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이 늘어난 만큼 영화들도 쏟아진다. 방송사 간 경쟁으로 '홀드백'(한 편의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된 후, 다른 수익 플랫폼에 공개되기까지 기간)이 짧아진 지 오래다. 높아진 관객들의 눈 높이와 유달리 자국영화를 '애호'하는 대한민국의 특수성을 반영하듯, 성우가 목소리를 입히는 외화의 비율도 눈에 띄게 줄었다.

2010년대의 명절특선영화 얘기다. 이제 '명절엔 성룡' 운운하면 40대 이상 '아재'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명절엔 코미디'란 전통 아닌 전통도 희박해졌다. '크리스마스엔 케빈'처럼 '이 구역의 내꺼'란 '시그니처' 영화나 장르도 딱히 없다. (영화 전문 케이블 채널 외에) 넷플릭스나 왓챠 플레이 등 OTT 서비스로 눈길을 돌리는 커플이나 싱글 족이 부쩍 늘었다.

그럼에도, TV 브라운관 앞에 가족들과 둘러 앉아 귤을 까먹으면서 "나는 벌써 봤어"라느니, "저 배우 내 '최애'", "스포일러 하지마"라고 수다를 떨며 즐기는 명절특선영화는, 꽤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이번 설날에도 수많은 영화들이 시청자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 중 6편을 엄선했다. 이미 1600만 관객이 관람한 <극한직업>은 '패스'했다. <나의 특별한 형제>(SBS, 24일 금, 오후 8시 45분), <사바하>(tvN, 24일 금, 오후 9시), <가장 보통의 연애>(JTBC, 24일 금 오후 10시 50분), <악인전>(SBS, 25일 토, 10시 10분), <미성년>(JTBC, 26일 일, 오후 11시 30분), <걸캅스>(MBC, 27일 월, 오후 8시 30분)가 그 면면이다. 코미디와 드라마, 스릴러와 액션까지 장르도 물론 다채롭다.

쉽지 않은 착한 코미디의 포용력 <나의 특별한 형제>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의 한 장면 속 배우 이솜, 신하균, 이광수.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의 한 장면 속 배우 이솜, 신하균, 이광수. ⓒ NEW

 
착한 코미디, 장애인이 주인공인 드라마는 지루하단 선입견을 깔끔히 날려 버릴 수작. 어릴 적 '보금의 집'이란 시설에서 만나 형제처럼 자란 세하(신하균)와 동구(이광수)는 성인이 돼서도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란 쉽지 않은 이야기를 과장되지 않고 설득력 있게 풀어간다. 다시 말해, 피를 나누지 않은 전신 지체와 지적 장애인 형제는 어떻게 서로를 보듬으며 비장애인과 어울려 생존할 수 있나를 장애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달마야, 서울가자> 이후 <방가? 방가!> 등 코미디 장르라는 한 우물을 파온 육상효 감독은 사회적 약자나 타자 등에 시선을 기울이는 동시에 계급이나 계층, 인종과 장애라는 경계를 넘어 이질적인 환경에서 살아 온 이들의 공존을 모색해 왔다. 그 연장선상에 자리한 <나의 특별한 형제>가 지체 장애인 최승규씨와 지적 장애인 박종렬씨의 실화라는 사실도 놀랍다. 신하균과 이광수, 그리고 '취준생' 미현을 연기한 이솜의 앙상블도 안정적이다.

<검은사제들> 감독의 장르 세공술 <사바하>
 
 영화 <사바하> 속 배우 이정재.

영화 <사바하> 속 배우 이정재. ⓒ CJ엔터테인먼트

 
2019년 개봉한 한국영화 중 장르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미스터리 스릴러이자 다소 과소평가된 작품 중 한 편으로, 데뷔작인 '호러' <검은 사제들>로 540만 관객을 동원했던 장재현 감독이 4년 만에 완성한 작품. 이단 종교 단체를 뒤쫓는 박목사(이정재)가 사슴동산과 수상한 정비공 나한(박정민)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며 금화(이재인)에 얽힌 비밀에 다가서는 이야기다.

단편부터 종교란 소재에 천착해 온 장재현 감독의 세련된 장르 세공술과 디테일이 눈길을 잡아끈다. 개봉 당시 한국판 <다빈치 코드>란 평을 필두로, <곡성>이나 <검은사제들> 등과 '비교 놀이'를 즐기는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동서양 종교를 바탕으로 종교철학과 근대사, 동양미술 등 감독이 곳곳에 흩뿌려 놓은 조각들을 취합해보는 것도 한국영화에서 쉬이 볼 수 없는 흥미 요소다. 매끄럽게 달려가다 맞닥뜨린 '호볼호'가 갈릴 수 있는 결말을 마주했다면, 기독교의 '아멘'이란 뜻인 '사바하'를 외쳐 보시길.

