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메이저리그 사인 훔치기 논란의 여파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논란이 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전 단장과 전 감독이 책임을 지고 징계를 받았으며, 보스턴 레드삭스 역시 당시 벤치코치로서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었던 알렉스 코라 전 감독을 경질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는 2017년 9월 애플워치를 통한 부정행위 적발 당시 차후 유사한 일 발생의 경우 단장과 감독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지침을 정했다. 이에 따라 일단 선수들에 대한 징계는 없었다.

이 때문에 메이저리그 감독들 중 당시 선수였다는 이유로 징계를 피한 인물도 있었다. 2017년까지는 선수로 뛰었던 카를로스 벨트란이었다. 벨트란은 선수로 활약한 마지막 시즌에 월드 챔피언 반지를 손에 낀 채 화려하게 은퇴했다.

벨트란은 지난 가을 시즌이 끝나자마자 뉴욕 메츠의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2020 시즌부터 팀을 지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논란에 연루되면서 계약 3개월 만에 단 1경기도 지휘하지 못하고 감독직을 사퇴하게 됐다.

포스트 시즌에 강했던 벨트란, 화려했던 선수 시절
 
 벨트란은 빅리그 역사에서 400홈런,300도루를 달성한  최초의 스위치히터다.

벨트란 ⓒ MLB.com

 
1977년 4월 24일 푸에르토리코에서 태어난 벨트란은 1995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지명됐다. 1998년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벨트란은 처음으로 풀 타임 시즌을 보낸 1999년에 타율 0.293에 22홈런 108타점 112득점 27도루를 기록하며 그 진가를 드러냈다.

오른손잡이의 스위치 히터 외야수 벨트란은 이후 2001년부터 2003년까지 3년 연속으로 20홈런-100타점-100득점-30도루 이상을 기록하며 호타준족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당시 만년 하위권이었던 로열스에서만 뛰었기 때문에 포스트 시즌의 기회가 오지 않았다.

2004년 벨트란은 시즌 도중 트레이드되어 애스트로스와 첫 인연을 맺었다. 두 팀에서 정규 시즌 타율 0.267에 38홈런 42도루 91볼넷 104타점 121득점의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벨트란은 첫 포스트 시즌에서 가을남자로 거듭났다.

당시 애스트로스가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에 있었고, 벨트란은 포스트 시즌 12경기에 출전, 타율 0.435에 OPS 1.557 8홈런 9볼넷 6도루 14타점 21득점으로 맹활약했다. 벨트란의 활약에 힘입어 애스트로스는 창단 이래 처음으로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진출했다.

가을남자가 된 벨트란은 FA 자격을 취득, 메츠와 7년 1억 1900만 달러의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이적 첫 해에는 큰 활약을 하지 못했지만, 2006년 벨트란은 41홈런 95볼넷 18도루 41홈런 116타점 127득점으로 부활하며 메츠를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이끌었다.

2006년 포스트 시즌에서 벨트란은 10경기 3홈런 9볼넷 2도루 5타점 10득점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챔피언십 시리즈 7차전, 9회말 2사 역전 기회에서 아담 웨인라이트를 상대로 루킹 삼진을 당하면서 쓸쓸하게 물러났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 연속 외야수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던 벨트란은 이후 무릎 부상으로 인해 포지션을 중견수에서 우익수로 옮겼다. 7년 계약 마지막 해였던 2011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지만 후반기에 주춤하는 바람에 포스트 시즌 진출에는 실패했다.

마지막 해 우승 반지를 손에 넣고 은퇴한 벨트란

두 번째 FA 자격을 얻은 벨트란은 2011 월드 챔피언이었던 카디널스와 2년 계약을 맺었다. 2013년 봄에는 제 3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참가하여 푸에르토리코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2013년에는 생애 첫 월드 시리즈 무대도 밟았지만 팀 타선의 도움 부족으로 월드 챔피언까지는 이루지 못했다.

세 번째 FA 계약은 뉴욕 양키스와 3년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2014년 양키스는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2015년에는 와일드 카드 결정전에 진출했지만 벨트란이 4타수 1안타 2삼진으로 부진했다.

양키스와의 계약 만료 시즌이던 2016년 벨트란은 포스트 시즌 진출 가능성이 보였던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됐다. 잠깐이었지만 추신수와 한 팀에서 뛰었고 레인저스는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이번에도 벨트란이 3경기 타율 0.182로 부진했다.

2017년 봄 벨트란은 다시 제 4회 WBC에 참가했다. 그 동안 열렸던 4번의 WBC에서 모두 푸에르토리코 대표팀으로 참가했던 벨트란은 이번에도 조국 푸에르토리코의 준우승을 이끌고 대표팀 생활을 마무리지었다.

2017년 벨트란은 애스트로스와 1년 160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건강하게 몇 년을 더 뛰면 3000안타도 도전해 볼 수 있었겠지만, 2017년 벨트란은 정규 시즌 타율 0.231에 14홈런 33볼넷 51타점 60득점으로 부진했다. 2017년까지 벨트란의 타격 통산 성적은 타율 0.279에 OPS 0.836, 2725안타 435홈런 312도루 1084볼넷 1587타점 1582득점이었다.

