으로 놀라운 발전속도를 보이며 V리그 최고의 센터로 거듭났다.

공격도 훌륭하지만 양효진의 최대 장점은 역시 탁월한 블로킹 감각에 있다. 선천적인 높이에 경험까지 더해진 양효진은 경쟁상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블로킹 부문을 독식하고 있다. 실제로 양효진은 2009-2010 시즌부터 2018-2019 시즌까지 무려 10시즌 동안 단 한 번도 블로킹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매 시즌 양효진의 경쟁상대가 1981년생 노장 정대영과 김세영(이상 흥국생명)일 정도로 양효진은 블로킹 부문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인삼공사전 커리어 하이 11블로킹 포함 4라운드 3경기 22블로킹
 
 양효진은 이번 시즌부터 주장 자리를 황민경에게 물려 줬지만 여전히 팀의 정신적 지주로 후배들을 이끌고 있다.

양효진은 이번 시즌부터 주장 자리를 황민경에게 물려 줬지만 여전히 팀의 정신적 지주로 후배들을 이끌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양효진은 소속팀 현대건설뿐 아니라 대표팀에서도 김연경(엑자시바시)과 함께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선수다. 실제로 양효진은 2012년 런던 올림(4강)과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금메달), 2016년 리우 올림픽(8강)에서 대표팀의 중앙을 든든히 지켰다.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 부임 후에는 이주아(흥국생명), 박은진(KGC인삼공사) 같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기도 했지만 라바리니 감독은 중요한 경기에선 여지 없이 양효진을 중용했다.

V리그 여자부는 '쌍둥이 자매' 이재영(흥국생명)-이다영(현대건설)을 비롯해 이소영, 강소휘(이상 GS칼텍스), 고예림(현대건설) 같은 스타들을 중심으로 출범 후 최고의 호황기를 맞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양효진은 지난 시즌 5위에 그친 부진한 팀 성적에도 올스타 투표에서 8만9084표를 얻으며 최다득표의 영예를 누렸다. 참고로 양효진은 2013-2014 시즌부터 최근 6번의 올스타전에서 5번이나 최다 득표를 차지하며 V리그 최고의 스타임을 증명했다.

이번 시즌에도 3억5000만 원의 연봉을 받으며 박정아(도로공사)와 함께 V리그 '연봉퀸'에 오른 양효진은 1라운드에서 세트당 0.50개의 블로킹으로 블로킹 부문 7위에 머물렀다. 당시만 해도 GS칼텍스의 한수지, 메레타 러츠의 기세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양효진의 시대가 저물 거라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양효진은 2라운드에서 세트당 0.81개, 3라운드에서 세트당 0.94개의 블로킹을 잡아내며 블로킹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양효진은 4라운드에 열린 3경기에서 무려 22개의 블로킹을 잡아내며 시즌 세트당 0.94개의 블로킹으로 2위 김세영(세트당 0.69개)과의 격차를 0.25개로 벌렸다. 양효진은 국가대표 차출로 김세영보다 한 경기를 덜 출전했음에도 68세트에서 64개의 블로킹을 기록하며 72세트 50블로킹의 김세영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지난 23일 인삼공사전에서 데뷔 후 가장 많은 11개의 블로킹을 기록한 덕분이다.

현대건설은 11시즌 연속 블로킹 1위가 유력한 양효진이라는 슈퍼스타를 거느리고도 프로 출범 후 두 번 밖에 챔프전 우승을 하지 못했다. 따라서 2위 흥국생명에게 4점, 3위 GS칼텍스에게 7점 앞선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번 시즌이야 말로 현대건설이 3번째 챔프전 우승을 노리기에 '적기'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더욱 무르익은 가량을 뽐내고 있는 양효진이 2020년대의 시작과 함께 현대건설을 4년 만에 우승으로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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