누구에게는 현실공감 '로코'<가장 보통의 연애>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속 김래원과 공효진.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속 김래원과 공효진. ⓒ NEW

 
그 놈의 '술이 웬수다'. 왜 그리도 필름은 끊기는 건지, 왜 손가락은 저절로 스마트폰 잠금 버튼을 물어 버리는 건지, 그럼에도 다음날이면 기어이 술잔을 들고 있는 건지. 지난해 10월 개봉한 가장 따끈따끈한 신작 <가장 보통의 연애>의 주인공 재훈(김래원)의 고민은 이게 다가 아니다. '구여친'이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목격한 그 집에 들어가기 싫은 게 더 문제다. 그 재훈 앞에 경력직 사원 선영(공효진)이 나타난다. '구남친'과 헤어지지 얼마 안 된.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은 잊어라. 절정의 인기를 과시 중인 공효진이 꽤 당당한 직장 여성을 연기하는 이 '현실공감형' 로맨틱 코미디는 김래원이 연기한 재훈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선영의 관점을 반영하며 균형감을 유지한다. '살아 있는' 말맛과 직장인들이 공감할 만한 현실감, 코미디의 리듬감을 살리면서도 후반부 나름의 윤리적 감수성을 녹여냈다. 근래 들어 쉽지 않은, 물경 300만 가까운 관객이 공감한 로맨틱 코미디.

나쁜놈 잡는 나쁜놈들, <악인전>
 
 영화 <악인전> 속 마동석과 김무열.

영화 <악인전> 속 마동석과 김무열.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나쁜 '조폭'과 나쁜 '형사'가 힘을 합쳐 연쇄 살인범을 잡는다. 이 한 줄의 확실한 '태그라인'만으로도 눈길을 잡아끄는 범죄액션물로,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초청작이다. 마동석이 '조폭' 두목 장동수를, 김무열이 양아치 같은 형사 정태석을, <범죄도시>의 '흑룡파' 양태, 드라마 <킹덤>의 김성규가 연쇄살인범 강경호를 연기했다.

'태그라인'이 확실한 만큼, 감독이 설계하고 펼쳐놓은 경로로 술술 따라가 보자. 예상 가능한 '조폭'들과 바로 그 '마동석', <공공의 적> '강철중'의 후예라 할 만한 형사, 적당하게 소름끼치는 범인이 목숨 건 경합을 벌인다.

한국 관객의 눈엔 클리셰의 향연이거나 대중영화로서의 미덕이거나. 유독 다채로운 표현을 동반한 한국의 구조적인 '폭력'에 매혹돼 왔던 유럽의 시각에선 '스타일리시'한 장르영화로 소구됐을지도. <대장 김창수> 김원태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배우' 김윤석 '감독'의 섬세한 데뷔작 <미성년>
 
 영화 <미성년>의 포스터.

영화 <미성년>의 포스터. ⓒ 쇼박스

 
이번 설특선영화 중 단 한편을 꼽으라면 단연 <미성년>에게 그 자리를 내어줘야 할 듯. 배우 김윤석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밀도 높은 연출을 자랑하며, 네 '여'배우 김혜준과 박세진, 김소진과 염정아의 연기가 눈이 부실 정도다. 배우 출신 감독 특유의 입체적인 캐릭터 연출과 미세한 감정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

얘기는 이렇다. 아빠 대원(김윤석)이 바람이 났다. 하필 그 불륜 상대인 미희(김소진)의 딸 윤아(박세진)가 같은 학교 동급생이라니. 고교 2년생 주리(김혜준)는 윤아를 학교 옥상으로 불러 내고, 주리의 엄마 영주(염정아)는 미희의 식당으로 찾아간다. 한 남자로 얽힌 네 여성의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성장기 혹은 아주 특별한 앙상블.

'여성' 기획 '영화' <걸캅스>
 
 영화 <걸캅스> 속 수영, 이성경, 라미란, 수영.

영화 <걸캅스> 속 수영, 이성경, 라미란, 수영. ⓒ CJ 엔터테인먼트

 
장르적으로나 영화 안팎으로 <악인전>의 반대편에 선 코미디. '나쁜 놈들 잡는 여성 형사들'이란 태그라인이나 이로써 연상되는 전반적인 그림, 영화 전반의 톤 앤 매너까지도. 시누이와 올케 사이인 형사 둘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을 구하고 성범죄자들을 남자들을 쫓는 이 코믹 액션은 그러나 익숙하디 익숙한 설정과 예상 가능한 캐릭터들이 (시대상을 반영하는) 성범죄자들을 쫓는 전개라는 '여성 형사'가 주인공이란 점을 제외하곤 그간의 '한국형' 형사 코믹액션물과 확연한 변별력를 자랑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검증된 라미란의 능청은 여전히 반짝이며, 양장미 역의 수영은 '<걸캅스>의 발견'이라 할 만하다. 지난해 5월 개봉 당시 여성 관객들은 '영혼 보내기' 운동을 펼쳤고, 남성관객들은 평점 테러를 가했다. 정작 뚜껑을 연 <걸캅스>는 '여성영화'라 부르기엔, '여성(이 주인공인) 기획영화'로 즐길만했다. 시누이와 올케 두 사람의 '케미'만 신경쓰다 둘 사이에 끼인 남편 캐릭터를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162만을 동원한 <장기왕: 가락시장 레볼루션> 정다원 감독의 두 번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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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어제는 영화기자, 오늘은 시나리오 작가, 프리랜서 기자. https://brunch.co.kr/@hasungtae 기고 청탁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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