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시간) 제26회 SAG 어워즈(미국 영화배우조합) 시상식에서 작품상에 해당하는 '아웃스탠딩 퍼포먼스 바이 캐스트 인 모션픽처'( outstanding performance by a cast in a motion picture) 상을 수상한 송강호와 출연 배우들, 봉준호 감독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제26회 SAG 어워즈(미국 영화배우조합) 시상식에서 작품상에 해당하는 '아웃스탠딩 퍼포먼스 바이 캐스트 인 모션픽처'( outstanding performance by a cast in a motion picture) 상을 수상한 송강호와 출연 배우들, 봉준호 감독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 neon

 
"영화 제목은 <기생충>인데, 사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하는 공생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레잇 아너(Great honor). 그레잇 아너"를 연발하던 송강호의 수상소감에 박수가 쏟아졌다. 19일(현지 시각) 전 세계에 생중계된 제26회 SAG(미국 영화배우조합) 어워즈 시상식에서 <기생충> 팀은 작품상에 해당하는 '아웃스탠딩 퍼포먼스 바이 캐스트 인 모션픽처' 상을 수상했다. 무대에 오른 송강호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듯 보였다.

<기생충>이 호명되자 봉준호 감독과 부둥켜안고 기쁨을 만끽한 송강호는 이선균, 이정은, 최우식, 박소담 등 동료 배우들과 나란히 무대에 올랐고, 그 반대편에서 수상 광경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봉 감독의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을 비롯해 영어권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도 이런 봉 감독의 모습을 '자랑스런 아버지(Proud Dad), 'Big Dad'라 칭하며 즐거워했다. 이러한 봉 감독의 이색적인 모습에서, 무대에 선 아이들을 카메라로 촬영하는 여느 부모들의 모습을 연상한 것이다.

현장에선 의외의 수상에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이날 미국 로스앤젤레스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진행된 시상식에 참석,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로버트 드니로와 같은 할리우드 대배우들도 기꺼이 기립박수 대열에 합류했고, 생중계 카메라엔 기뻐하는 니콜 키드만의 모습도 포착됐다.

연단에 오른 <기생충>의 배우들에게 축하를 보낸 이날 시상식의 영화와 TV 부문 남녀 주조연상 수상자는 르네 젤위거, 호아킨 피닉스, 로라 던, 브래드 피트, 제니퍼 애니스톤 등이었다. 나란히 무대에 오른 최성재 통역가가 "배드 무비"란 표현을 써서 이 대배우들에게 웃음까지 안겨 준, 감격스런 모습이 역력한 송강호의 나머지 수상 소감은 이랬다.

"상징적으로 정말 의미가 있는 앙상블의 최고의 상을 받으니까 우리가 정말 영화를 잘못 만들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존경하는 대배우님들 앞에서 큰 상을 받아서 너무 영광스럽고 오늘 이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배우가 직접 주는 '앙상블' 상의 의미
 
 19일(현지시간) 제26회 SAG 어워즈(미국 영화배우조합) 시상식 참석에 앞서 포즈를 취한 박소담 배우와 봉준호 감독, 송강호 배우.

19일(현지시간) 제26회 SAG 어워즈(미국 영화배우조합) 시상식 참석에 앞서 포즈를 취한 박소담 배우와 봉준호 감독, 송강호 배우. ⓒ neon

 
우선 할리우드 배우들이 직접 수여하는 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국제영화제도 아닌 미국 영화배우조합 시상식에서 작품상에 해당하는 '앙상블' 상을 수상해 할리우드 배우들 앞에 섰으니, 송강호와 동료 배우들의 기쁨이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이 낯설지 모를 아시아 영화의 한국의 배우들에게, 한국어로 수상소감을 발음하는 송강호에게 기립박수를 치는 할리우드 배우들의 모습을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더불어 이번 수상 역시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으로서 아카데미 회원에 포함된 배우들이 직접 투표하는 시상식이란 점도 눈여겨 볼 요소였다.

"특히 아카데미 회원은 8000명 정도인데, (그 중) 배우가 한 15%거든요. 아카데미는 우리(한국 시상식)와 좀 다르게 분야를 나눠서, 감독상은 감독 조합의 투표를 받고 음향은 음향 조합의 투표를 받아요. 그런데 작품상 만큼은 분야에 관계없이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작품이 (작품)상을 받아요.

그러다 보니 (배우가) 15%나 된다는 게 되게 중요하기도 하고. 전례를 살펴보면 2016년에는 <스포트라이트>가 여기서 상을 받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고요. <버드맨>도 역시 여기서 상을 받고 작품상을 받았어요. 한 가지 팁을 더 드리자면 감독조합상이라는 게 있어요. 그게 25일 발표되는데, (감독조합에서 상을 받은 작품이 아카데미에서도 상을 받는다는 법칙이) 1949년 이후 6번 말고는 어긋난 적이 없어요."