애스트로스는 2005년에 내셔널리그 챔피언, 2017년에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에 오르며 양대리그 챔피언 달성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벨트란은 마지막 포스트 시즌 10경기에서 타율 0.150에 1타점으로 부진했지만, 팀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7차전 혈투 끝에 창단 첫 월드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애스트로스에서 가을야구 첫 경험을 했던 벨트란은 2004년 당시의 활약에 대한 보상을 선수 인생 마지막 해인 2017년에 받은 셈이 됐다. 우승의 감격 여운이 남아있던 2017년 11월 벨트란은 은퇴를 선언하면서 선수 인생을 마감했다.

한 경기도 지휘하지 못하고 감독직 떠난 벨트란

은퇴 이후 벨트란은 2018년부터 양키스의 단장을 보좌하는 특별 고문으로 활동했다. 2년 동안 양키스 프런트에서 활동했던 벨트란은 메츠의 미키 캘러웨이 전 감독이 경질되면서 2019년 11월 메츠 감독으로 계약했다(3년 300만 달러).

그러나 2017년 우승 당시 애스트로스의 사인 훔치기가 있었다는 논란이 일었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1월 17일(한국 시각) 기준으로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애스트로스의 제프 르나우 전 단장과 A.J. 힌치 전 감독에 대한 1년 무보수 자격정지의 중징계를 내렸다.

애스트로스의 전 단장과 전 감독이 책임을 진 가운데, 당시 벤치코치였던 알렉스 코라 전 감독도 레드삭스 감독에서 물러났다. 2017년 기준으로 선수였기 때문에 1차 징계 명단에서 빠졌지만, 벨트란은 사인 훔치기에 가장 깊게 관여한 선수라는 의혹이 붙으며 논란을 피해가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징계 발표 당시 선수노조(MLBPA)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일단 단장과 감독에게만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논란의 중심에 선 벨트란은 결국 계약 3개월 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벨트란과 메츠 구단 프런트의 관계자가 면담을 했고, 이런 상황에서 계속 감독직을 맡는다는 것은 개인과 팀에 모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결국 감독으로 부임하고도 단 한 경기도 지휘하지 못한 채 사실상 경질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보통 야구 팀에서 새로운 감독은 정규 시즌이 끝난 뒤에 선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한 팀은 주로 10월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던 팀은 새 감독을 선임할 경우 11월 이후에 선임을 발표했다. 그런데 메이저리그 스프링 캠프를 한 달 가량 앞두고 30팀 중 3팀의 감독 자리가 비게 됐다.

이번 논란으로 명예의 전당 입회 가능성 낮아진 벨트란

벨트란은 메이저리그 선수 생활 20년 동안 2725안타에 1084볼넷 435홈런 312도루로 활약하며 1587타점 1582득점의 기록을 남겼다. 통산 기록 역대 안타 62위에 홈런 46위 타점 41위 득점 51위로 다소 애매하긴 하지만, 포스트 시즌 통산 65경기 타율 0.307 OPS 1.021에 16홈런 37볼넷 42타점 45득점의 기록은 임팩트가 강하다.

여기에 벨트란은 스위치 히터라는 희귀성도 있다. 역대 벨트란보다 공격력이 뛰어났던 스위치 히터는 미키 맨틀, 에디 머레이, 치퍼 존스 3명 뿐이며 그 3명은 모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상태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안타 기록을 가진 피트 로즈 역시 스위치 히터지만 감독 시절 승부 조작 이력이 있으므로 별개로 분류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벨트란이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았다. 한 팀에서 꾸준하게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잡지 못하면서 고정 지지층이 확고하지 않으며, 안타나 홈런 부문에서 3000안타나 500홈런에 도달하지 못한 점도 애매하다.

다만 최근 몇 년 동안 그레그 매덕스, 톰 글래빈, 프랭크 토마스,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스, 존 스몰츠, 켄 그리피 주니어, 크레이그 비지오, 트레버 호프먼, 마리아노 리베라 등 임팩트가 확실했던 다른 경쟁자들이 이미 입회했다. 거물 경쟁자들이 입회한 상황에서 로이 할러데이나 마이크 무시나 등 누적 기록이 애매했던 선수들도 입회에 성공했다.

논란에 휩싸였던 배리 본즈(762홈런), 로저 클레멘스(사이 영 상 7회) 등도 꾸준히 득표율이 올라가는 분위기 속에서 벨트란도 첫 투표 입성까지는 어렵더라도 입성 가능성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인 훔치기 논란으로 인해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성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아직 사인 훔치기 논란에 관련된 선수들에 대한 사후 징계 여부는 발표되지 않았다. 여기서 벨트란이 어떠한 결과를 받아들게 되느냐에 따라 여론 분위기는 달라질 수도 있다. 또한 벨트란의 첫 투표는 2023년인데, 그 때의 분위기에 따라 득표율이 달라질 수도 있다.

스위치 히터로서 준수한 기록을 세웠던 벨트란이지만, 결국 그도 선수 생활 마지막 해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한 순간의 실수라지만 그 행동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냉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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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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