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스페셜 > '황혼 육아- 할머니의 전쟁'

< SBS 스페셜 > '황혼 육아- 할머니의 전쟁' ⓒ SBS

 
얼마 전 아는 분이 아들네가 둘째를 가졌다고 말씀하셨다. 시작은 "축하한다"였지만 결국은 "어떻게 해요"라는 걱정으로 마무리되었다. 출생률은 매년 최저를 갱신하고 있는 요즘이라 '하나라도 더 낳으면 좋은 일 아닌가' 싶지만, 현실은 혹독하다.

맞벌이 부부의 대부분은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낸다. 하지만 부부가 퇴근해서 집에올 때까지 아이들을 봐주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많지 않다. 대부분 4시 이후부터 부모가 돌아오는 저녁시간은 온전히 '할머니' 몫이다(유치원의 경우 1시에 하원하는 곳도 있다).

맞벌이 하는 부부가 좋맞벌이를 하는 집안, 그나마 좋은 직장을 다녀서 어린이집의 혜택을 받는다지만, 일찍 끝나는 어린이집 이후의 시간은 온전히 '할머니'의 몫이다. 할머니가 아프기라도 하면 완전 비상이다. 아이는 엄마가 낳지만 그 아이 하나를 기르기 위해 온 가족이 다 동원되어야 하는 현실. 그래도 그나마 봐줄 할머니가 있으니 낫다지만, 자식에 이어 손주까지 돌보는 할머니의 형편은 그리 녹록지 않다. 

매일 아침 딸네 집에 도착하는 순간 시작되는 육아전쟁

지난 19일 오후 방송된 < SBS 스페셜 > '황혼육아-할머니의 전쟁'의 문을 연 건 이제 60줄에 들어선 허정옥씨네 집이다. 아침부터 일어나기 싫어 하는 손주를 끌고 업어 그가 도착한 곳은 같은 아파트 15층에 사는 큰 딸네 집이다. 두 명 중 한 명의 손주를 자신의 집에서 재운 정옥씨의 진짜 육아 전쟁은 딸네 집에 도착한 시각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된 정옥씨의 하루는 두 손주의 밥을 먹이고 옷을 입혀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으로 이어진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냈으니 끝난 것 아닌가 싶지만, 정옥씨는 이내 다시 딸네 집으로 올라가 어질러 놓은 집안을 청소한다. 오후 4시가 되자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고, 그때부터 정옥씨의 본격 지옥 육아가 시작된다. 아이들은 뛰고 던지며 할머니 혼을 쏙 빼놓는다. 직장에서 퇴근한 딸은 힘들다는 이유로 꼼짝도 하지 않고, 엄마인 정옥씨는 딸을 위해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저녁상을 차리느라 바쁘다. 

2016년 딸이 큰 애를 낳으면서 시작된 정옥씨의 황혼 육아. 딸은 경제적으로 도움을 드린다지만 할머니인 정옥씨 입장에서는 '자식 생각해서 해주는 일이지 돈 생각했으면 못할 일'이라 고개를 젓는다.

정옥씨는 이제는 제법 큰, 하지만 여전히 아기같은 손주들을 번쩍 안고 업고 하다보니 체력적으로 힘에 부쳐 약을 달고 산다. 병원에서는 오래도록 쓴 육체가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며 휴식이 필요하다 이야기 하지만, 아직 황혼 육아의 길은 멀고도 멀다.
 
 < SBS 스페셜 > '황혼 육아- 할머니의 전쟁'

< SBS 스페셜 > '황혼 육아- 할머니의 전쟁' ⓒ SBS


방송은 '2018년 보육 실태 조사'에 따르면 아이를 개인에게 맡기는 경우, 83.6%가 조부모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더구나 아이를 돌보는 조부모 열 명 중 한 명은 일주일에 7일 동안 아이를 돌보는 과도한 황혼 육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보니, 내 자식이 힘들까봐 황혼육아를 자처한 조부모들, 특히 할머니들은 손목터널 증후군, 관절염, 척추염 등 '손주병'을 얻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안은 없다. 여전히 오랜 시간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 자식 세대에게 선택지는 맞벌이를 그만두거나 할머니에게 맡기거나 둘 중 하나다.