21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기생충>의 SGA '앙상블' 상 수상 의미를 이렇게 짚었다. 최근 <뉴욕타임즈>가 <기생충>에 헌정한 특집기사에서 언급했듯, 봉 감독과 배우들이 "아카데미(오스카)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평가를 재확인하는 계기로 부족함이 없다고 할까.

골든글러브는 물론 여러 북미 시상식을 휩쓸고 있는 <기생충>의 놀라운 행보는 이미 수많은 신기록을 세웠다. 17일 외국어 영화로는 최초로 양진모 편집감독이 미국영화편집자협회(ACE)에서 시상하는 장편영화 드라마 부문 편집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날 '백스테이지'에서 언론과 마주한 배우들의 소감에도 이에 대한 기쁨이 깃들어 있었다.

"저희가 본의 아니게 할리우드에 기생하게 된 것 같아서 민망하고, 저희 영화를 통해서 영화 산업과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같이 상생하고 공생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선균)

"작년이 한국영화 100주년이었다. <기생충>이 칸 황금종려상을 받아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오늘도 <인생은 아름다워> 이후 21년 만에 후보에 올랐다. 수상까지 하며 새로운 역사를 쓴 것 같다." (최우식)


"아카데미(오스카)의 역사를 새로 쓰는" <기생충>
 
 19일(현지시간) 제26회 SAG 어워즈(미국 영화배우조합) 시상식에서 작품상에 해당하는 '아웃스탠딩 퍼포먼스 바이 캐스트 인 모션픽처'( outstanding performance by a cast in a motion picture) 상을 수상한 송강호와 출연 배우들, 봉준호 감독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제26회 SAG 어워즈(미국 영화배우조합) 시상식에서 작품상에 해당하는 '아웃스탠딩 퍼포먼스 바이 캐스트 인 모션픽처'( outstanding performance by a cast in a motion picture) 상을 수상한 송강호와 출연 배우들, 봉준호 감독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 neon

 
"오스카 (수상) 예측을 떠나 동료 배우들이 인정한, 배우들의 투표로 인해 상을 받았기 때문에 더욱 기쁩니다. 배우들이 인정한 최고의 배우들, 우리의 앙상블을 인정받은 것에 대한 기쁨이 제일 큽니다. 오스카는 뭐 모르겠어요. 가보면 알겠죠."

그 어떤 수상 결과를 놓고도 담담함을 견지해 왔던 '<기생충>의 아버지' 봉 감독의 수상 소감이다. 최근 한 미국 배팅 사이트는 <기생충>의 오스카 작품상 수상 가능성을 3위로 내다봤다. 지난 가을, 북미 배급사 네온과 함께 봉 감독과 제작진이 오스카 레이스를 펼칠 때만 해도 예측하지 못한 '오스카 수상'이란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그에 못지않게, 한 기자가 던진 질문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했다. "<기생충>의 이러한 행보가 아시아 영화와 배우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는 평가였다. 당황하던 최우식이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화답한 이 질문의 의미는 분명 두고두고 곱씹을 대목이라 할 만 했다.

북미에 불고 있는 '<기생충> 신드롬'은 거칠게 요약하자면 '마셜아트'(쿵푸)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 이후 최초다. 더군다나 칸 국제영화제라는 국제예술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북미 외국어영화 박스오피스 톱10에 입성하는 것도 모자라 '오스카 레이스'를 수놓는 것 역시 금시초문이라 할 수 있다.

북미 시장에서 아시아 영화와 영화인들의 활약은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처럼 중국계가 대부분이었고, 개별 소재에 따라 감독이나 배우 등 개별 영화인들이 반짝 주목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 연장선상에서 '디즈니'표 실사영화 <뮬란>이 개봉 대기 중이다).

<기생충>처럼 한국영화 전반에 대한 재평가나 아시아 영화의 지평을 넓히는 신드롬은, 더욱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의 유력 후보로 떠오른 일은 그 전례가 없다. 마치 '도장깨기'와 같이 '오스카 레이스'와 결부된 각종 시상식을 점령해나가고 있는 <기생충>의 행보는 '계획'에 없었지만 이미 '다 이루었다'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모르겠어요, 가보면 알겠죠"라는 봉 감독의 소감이 허세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외국어영화상을 제외하고도 주요 부문 수상 가능성이 점쳐지는 <기생충>은 이제 오스카상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북미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21세기 영화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그리하여, 수상에 불발하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 지금까지의 성과만으로 이 정도 평가가 충분하다는 얘기 되겠다.   

'까짓 거 오스카, 또 안 받으면 어떠랴. 칸은 물론 북미의 관객들과 비평가들이 알아 본 <기생충>을 몰라본다면, 아카데미가 손해지. 도리어, 요 몇년간 '화이트 워싱' 등으로 잡음을 자처했던 보수적인 아카데미가 <기생충>을 주목함으로서 인종차별 논란을 잠재울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길.'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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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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