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포스터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

 
사랑이라는 감정은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하게 만든다. 처음엔 그저 사소한 관계로 시작했지만 그 사랑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순간은 마법처럼 아주 짧은 시간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사랑을 서로 확인했을 때 느끼는 희열과 환희는 자신들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온갖 사회적 지위나 위치를 잊게 만든다. 그 사랑엔 계급이나 나이,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나와 동등한 상대방이 있을 뿐이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서로의 손을 잡고 상대방과 서로의 감정을 공유한다. 그렇게 한 번 불타오른 감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서로의 얼굴을 자꾸 쳐다보며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안도감과 설렘을 느낀다. 그리고 각자가 상대방을 바라보며 우리는 머릿속에 그 사람의 모습들을 기억으로 남긴다. 마치 그림 스케치를 하듯이 상대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그 사랑은 계속 상대방과 눈을 맞추고 함께 하는 순간마다 하나씩 선을 그려나간다. 특정 순간의 기억들은 완성된 그림으로 남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다. 완전한 사랑의 감정 속에서 만들어진 그 그림은 너무도 또렷하고 아름다운 예술이 된다.

화가 마리안느와 귀족 엘로이즈의 사랑이야기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장면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가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엘로이즈(아델 에넬)의 초상화를 그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엘로이즈의 초상화는 그와 결혼할 남자에게로 배송될 예정이다.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은 엘로이즈는 초상화도 거부한다.

엄마는 마리안느에게 엘로이즈를 관찰해 초상화를 완성하라고 주문한다. 마리안느는 매일 짧은 산책 시간 동안 몰래 엘로이즈의 얼굴과 몸을 엿보고 머릿속에 담으려 노력한다.

엘로이즈가 영화에 처음 등장할 때, 그는 두건을 쓴 뒷모습으로 등장한다. 아무 인사도 없이 그 뒤를 따르는 마리안느는 갑자기 절벽으로 뛰어가는 엘로이즈를 겨우 따라잡은 후,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본다. 금발에 슬픔을 간직한 얼굴을 여러 번 몰래 바라보던 마리안느는 결국 엘로이즈와 눈을 마주친다. 절벽에 나란히 서서 바다를 보던 그 둘의 모습은 꽤 신비롭게 그려진다.

나란히 서서 마리안느의 얼굴만을 먼저 보여주던 영화는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눈이 마주쳤을 때, 엘로이즈의 얼굴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렇게 서너 번을 반복하다가 마리안느가 다시 엘로이즈를 봤을 때, 엘로이즈는 똑같이 마리안느를 보고 시선을 맞춘다. 그 장면 이후부터 둘의 관계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영화의 맨 처음은 하얀 도화지 위에 무언가 스케치를 하는 소리로 시작된다. 아무것도 없는 도화지 위에 선이 하나씩 연필 소리와 함께 그려질 때 무언가 새롭고 아름다운 것이 만들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물이나 인물의 그림을 그릴 때는 그릴 대상을 반복적으로 보고 관찰해야 한다. 상대의 밝은 면만을 보지 않고 어두운 면까지 두루두루 빠짐없이 관찰해야 온전히 상대방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빛으로 생긴 어두운 부분과 여러 주름들을 세밀하게 그려나갈 때, 그 그림의 완성도는 높아진다. 

그림 그리듯 사랑을 스케치하며 예술을 완성하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장면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랑도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상대방을 보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상대방을 관찰하고 보면서 머릿속에 스케치를 그려나간다. 상대방에 대해 전혀 몰랐던 두 사람은 감정이 진해질수록 머릿속의 스케치는 점점 명확해지고, 완성도도 높아진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하고, 상대방의 습관이나 생각도 알게 되면 그 그림은 정확히 자신이 보는 상대방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그 완벽한 상대방의 모습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 한다. 

사실 영화 속 마리안느는 그저 돈을 받기 위해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울해 보이는 그의 모습과 자유에 대한 갈망, 무엇보다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엘로이즈에게 점점 빠져든다. 엘로이즈는 분명 귀족이고, 마리안느는 분명 그 아래 계급으로 보이지만 영화 내내 그들의 모습에서는 계급차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엘로이즈의 엄마가 자리를 비운 시간 동안 하인으로 일하던 소피(루아나 바야미)와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세 사람이 완벽히 동등한 위치인 것처럼 그려진다. 그들은 자유롭게 역할을 바꿔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마리안느가 그린 엘로이즈의 첫 초상화는 마리안느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이었다. 그 작품을 버리고 마리안느는 제대로 엘로이즈를 보기 시작한다. 주문처럼 들리는 아카펠라의 노래와 함께 치마가 불타오르던 엘로이즈와 눈을 마주친 이후, 본격적으로 그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절벽 위에서 손을 잡고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장면이다.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엘로이즈가 마리안느가 그린 자신을 보고, "이게 나야?"라고 물었을 때, 마리안느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작품을 지워버린다. 그리고 진짜 작품을 시작하게 된다. 영화 중반 하인 소피가 임신 중절을 한 이후, 엘로이즈는 임신 중절의 장면을 재연하며 이것을 그려야 한다고 마리안느에게 이야기한다. 즉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에게 불꽃처럼 타오르는 사랑이기도 하지만, 예술적 영감을 주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그려낸 그의 그림은 좀 더 생동감 있어 보인다. 

계급과 통념을 넘어선 동등한 사랑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장면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두 사람의 사랑은 누군가가 주도하는 사랑이 아니다. 이들의 관계는 매우 동등해 보이며, 어떤 사람의 마음이 더 크거나 모자라게 묘사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절벽에서 처음 산책을 할 때 나란히 있던 두 사람의 얼굴, 그리고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던 두 사람의 몸, 마지막으로 엘로이즈와 관계를 맺을 때 두 사람의 눈이 똑같이 변하는 장면 등. 영화는 내내 두 사람의 관계가 한쪽으로 치우쳐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는 오르페우스 전설이 흥미롭게 전달된다. 지옥으로 가 아내를 데려오던 우르페우스가 지상으로 나오기 전까지 돌아보면 안 된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뒤돌아보면서, 결국 아내를 잃게 되는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많은 이들은 오르페우스의 선택이 바보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영화 속 인물 하인 소피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뒤를 돌아본 오르페우스를 답답해한다.

하지만 마리안느는 오르페우스가 시인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녀와의 기억을 담아, 시적인 완성을 하려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영화 속에 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마리안느가 오르페우스와 같은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뒤를 돌아 엘로이즈를 본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기억에 남기고, 그 기억을 작품으로 남긴다. 마리안느가 보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엘로이즈의 환영과 그가 그린 초상화는 그의 기억 속에 남긴 완벽한 스케치이자 예술이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이면서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마리안느의 스케치가 완성되고 훗날 그가 진정한 예술가가 되었을 때, 영화는 막을 내린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를 연기한 배우 노에미 멜랑과 아델 에넬은 두 주인공이 빠져드는 순간순간을 명확하게 담는다. 그들이 서로를 볼 때 인물이 느끼는 감정은 그들의 눈동자로 오롯이 표현된다. 그들의 연기 자체도 이야기와 함께 예술로 완성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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