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영화, 예능을 보다가 문득 이런 말을 내뱉게 됩니다. "다시 태어나면 저 캐릭터(사람)처럼 살고 싶다." '2020은 이 사람처럼'에서는 닮고 싶은 영화와 드라마 속 캐릭터(사람)들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잇지와 루스

잇지와 루스 ⓒ 유니버설 픽처스


'잇지'는 누군가를 한 번 마음에 담으면 지독하게 좋아하는 여자다.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 직성이 풀리는 고집쟁이이며, 억울함과 불평등 앞에서는 일단 뛰어들고 보는 무모한 투사다. 그런가하면 하염없이 들판과 강으로 쏘다니며 꿀벌과 교감하는 독특한 '4차원'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잇지를 사랑한다. 내가 잇지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생 때였는데, 보자마자 첫 눈에 그녀는 내 평생 친구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감은 적중했다.
 
잇지는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주인공이다. 나는 이 영화를 30년 전에 보았는데, 지금도 가끔 한 번씩 생각날 때 본다. 그 '생각날 때'란 삶에 조금 더 용기를 내고 싶을 때, 내 자신을 사랑하고 싶을 때다. 어쩌면 위로가 필요한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잇지(메리 스튜어트 매스터슨)를 처음 봤을 때 나는 10대였고 잇지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상황이 역전(?)됐다. 영화 속 잇지는 여전히 파릇파릇한데 나는 어느새 40대 중반이 되었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요양병원에 있는 '니니(제시카 탠디)'라는 할머니가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에블린(케시 베이츠)이라는 여성에게 잇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시작한다. 젊은 시절 잇지와 루스, 그리고 두 사람이 운영했던 '휘슬 스탑 카페'에 대한 니니 할머니의 회상담이 이 영화의 주 내용이다.
 
잇지와 루스가 얼마나 용감했었는지, 니니 할머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야밤에 몰래 화물기차에 올라 타, 물품들을 가난한 흑인들에게 나눠주는가 하면, 자신의 카페에서는 흑인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했다. 지금과 같은 시절이 아니라 흑인 차별이 극심했던 미국 남부 앨라배마, 1920~30년대였다. 엄마의 강권으로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을 한 루스가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알고, 잇지는 그 집에서 루스를 구출해낸다. 당시로서는 위험하고 무모한 일이었다. 그 뒤로 루스의 남편과 KKK로부터 수차례 살인의 협박과 위협을 받지만 잇지는 루스와 그녀의 하인들(흑인들)을 지키기 위해 용감히 나선다.
 
그녀라고 겁나지 않았을까. 잇지의 그런 행동들은 그녀가 대단한 박애주의자나 철학자여서가 아닌, 자신의 '가족과 같은 사람'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잇지의 모습들이 멋졌다. 늘 엉키고 흐트러진 금발머리, 반바지에 멜빵을 메고 폴싹폴싹 뛰어다니던 씩씩한 모습. 고집쟁이였지만 주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과 포용력. 정의롭고 용감한 행동들. 세상의 잣대가 아닌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몸을 움직여 살아가는 잇지라는 인물은 세상 어딘가에 정말 있을 것 같았다. 있다면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내 머릿속의 잇지는 '니니' 할머니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잇지가 아니라 늙은 잇지, 니니 할머니.
 
이 영화 속에서 잇지는 두 시대를 오간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니니'와 잇지는 동일인물이다. 즉, 나이 든 잇지가 에블린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준 주인공
 
 에블린과 니니(잇지)

에블린과 니니(잇지) ⓒ 유니버설픽처스


에블린은 갱년기 우울증을 앓고 있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정작 자신을 사랑할 줄은 모른다. 에블린은 여성강좌를 성실히 들으며 여성으로서 매력을 어필하는 법을 배우고, 집에서는 남편을 위해 정성껏 요리하지만, 남편은 그녀를 그림자 취급한다. 밖에서도 마찬가지. 에블린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미워하고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도, 화낼 줄도 모르던 에블린은 니니(잇지)를 만난 후, 차츰 변하기 시작한다. 나를 사랑해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이며 그래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여성이 더 이상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거나 선택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독립적인 존재라는 것을 하나씩 배워간다.
 
에블린이 차츰 변해가는 과정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그 변화는 통쾌하고 유쾌하다. 에블린은 남편에게 "나에게 '절대'라는 말을 하지 마요"라고 단호하게 못박는다. 에블린을 비롯한 그 시대 여성들은 '넌 절대... 해서는 안돼'라는 말 속에서 길들여져 왔다. 그 유리온실을 박차고 뛰쳐나온 것이다. 에블린을 변하게 만든 건 잇지였다. 에블린은 잇지를 자신의 평생 소중한 친구라고 말한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퀴어영화(동성애 영화)라고도 하는데, 나는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는 '검열'상 동성애적인 부분이 많이 생략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원작인 소설에서는 좀더 구체적이다) 루스가 방황하던 잇지를 변하게 해주었듯 잇지는 에블린을 변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는 퀴어영화를 넘어서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들의 연대에 관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많은 드라마나 영화, 소설을 통해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많이 만났지만, 잇지만큼 매혹적인 캐릭터는 만나지 못했다. 그녀는 소외되고 외롭고 슬픈 사람들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을 사랑했고 치열하게 살았던 자신 삶의 진정한 주인공이었다.
 
늙어서도 누군가에게 용기 줄 수 있다면...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포스터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포스터 ⓒ 유니버설픽처스


특히 노년의 잇지는 사람이 저렇게 아름답게 늙을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요즘 '꼰대', '오케이부머', '라떼는 말이야'... 등 요즘 노인들의 외골수와 불통을 풍자하는 말들이 나올 때마다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그런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근거없는 자만심에서 병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떠올리는 것은 명언이나 어록이 아닌 잇지 할머니의 웃는 모습이다. 진지하지 않고 가볍고 유쾌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늙어서도 누군가에게 한 조각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이보다 괜찮은 인생이 어디 있을까.
 
이로써 나에게는 평생 친구가 두 명이 생겼다. 젊은 잇지와 노년의 잇지. 잇지처럼 늙는 것은 내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녀처럼 살고 싶다. 잘 웃고, 유쾌하고 밝고 따뜻하게. 그 말을 들으면 그녀는 아마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잇지가 될 필요가 없어. 그냥 너는 네 자신대로 살면 돼."

아마도 이렇게 얘기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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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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