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올스타 브레이크가 됐을 때 V리그 여자부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의 순위는 6개 구단 중 4위였다. 물론 선두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의 승점 차이가 8점에 불과한, 상위권에 가까운 4위였지만 주전들의 평균 연령이 가장 높은 도로공사에게 후반기 일정은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2월이 되면서 도로공사에게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도로공사는 2월의 시작과 함께 8연승을 포함해 정규시즌 마지막 9경기에서 8승을 쓸어 담는 무서운 상승세를 타며 정규리그 2위를 차지했다. 비록 챔피언 결정전에서 이재영과 베레니카 톰시아가 맹활약한 흥국생명에게 1승 3패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지만 도로공사는 시즌 막판 한계속도가 없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듯 코트를 폭주했다. 그리고 도로공사의 순위상승은 지난 시즌 V리그 여자부를 뜨겁게 했던 큰 흥미요소였다. 

도로공사는 이번 시즌에도 3라운드까지 5승10패 승점 16점으로 6개구단 중 5위로 전반기를 마쳤다. 하지만 테일러 쿡 퇴출 후 국내 선수들로만 경기를 치렀던 도로공사는 새 외국인 선수 다야미 산체스(등록명 산체스)가 V리그 데뷔전을 치른 18일 흥국생명과의 홈경기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3-2로 승리했다. 과연 도로공사는 지난 시즌과 같은 후반기 질주로 세 시즌 연속 봄 배구에 진출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어김없이 '테일런', 눈 뜨고 코 베인 도로공사
 
 GS칼텍스와 도로공사에서 우승반지를 챙긴 배유나의 경험은 쉽게 메울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GS칼텍스와 도로공사에서 우승반지를 챙긴 배유나의 경험은 쉽게 메울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 한국배구연맹

 
2017-2018 시즌 통합 우승에 이어 2018-2019 시즌 챔프전 준우승을 차지한 도로공사는 두 시즌 연속 챔프전 진출로 명실상부한 V리그 여자부의 강호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화려한 영광 만큼 후유증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도로공사의 핵심 센터 배유나가 무릎과 어깨 부상으로 수술을 받은 것이 치명적이었다. 이 때문에 배유나는 최고의 활약을 펼친 후 FA자격을 얻었음에도 고작(?) 8000만 원에 도로공사와 재계약을 했다.

도로공사는 지난 시즌 이바나 네소비치의 대체 선수로 합류해 22경기에서 454득점을 올리며 고군분투했던 외국인 선수 파토우 듀크와의 재계약도 포기했다. 파튜가 아프리카 선수 특유의 탄력을 앞세워 좋은 공격력을 선보이긴 했지만 외국인 선수로는 신장(180cm)이 작아 블로킹에서는 큰 기대를 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소 많은 나이(1985년생) 때문에 세트를 거듭할수록 체력적인 부담을 느낀다는 점도 파튜의 약점이었다.

도로공사는 파튜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작년 5월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195cm의 신장을 가진 아포짓 스파이커(오른쪽 공격수) 셰리단 앳킨슨을 지명했다. 앳킨슨은 9월에 열린 컵대회에 출전해 3경기에서 72득점(평균24득점)을 올리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특히 공격뿐 아니라 서브득점 5개와 블로킹7개를 기록하면서 도로공사가 찾던 '만능형 외국인 선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뽐냈다.

하지만 도로공사가 원하던 유형의 외국인 선수였던 앳킨슨은 끝내 도로공사와 함께 V리그 개막을 맞지 못했다. 시즌을 앞두고 훈련 도중 오른쪽 무릎 내측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다급해진 도로공사는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흥국생명 시절 이미 두 번이나 팀에 아픈 기억을 남기고 떠난 '문제아' 테일러에게 세 번째 한국행을 선물한 것이다.

테일러는 한국에서의 세 번째 시즌에도 크게 변한 게 없었다. 6경기 만에 허리 부상을 이유로 경기에서 빠지기 시작한 테일러는 통증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코트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고 결국 작년 12월9일 퇴출이 확정됐다. 5년에 걸쳐 세 시즌 연속 시즌을 완주하지 못하고 떠난 테일러에게는 '테일런'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그런 테일러의 악명을 알면서도 영입을 강행한 김종민 감독도 비난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산체스 합류한 첫 경기서 흥국생명 제압, 후반기 반격의 서막?
 
 지난 18일 홈팬들 앞에서 첫 선을 보인 산체스는 29득점으로 뛰어난 기량을 뽐냈다.

지난 18일 홈팬들 앞에서 첫 선을 보인 산체스는 29득점으로 뛰어난 기량을 뽐냈다. ⓒ 한국배구연맹

 
도로공사는 테일러 이탈 후 국내 선수들로만 치른 10경기에서 4승6패를 기록했다. 외국인 선수가 없는 빈자리를 전새얀,유서연,하혜진 등이 돌아가면서 잘 견뎌 줬지만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도로공사는 전반기 마지막 2경기와 4라운드 첫 경기에서 3연패를 당했다. 특히 지난 15일 KGC인삼공사와의 경기에서는 인삼공사의 외국인 선수 발렌티나 디우프에게 무려 40득점을 헌납했다.

테일러 퇴출 후 외국인 선수 문제로 한 달 넘게 고민하던 도로공사는 쿠바 국가대표 출신의 다야미 산체스를 새 외국인 선수로 영입했다. 부상으로 이번 시즌 출전 자체가 불투명했던 배유나가 4라운드 시작과 함께 코트로 복귀한 것도 호재였다. 그 동안 정선아와 최민지,하혜진 등이 번갈아 가며 정대영의 파트너로 활약했지만 GS칼텍스 KIXX와 도로공사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했던 배유나의 경험을 따라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도로공사는 산체스가 입국한 지 3일 만에 흥국생명을 상대로 한 달 만에 홈경기를 치렀다. 물론 흥국생명의 주포 이재영이 무릎부상으로 결장하는 변수가 있었지만 도로공사는 '디펜딩 챔피언' 흥국생명에게 3-2로 승리했다. 특히 새 외국인 선수 산체스는 시차적응 문제와 부족한 연습량에도 45.31%의 준수한 공격 성공률로 29득점을 기록했다. 첫 경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합격점을 주고도 남을 만한 좋은 활약이었다.

산체스가 V리그에 순조롭게 적응해 준다면 도로공사는 지난 시즌 박정아와 파튜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 시즌에도 박정아와 산체스로 이어지는 강한 '원투펀치'를 구축할 수 있다. 게다가 국내 선수들로만 경기를 치르는 사이 문정원의 공격비중이 지난 시즌에 비해 부쩍 늘어나면서 박정아와 산체스의 부담을 덜어줄 것이다. 도로공사로서는 흥국생명전에서 4득점에 그친 배유나의 경기감각만 회복된다면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중앙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도로공사는 20일까지 17경기를 치른 현재 승점 18점으로 3위 GS칼텍스와 10점 차이로 벌어져 있다. GS칼텍스 역시 이소영이 복귀하면서 완전체 전력을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에 도로공사가 결코 극복하기 쉬운 차이는 아니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지난 시즌에도 파죽의 8연승으로 정규리그 2위까지 치고 올라갔던 저력이 있다. 상위권 구단들이 6개구단 중 5위에 자리하고 있는 도로공사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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