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산의 부장들'

영화 '남산의 부장들' ⓒ 쇼박스

 
1979년 10월 26일은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한순간에 뒤바꾼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날이다. 당시의 일들은 그동안 드라마, 영화의 소재로 자주 활용되었지만 웬만한 내공으론 다루기 쉽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장기간 집권을 이어가던 유신정권의 곳곳에서 누수가 벌어진다. 코리아게이트, YH여공, 부마항쟁, 그리고 영화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박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연결되는 40여일간 청와대와 중앙정보부에서 벌어진 온갖 암투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영화의 원작인 논픽션 <남산의 부장들>은 1990년부터 26개월 동안 <동아일보>에 연재됐다. 당시는 여전히 군사독재의 영향력 아래 놓였던 시기였지만 독자들로부터 큰 반향을 얻었다. 이후 출간된 단행본 역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현대 정치사에 관심 많던 이들의 필독도서로 자리잡았다. 

누아르 풍으로 그려낸 실화 소재 작품
 
 영화 '남산의 부장들'

영화 '남산의 부장들' ⓒ 쇼박스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우민호 김독의 신작 <남산의 부장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작 깊이 있게 알지 못하는 10.26 사건을 40년이 지난 지금의 시선으로 담아낸다. 영화는 실화의 큰 뼈대에 허구적 요소를 적절히 녹이면서 힘있게 관객들을 끌어당긴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일반적인 정치 드라마보단 <대부>, <좋은 친구들> 같은 마피아 소재 누아르물에 가깝다. 5.16 군사정변으로 권력의 주요 직책을 나눠 가진 이들의 행태는 마치 패밀리, 조직을 구축하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건설한 갱단에 충분히 비유할 만하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조직 배신자에 대한 처절한 응징은 <남산의 부장들>과 마피아 영화들 사이에 공통 분모로 자리잡는다.

정치적인 의미를 무리하게 담기보단 대신 각 캐릭터에 대한 심리 묘사에 큰 비중을 할애하면서 극의 마지막은 상반된 주장을 펼치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사건 발표 vs. 김재규의 재판 최후 진술 녹음을 삽입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는 10.26이란 엄청난 역사의 소용돌이에 대한 판단과 평가를 감독 본인이 아니라 관객에게 맡기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이병헌 등 배우들의 명연
 
 영화 '남산의 부장들'

영화 '남산의 부장들' ⓒ 쇼박스

 
일찌감치 시사회 혹은 개봉 첫날 <남산의 부장들>을 관람한 관객 다수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쏟아지는 내용은 출연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었다. 제작 규모가 비교적 큰 작품이지만, 극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등장 인물은 김규평(이병헌 분), 박통(이성민 분), 곽상천(차지철 분), 박용각(곽도원 분) 등 4명이다. 특히 사실상 김재규 역을 담당한 이병헌의 연기는 <남산의 부장들> 속 지분의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5.16군사정변 동지의 일원(실제 김재규는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기자 주)으로 중앙정보부장에 올랐지만 전임 정보부장의 미국 망명 및 정권 비난 청문회 출석과 회고록 집필 등 정권의 안위를 위협하는 돌발 상황 때문에 김규평은 점차 파워게임에서 밀리게 된다.  

이병헌은 박통의 신임마저 잃어버리며 벼랑 끝에 몰린 김규평이란 인물의 복잡미묘한 감정 표현을 비롯해 마지막 방아쇠를 당기는 일련의 과정을 과장된 표현 없이 자연스런 연기 속에 모두 담는데 성공한다. "이병헌 연기가 다했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이른바 인물 싱크로율에서 우려감을 낳기도 했던 이성민의 박통 도전도 인상적이다. 일부 특수분장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모습은 충분히 권력자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등장한 곽도원, 20kg 이상을 증량하며 작품에 임한 이희준 역시 허투루 캐릭터를 허비하지 않으면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이밖에 재미교포 로비스트 데보라 심 역을 맡은 김소진은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김독의 힘 vs. 원작의 힘?
 
 영화 '남산의 부장들'

영화 '남산의 부장들' ⓒ 쇼박스

 
쟁쟁한 배우들을 총동원하고도 욕심에 가까운 연출로 인해 쓴 맛을 봤던 전작 <마약왕>의 실패가 우민호 감독에겐 이번 작품에 임하는 남다른 자세를 갖춰준 모양이다.

실화에 기반을 둔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칫 연출자의 의욕 과다, 필요 이상의 상상력 때문에 영화를 망치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남산의 부장들> 만큼은 예외다. 특정 인물에 대한 미화 혹은 폄하 대신 원작 논픽션 자체의 힘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감독은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으로 극을 매듭짓는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배우들의 명연은 별개로 하더라도 2시간 남짓한 시간을 이끄는 힘은 과연 감독 본인의 능력 덕분일까? 아니면 원작 혹은 실화가 지닌 무게 때문일까?  

많은 수의 필모그래피를 보유한 건 아니지만 급격한 온탕과 냉탕 오르내리기의 반복은 우민호 감독에 대한 능력치를 짐작하기 어렵게 만든다. <남산의 부장들> 엔딩처럼 이에 대한 평가 역시 관객들의 몫일까?  

[추천] 
정치드라마에 관심 있는 관객
한국 현대사를 좀 더 알고 싶은 영화팬에겐 제격

[비추] 
명절 연휴에 굳이 무거운 내용이라니? 
가볍게 즐기는 영화를 찾는 분에겐 다소 힘겨운 소재

★★★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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