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기 부진으로 실망스러운 성적을 남긴 롯데 이대호

롯데 이대호 ⓒ 롯데 자이언츠

 
한국야구에서 '82년생'하면 축복받은 황금세대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정근우(LG 트윈스), 김태균(한화 이글스), 오승환(삼성 라이온즈) 등 한국을 넘어 국제적으로도 그 명성을 떨친 대형 스타들을 대거 배출했다. 이들은 한국야구의 중흥기와 맞물려 올림픽-아시안게임 등 국제 대회에서의 호성적, KBO리그의 몸값 폭등, 일본-미국으로의 해외 진출 열풍 등 역사상 가장 많은 수혜를 누린 세대로도 통한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황금세대에게도 예외일 수 없었다. 한국야구가 배출한 82년생 세대중 지금까지도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선수는 국내파와 해외파를 모두 합쳐도 어느덧 10여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여전히 건재한 선수들도 나이에 따른 노쇠화를 속일수 없듯이 최근 1~2년 사이에 기량과 성적이 완만한 하락세를 그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대호와 김태균은 지난 시즌을 기점으로 유독 많은 비판에 시달렸다. 이대호는 2019시즌 135경기 타율 2할8푼5리 16홈런 88타점을 기록했다. 웬만한 선수라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겠지만 '조선의 4번타자'로 불리우던 이대호의 이름값에는 걸맞지 않았다. 김태균도 타율만 .305로 준수했으나 홈런은 6개에 그치며 15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 달성에 실패했고 타점도 62개에 그치며 중심타자로 제몫을 하지 못했다.

하필 소속팀 롯데와 한화도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조차 실패하며 실망스러운 성적을 보이자 간판 스타로서 두 선수의 역할에 대한 비판이 더 커졌다. 공인구 교체로 인한 타고투저 거품 감소, 나이에 따른 기량 저하, 도우미들의 부재로 인한 상대의 집중견제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있었음을 고려해도, 팬들의 비판이 더 컸던 것은 경기 내외적으로 솔선수범이라는 측면에서 베테랑다운 모범을 보이지못했다는 실망감 때문이었다. 바꿔말하면 여전히 두 선수에 대한 기대치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태균은 지난 시즌이 끝난후 다시 FA 자격을 얻었지만 해가 바뀐 지금까지도 아직 거취에 결론이 나지않고 있다. 한화 잔류가 유력하지만 아무래도 대폭적인 몸값 하락은 피할수 없을 전망이다. 이대호도 이번 시즌을 끝으로 2016년 국내 복귀시 롯데와 맺었던 4년 150억의 계약이 종료된다. 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두 선수의 가치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두 선수가 각각 팀의 레전드라는 상징성에 비하여 말년들어 평가가 점점 박해지고있는 것은 본인들도 스스로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정근우와 채태인, 오승환은 각각 부침을 딛고 명예회복의 기회를 잡았다. 'KBO 역대 최고의 2루수'로 꼽히던 정근우는 2차 드래프트에서 한화의 40인 보호명단에서 제외되며 LG 트윈스로 옮기게 됐다. SK-한화에 이은 정근우의 KBO리그 3번째 소속팀이다. 2013년 FA로 한화 유니폼을 입은 이후 6년간 프랜차이즈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정근우의 이적은 많은 한화팬들에게 충격을 줬다.

하지만 정근우에게는 오히려 이번 이적이 전화위복이 될수 있다는 평가다. 정근우는 한화에서의 말년에 기량 하락으로 주포지션인 2루 자리를 후배들에게 내주고 1루와 외야를 전전해야했다. LG는 베테랑을 예우하기로 유명한 류중일 감독이 직접 정근우 영입을 구단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감독은 정근우를 다시 2루수로 활용할 계획도 염두에 두고 있다.

