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바람의 언덕>이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라는 다소 생소한 상영방식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과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바람의 언덕> 팀은 2020년 4월말까지, 전국 각 지역의 영화 커뮤니티와 독립예술영화 극장 등에서 매주 토요일 혹은 일요일을 포함해 20회 정도의 상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매회 상영을 마치면, 상영을 주최한 커뮤니티 혹은 개인의 소개와 극장의 소개를 포함하는 이 '아주 특별한 여정'을 연재글로 전합니다. 그 두 번째는 창원 씨네아트 리좀과 이윤성 관객 프로그래머, 박배일 감독이 보내온 편지 입니다.[편집자말]
 <바람의 언덕>의 창원 상영회 포스터.

<바람의 언덕>의 창원 상영회 포스터. ⓒ 영화사삼순


연대와 지지의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영화 <바람의 언덕>이 매서운 바람을 타고 관객을 만나기 위해 전국을 유랑하고 있다. 영화가 보고 싶기도 했고 이런 흐름을 지지하고 싶어서, 연대와 지지의 마음은 손과 발이 움직여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이니까, 창원 씨네아트 리좀으로 향했다.
 
아기자기한 상점이 들어선 창동에 자리한 리좀은 3층에서 표를 끊고 지하에서 영화를 보는 방식이었다. 극장은 층고가 낮아 앞좌석에 앉은 관객의 머리가 스크린에 비쳐 왔다 갔다 했고, 영화 보는 중간에 자리를 이동하면 모든 관객이 그의 동선을 확인할 수 있는 별난 구조였다. 리좀만이 가진 유별남은 나의 마음을 끌어당기기 충분했다. 아!! 가끔 영화 보러 와야겠다!
 
 영화 <바람의 언덕>의 한 장면.

영화 <바람의 언덕>의 한 장면. ⓒ 영화사삼순

 
나는 박석영 감독의 영화를 볼 때면 늘 불안하다. 드라마틱한 사건이 없는 그의 영화는 마음 둘 곳 없는 인물들이 묵혀둔 감정을 하나하나 꺼내면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배우의 연기와 숏의 흐름은 어딘가 어긋나고 삐끗대는데, 그 찰나의 순간에 긴장감이 훅 밀려오는 것이다.
 
박석영 감독이 가진 이상한 편집 점에 어디로 튈지 모를 인물의 감정이 붙는 순간, 불안이 쌓이고 쌓인다. 영화 속 불안과 달리 박석영 감독의 언어는 단단하다. 확신에 찬 그의 언어를 따라가다 보면 묘한 위로와 희망을 얻는다. 이건 세상을 대하는 감독의 태도에서 오는 위로일 뿐만 아니라, 동료로서 그의 발걸음 자체가 위로다.
 
<바람의 언덕>은 전형적인 극장 개봉에서 비껴나, 영화와 관객 그리고 영화를 만든 스태프와 배우가 어떻게 만날지 고민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닐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박석영 감독은 이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극장 하나하나를 돌아다니면서 지역과 극장의 상황을 꼼꼼히 나눈 걸로 안다. 이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고 힘든지 알기에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 이전에, 영화가 가진 힘을 관객과 나누고 싶다. 부산에서도 어떻게 만날지 고민해봐야겠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가진 울림이 큰 영화다. 아마 우리 모두 이 말을 품고, 들키지 않기 위해 버텨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대사가 흘러나왔을 때, 위로와 함께 용기를 얻었다.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박배일 감독)
 
 <바람의 언덕> 창원 상영회를 찾은 관객들과 '바람의 언덕'팀

<바람의 언덕> 창원 상영회를 찾은 관객들과 '바람의 언덕'팀 ⓒ 씨네아트리좀

 
영화를 사랑하다 알아가는 소중한 인연
 
저는 영화를 사랑하는 늦깍이 대학생 이윤성이라고 합니다. <바람의 언덕> 박석영 감독과는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의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연이 닿아 지금까지 소중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박 감독의 영화는 저의 독립영화 인생을 관통하는 큰 주제라고 생각할 정도고요.
 