이에 제작진과 만난 전문가는 설사 믿고 맡기는 내 부모라 하더라도 과연 어디까지 맡길 것인지, 즉 시간이나 조건에 있어서 명확하게 육아의 한계를 약속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곧 둘째 출산을 앞둔 문미예씨 집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온 가족이 육아에 참여한다.

아침 일찍 딸네 집으로 출근한 할아버지 문정기씨가 오전 중에 손녀를 돌보면 오후에 할머니가 와서 돌봄을 이어가는 식이다. 가족마다 2~6시간 씩 시간을 나눠 한 사람에게 '독박 육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데 이런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가족은 많지 않을 듯하다. 

마음의 벽을 쌓는 황혼 육아 

옛말에 '애 본 공은 없다'고, 할머니의 황혼 육아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곽정화씨는 대구에서 김포까지 9살 손자를 돌보러 온다. 그런데 먼 길을 어렵게 온 할머니를 대하는 손주의 태도가 영 석연찮다. 하교 길에 반기는 할머니한테 대뜸 "왜 할머니야"라고 볼멘 소리를 내놓는가 싶더니, 집에 와서도 할머니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왜 그럴까? 하지만 카메라에 비친 할머니도 만만치 않다. 꿀먹은 벙어리같은 손주에 대한 섭섭함을 피력하는 것도 잠시, '바로 앉으라'부터 연신 잔소리다. 며느리가 돌아오니 태세마저 전환하신다. 대놓고 첫째 며느리를 본받으라고 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음식 만들기를 하니 "남자 아이들에게 웬 부엌 일이냐"라며 핀잔을 준다.  

결국 참다 못한 며느리는 방학을 핑계대며 '이제 먼 길을 고생하며 오시지 않아도 된다'하고,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섭섭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조부모에게 육아를 부탁하지만, 집집마다 젊은 며느리 세대와 나이든 할머니 세대의 육아 방식의 간극은 가족 내 위기까지 조성한다. 

69세 김복순씨 역시 며느리의 부탁으로 함께 살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큰 손주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는 할머니는 밥을 먹다 말고 라면을 먹고 싶다는 손주에게 라면을 끓여준다. 마트에 가서 장난감을 사고 싶다면 말리는 엄마한테 그게 얼마나 되느냐며 손주 역성을 드는 식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눈치가 빠른 아이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할머니에게 부탁하고, 그런 관계에서 소외된 엄마는 자신이 귀찮은 큰 누나가 된다며 상실감을 호소한다. 
 
 < SBS 스페셜 > '황혼 육아- 할머니의 전쟁'

< SBS 스페셜 > '황혼 육아- 할머니의 전쟁' ⓒ SBS


실제 2015 보육 실태에 따르면 황혼 육아를 하는 세대의 50%가 양육 방식의 차이로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제 아무리 할머니 세대에게 육아를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도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건 부모 세대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전문가의 고언대로 하기에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다큐 속 할머니는 전문가와 상담한 뒤 이해하며 한 발 물러섰지만, 자기 자식들을 키우며 평생 손에 익은 습관과 사고방식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보육 시스템의 부재 속에서 기댈 곳은 부모님 밖에 없는 현실에 자식 세대는 전전긍긍하고, 내 자식이 힘들까봐 시작한 황혼 육아에 부모님 세대는 몸을 넘어서 마음까지 다치고 있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가족의 문제로 치환된 이 현상의 문제점은 너무도 명확하지만 해결책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 '이런 딜레마를 감수하면서 굳이 아이를 낳을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과 함께 출산율 또한 최저점을 찍는 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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