채태인도 2차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현금 2억원을 주고 SK 유니폼을 입게 됐다. 데뷔 이후 10년을 활약했던 삼성을 떠난 이래 히어로즈-롯데를 거치며 저니맨의 말년 행보를 이어가고 있던 채태인에게 SK행은 그야말로 마지막 기회가 될 전망이다. SK는 박정권이 은퇴한 가운데 1루 수비와 장타력을 갖춘 채태인을 즉시전력의 백업 요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때 KBO의 '끝판왕'으로 통했던 마무리 오승환은 4년간의 해외리그 생활을 정리하고 친정팀 삼성으로 돌아왔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는 평균자책점 2.53로 선전했지만 마지막 해는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9.33이라는 부진을 남기고 다소 초라하게 KBO로 복귀했다. 오승환은 2016년 도박파문으로 KBO 상벌위원회로부터 국내 복귀시 시즌 72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은 바 있다. 지난 시즌 중간에 삼성으로 복귀하면서 42경기를 채운 오승환은 2020 시즌 개막 후 30경기를 넘기면 복귀전을 치를 수 있다.

82년생 유일의 메이저리거인 추신수는 야구 성적 면에서 동갑내기 친구들에 비하면 베테랑의 자존심을 지킨 케이스다. 2019년 메이저리그에서 151경기 출전해 타율 2할6푼5리 24홈런 78타점 93득점 OPS .826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몫은 해냈다.

물론 거액의 몸값에 비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도 늘 따라붙지만 적어도 부상을 제외하고 건강했던 시즌에는 기복없이 꾸준한 성적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내로라하는 스타들도 30대 중반을 넘기면 '에이징 커브'를 피하기 어려운 것을 감안할 때, 그것도 동양인 선수가 추신수의 나이까지 꾸준한 성적을 올리는 경우는 정말로 드물다. 추신수도 2020시즌을 끝으로 텍사스와 7년 계약이 만료된다.

사람은 시작보다 마지막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던 선수들일수록 내리막이 더 가파른 경우도 많다. 82년생들도 어느덧 서서히 남은 현역 생활에 유종의 미를 생각해야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노장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개인의 성적만이 아니다. 고참선수로서 후배들이나 팬들 앞에서 모범이 되어주고, 팀을 위하여 희생하는 자세를 보여줄 때 존중받는다. 정근우가 한화를 떠나 LG로 이적할 때 왜 많은 야구팬들이 아쉬워하고 그의 부활을 응원했던 것일까. 정근우는 한화의 프랜차이즈 스타도 아니었고, 전성기도 분명히 지난 상태였다. 하지만 소속팀을 위하여 보여준 헌신과 투지, 자신의 자리를 빼앗거나(한화 정은원)이나 과거 빈볼을 던졌던 후배(LG 정찬헌)마저도 감싸안는 쿨한 대인배적 마인드로 '진정한 베테랑'이란 무엇인지 귀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 연달아 구설수에 오르내렸던 몇몇 선수들이 보여준 자세는 야구 성적을 떠나 아쉬움을 남긴게 사실이다. 이대호는 지난해 롯데의 간판이자 현재 선수협 회장임에도 '야구의 날' 팬서비스 기피 논란 등으로 오히려 가뜩이나 성적도 좋지않았던 팀의 이미지를 더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오승환은 도박 파문이라는 원죄가 남아있고, 추신수는 아들 국적 문제와 불성실한 팬서비스, 병역혜택 이후 대표팀 먹튀 논란 등으로 최근 안티팬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한국야구의 황금기를 누린 스타급 선수들이 그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감이나 팬들을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을 때 여론은 언제든 등을 돌릴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승엽이나 박찬호의 사례에서 보듯이 베테랑에게  '우아한 마무리'란 단지 야구실력이 최정상에 있을 때 내려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선수들이 이룬 노력과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줄수 있는 팬들이 존재할때 진정으로 빛나는 것이다. 한국야구의 한 시대를 풍미한 82년생 세대의 황혼이 기왕이면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팬들을 감동시키는 야구'를 더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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