지방일수록 보기 힘든 독립 영화들을 전국을 돌며 상영하는 <바람의 언덕>의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는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이 이토록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크게 느끼는 계기가 됐습니다.
 
씨네아트 리좀에서의 GV(관객과의 대화) 진행을 제안 받고는, 잘 진행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서 처음엔 거절해야 하나 싶어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는 지역에서의 의미 있는 상영이라는 점과, 두 번 있기 힘든 소중하고 귀중한 추억이 될 순간을 포기하기 싫다, 잡고 싶다는 생각 역시 함께 들었어요.
 
제게 보물 같은 장소인 리좀에서의 GV를 시작하며, 제가 먼저 이 영화를 어떻게 봤고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래서 이 영화를 어떻게 느꼈는지를 이야기 했습니다. 이후 박 감독과 극 중 용진 역의 김태희 배우에게 질문을 드렸고요. 그건 자유로운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한 박 감독의 생각이기도 했어요.
 
 <바람의 언덕>의 창원 상영회에 함께한 장선, 정은경, 김태희 배우

<바람의 언덕>의 창원 상영회에 함께한 장선, 정은경, 김태희 배우 ⓒ 씨네아트리좀

 
이후 진행이 필요 없을 만큼 관객 분들의 소감과 질문이 연이어 터져 나왔습니다. 다음 상영 시간이 다 되가는 줄 모를 정도로요. 이제껏 많은 GV를 경험해 봤지만, 이날처럼 관객 분들의 호응과 꽉 찬 소감이 연잇는 경우는 영화제에서도 많이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관객 분들의 솔직하고 진실한 질문들과 소감을 들으면서, <바람의 언덕>의 이 '커뮤티니 시네마 로드쇼'가 옳고 좋은 쪽으로 잘 이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영화 속 어머니 영분과 딸 한희가 부르는 '항해', 그리고 영분이 윤식 앞에서 부르는 '내 사랑 보니'를 배우 분들이 진중하게 열창하는 모습 또한 새로운 영화적 체험이자 기쁨이었습니다.
 
사족이지만, 이런 상영 기회가 끊이지 않고 또 다른 기회로 이어지길 바라봅니다. 이렇게 지역과 연계하는 상영회가 영화 산업 전반을 위해서도 좋겠단 생각이 작게나마 들었고요. 앞으로 <바람의 언덕>은 더 많은 지역 순회가 남아있습니다. 각 지역에서 앞으로 있을 만남이 저처럼 지역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일반 관객들에게 좋은 의미와 잊지 못할 기억으로 함께 하길 바랍니다.(이윤성 관객 프로그래머)
  
 <바람의 언덕>의 창원 상영회 모습

<바람의 언덕>의 창원 상영회 모습 ⓒ 씨네아트리좀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려는 '리좀적 노력', 창원 씨네아트 리좀
 
씨네아트 리좀은 2015년 한 해가 넘어가는 시점, 전국에서 10여 개의 단관 극장들이 다투어 문을 닫던 시기에 개관했다. 지하 1관 51석에서 하루 6회 차, 주 평균 18편의 영화가 42회 상영된다. 합산하면 한 해 평균 250편 이상, 2200회 이상 상영된다.
 
이 51석짜리 영화관 씨네아트 리좀의 상영 편수는 경남 전체 160여 개 관의 총 상영 편수 중 약 20%를 차지한다. 단관으로서는 전국에서 단연 최다 편수를 상영하는 극장일 것이다. 왜? 당연히 관객에게는 물론, 감독들과 제작사들 그리고 배급사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그것이 바로 씨네아트 리좀의 탄생 목적이고 또 존재 이유들 중 하나다. '원하는 영화 볼 기회조차가 없는 도시'를 그냥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텍스트 중심에서 이미지 중심으로 축을 옮긴 시대를. 이 시대는 또한 동시대적 문제, 즉 도시의 변화와 고령화 문제, 수도권과 지역의 기회 불균등 등 당면한 많은 문제들을 시민들의 인식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해결해야 한다. 매체는 예술이 될 것이고, 그 중 소재로는 영화가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씨네아트 리좀의 운영자들은 단지 영화를 전공했거나 영화를 좋아하거나 영화를 봐야 해서 이곳을 만든 것만은 아니다. 내 아버지는 1960년 3.15를 주동했다. 나는 마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79년 10.18 부마민주항쟁 때는 지역의 지식교두보이고 확산처였던 집현전을 지켜냈고, 1980년대는 청운출판사를 운영하며 최초로 무크지 '마산 문화'를 발간했다. 중앙 집중의 독재를 지방자치제로 저지하려 했고, 창원에서 노동조합지를 발간하며 6월 항쟁 시대를 거쳤다.
 
