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드 V 페라리> 포스터.

영화 <포드 V 페라리> 포스터. ⓒ 20세기폭스코리아

 
연말연시에 미루고 미루다가 부랴부랴 극장을 찾았다. 결과적으로 <포드 V 페라리>를 스크린으로 보게 되어 무척 다행이었다. 국내에서는 개봉한 지 한 달이 훌쩍 지났지만 워낙 높은 평점과 점유율 때문인지 드물게나마 아직 극장에 걸려 있었다.

152분이라는 부담스러운 러닝타임이, 그야말로 '순삭'(순식간에 삭제)되는 것에 감탄하며, 동시에 먹먹한 가슴으로 극장 문을 나섰다. 영화는 킬링타임용 재미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제법 긴 여운까지 선사했다. 이 영화에서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제목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포드 V 페라리>는 1960년대 카레이싱의 세계에서 독주 중인 이탈리아의 페라리와 새로운 제왕을 꿈꾸며 엄청난 물량 공세를 퍼붓는 미국의 포드의 대결을 그린다. 또 포드와 한 배를 타게 된 캐롤 셸비(맷 데이먼)와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의 분투를 담았다. 어찌 보면 무난하고 그럴싸한 제목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관람한 이들은 보았을 것이다. 포드와 페라리의 레이싱 대결, 쾌감의 질주 그 이면에 자리한 냉혹한 자본주의의 민낯을 말이다.

적당히 잘 만든 쿨한 카레이싱 영화를 기대했던 바,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이를 훌륭히 충족시켜 줬다. 다소 괴팍하지만 순수하고 열정적인 카레이서 겸 제작자인  켄 마일스, 미국의 전설적인 카레이서지만 심장 질환 때문에 전략가로 나서게 된 캐롤 셰비. 친구이자 파트너인 그들은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하며 포드사의 경주용 차를 개발하고 레이싱 대회를 차례로 거머쥔다. 이제 최종 목표인 '르망 24시간 레이스'의 우승만이 남았다.

일부러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대면했던 차, 주인공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들이 마지막 목표를 무사히 획득하기를, 행여나 불행한 사고를 겪지 않기를 진정 소망했다. 특별히 자동차 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들끓는 엔진에 마음이 고동쳤으며 가족 간의 사랑과 우정 등 적절히 배치된 이야기를 통해, 승부사 이전 인간인 그들을 만났다. 영화는 군더더기 없이 속도감 있게 메인 플롯을 끌어가는 동시에 감정적으로 관객을 돋우는 데도 인색하지 않았다. 뛰어난 완급조절로 관객을 제압하는 밀당의 고수가 지어낸 이야기 같았다.

더욱이 할리우드에서도 대표적인 연기 장인으로 손꼽히는 크리스찬 베일과 맷 데이먼의 초상이 주인공들의 매력을 배가시켰음은 물론이다. 특히 실존인물 켄 마일스의 몸의 언어까지 체화한 듯한 크리스찬 베일의 신들린 연기는, 거칠면서 매력적인 캐릭터를 빚어내는 데에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켄 마일스와 캐롤 셸비의 듀오가 '르망 24시'까지 승승장구하기를 기대하면서도 뭔가 꺼림칙한 물음이 고개를 들었다. 포드사의 간판 아래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승리는 외연적으로 포드의 승리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영화에서 포드는 '포디즘'이 시사하는 바처럼, 미국에 기반하여 효율적인 대량 생산을 추구했다. 포드가 레이싱카의 제작과 대회에 뛰어들게 된 계기도 산업 내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한 마케팅적인 요인이 컸다. 거기에 페라리를 인수 합병하려 했던 계획이 무산되자, 그들을 제압하겠다는 자존심이 몇 스푼 첨가되었던 것이다.

반면 포드의 적으로 설정된 페라리는 애초부터 장인적인 마인드로 자동차를 생산하고, 레이싱 대회에 올인했던 기업으로 그려진다. 집약하자면 공장과 예술의 대결이었다. 이는 물론 물질을 감싸안는 영혼의 대립이기도 하다.
 
 영화 <포드 V 페라리> 스틸컷

영화 <포드 V 페라리>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물론 <포드 V 페라리>에서 주인공들은 포드사에 순순히 통제받지 않으려 했고, 따라서 크고 작은 갈등이 생겨난다. 이 갈등을 담대하고 노련하게 헤쳐나가는 주인공들의 듀오 플레이 역시 영화에서 주된 관전 포인트이다.

그러나 역시 기우는 배반하지 않고 막판에 실체를 드러낸다. 현실보다 더한 드라마는 없다고 했던가.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의 엔딩은 <포드 V 페라리>를 적당히 쿨내 나는 영화, 그 이상으로 만들었다. 결국 뜻한 바대로 해피엔딩이 되진 못했지만 이 영화에서 허탈감이 아닌 시공간을 초월한 울림을 느꼈던 까닭은, 두 주인공의 열정적이면서 프로페셔널한 행보 그리고 우정 때문일 것이다.

1960년 미국 자본주의의 궤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럼에도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온전히 삶의 주인이 되고자 쾌속 질주했던 이들이 유난히 감동스러웠던 이유는 무엇일까. 적당히 멈춰 봉합하고 타협하는 것이 현실의 생존법칙이라고 이미 체득해 버렸지만, 온전히 자신만의 길을 가고 싶다는 희망을 아직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진영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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