그리고 새 국면을 맞은 한국을 더 객관적으로 보고자,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프랑스에서 맞은 천안문 사건과 베를린 장벽의 와해를 보며, 세계사의 변화에 있어 한국의 중요성을 직감했다. 그리고 현지인들과의 소통에 장애가 없어질 즈음인 2000년, '프랑스 그르노블 ACC한국문화협회'란 단체를 설립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 간 한국 페스티벌을 조직했고, 100편이 넘는 한국영화, 150여 명의 공연, 전시 등 다 장르의 예술인들을 초청, 5만 명 이상의 관객들에게 한국문화를 소개했다. 프랑스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가장 현실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고, 민간주도로 이끌어 낸 한류의 원조라는 평도 이끌어냈다. 
 
 작년 7월 열린 씨네아트 리좀의 제1회 '리좀 씨네클럽' 현장

작년 7월 열린 씨네아트 리좀의 제1회 '리좀 씨네클럽' 현장 ⓒ 씨네아트리좀

  
그리고 20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그 경험들을 토대로 문화예술기반 도시재생과 로컬 중심의 국제문화교류를 통해 지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일에 관심을 높이고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이 시대에 맞는 도시의 모양을 만들어 가야한다. 지역을 수도권 못지않게 다양한 기회와 소재를 지닌 도시로 만드는 것, 역사와 정신이 살아있는 곳으로 만드는 일, 자유로운 소통의 장으로 만드는 일 등이 눈앞에 놓여있다.
 
이를 위한 가장 적극적인 소재는 시사성과 정보성 그리고 시대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도구로서 영화가 그 우위에 있다고 봤다. 영화관을 만든 이유다. 영화가 생긴 초기, 실제로 영화관이 교회를 대체했다고 했다. 도시의 가장 중심에 영화관들이 세워졌다. 변화하는 모든 콘텐츠가 영화를 통해 지적으로, 감성적으로 시대적 이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 갔다.
 
영화는 그 태생부터 시작해 발전하는 속도까지 공격적이었다. 씨네아트 리좀도 창원이란 도시에서 영화적 부재(쇠퇴)를 적극적 존재로 만들기 위해 생겨났다(실제로 어느 정치 행정인에 의해 콘텐츠 진흥원과 영상위원회가 없어지는 기괴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래도 우리는 굴하지 않는 시민 아닌가.
 
'리좀'(Rhizome), 시멘트 바닥도 뚫고 번져나갈 뿌리줄기의 힘을 말해주는 이름이다. 향후 리좀은 장르도 해체해 갈 것이며, 로컬과 글로벌을 한 줄기처럼 쉽게 뻗게 하고 또 이어갈 것이다. 2020년 리좀은 아르헨티나와 페루에서 펼쳐절 한국영화 특별기획전을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펼쳐질 '비엔날레 PAF in Paris', 라틴아메리카에서 진행될 'PAF in Latine America' 등도 준비 중에 있다.
 
또 창원국제민주영화제와 씨네클럽, 감독과의 대화, 영화아카데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아울러 리좀은 국제 레지던스 사업, 발표전, 교류전, 초청공연, 내한공연 등 영화뿐만 아니라 국내외 시각예술, 공연예술, 문학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려는 '리좀적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씨네아트 리좀 대표 하효선)
 
 씨네아트 리좀의 라운지 풍경.

씨네아트 리좀의 라운지 풍경. ⓒ 씨네아트리좀

덧붙이는 글 씨네아트 리좀의 상영 일정은 홈페이지(espacerhizome.co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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