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세계 남자 테니스계의 향후 10년을 보다 면밀하게 가늠해 볼 수 있는 해라는 점에서 사뭇 의미심장하다. 이는 오는 20일 시작되는 첫 그랜드슬램 대회인 오스트레일리아 오픈(AO)에 국제 테니스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한층 더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의 지난 17년간 그랜드슬램 대회 우승 현황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의 지난 17년간 그랜드슬램 대회 우승 현황 ⓒ 김창엽

 
2003년 페더러의 윔블던 첫 우승 이후, 지난해까지 17년간은 세계 남자 테니스계에 참으로 '기이한'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 이들 세 사람이 사실상 남자 테니스계를 완전 접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까닭이다.
  
 페더러

페더러 ⓒ 위키미디어 커먼스

 
5년 혹은 10년 정도의 기간을 두 명의 스타가 분점하는 건 스포츠계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당장 작금의 축구만 해도 메시와 호날두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테니스에서 과거 샘프라스와 애거시의 라이벌리는 유명한 얘기이고, 수년 전까지만 해도 비슷한 나이의 메이웨더와 파퀴아오가 권투계를 분점하다시피 한 경우가 이에 속한다.
  
 나달

나달 ⓒ 위키미디어 커먼스

 
하지만 20년에 육박하는 기간을 그것도 2명이 아닌 3명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건 스포츠계에서 흔치 않은 풍경이다. 골프나 당구 같은 운동과는 달리 단식 테니스는 여러 스포츠 가운데 상당히 격렬한 운동으로 분류할 수 있다. 실제로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시대 이전에 활약한 테니스 선수들의 운동 수명은 대략 30세 이쪽저쪽이었다.
  
 조코비치

조코비치 ⓒ 위키미디어 커먼스

 
바꿔 말하면, 요즘의 테니스 팬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순간을 동시대인으로서 목격하는 진귀하고도 호사스런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시쳇말로 세월 앞에 장사는 없는 법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또 다른 10년이 시작되는 2020년, 그것도 첫 그랜드슬램 대회인 이번 AO는 관전 포인트가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한 탓에 그 어느 때보다 '재미지게' 지켜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1년 사이에 싹 바뀐 판도
 
2020년을 왜 많은 전문가들이 남자 테니스 판도의 분수령으로 지목하는 걸까? 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지난 한해, 그러니까 2019년 한해 동안 나타난 두 줄기의 큰 흐름 때문이다.
 
2019년 남자 테니스는 빅3의 건재와 빅3의 목젖까지 치고 올라온 20대 신예의 급부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흐름은 충돌할 수 밖에 없다. 순화해서 표현한다면, 세대교체쯤으로 부를 수도 있겠지만.
 
2019년 1월 1일 세계 랭킹 1~3위는 조코비치, 나달, 페더러 순서였다. 2019년 12월 31일 1~3위 이름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나달과 조코비치가 자리를 바꿨을 뿐이다.
  
 팀

ⓒ 위키미디어 커먼스

 
그러나 시야를 확장해 톱10을 살펴본다면, 판도가 싹 바뀌었다. 2019년 1월 1일 순위를 보면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틈바구니에서 과거 그랜드슬램 대회 우승을 일궈낸 적이 있었던 후안 마틴 델 포트로와 마린 칠리치가 각각 5위와 7위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2019년 말 랭킹에서는 한참 뒤로 물러나 거의 잊혀진 이름이 되고 말았다.
  
 2019년 1월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2019년 1월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 김창엽

 
2019년 초와 2019년 말 순위표에서 톱10에 계속 이름을 올린 건 빅3를 제외하곤 도미닉 팀과 알렉산더 츠베레프 단 2명이다. 팀은 올해 26세, 츠베레프는 22세로 분류하자면 둘 다 젊은 피라고 할 수 있다. 26세인 팀은 영건이라고 하기까지에는 무리가 있지만, 페더러와는 12살 차이, 나달보다는 7살 아래이니까 아무래도 젊은 쪽에 속한다.
  
 2020년 초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2020년 초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 김창엽

 
2019년 말 혜성처럼 빠른 속도로 순위를 끌어올리며 톱10에 새롭게 진입한 선수는 다닐 메드베데프, 스테파노스 치치파스, 마테오 베레티니 세 선수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23세 혹은 그 이하로 각각 세계 랭킹 5, 6, 8위를 차지했다.
  
 메드베데프

메드베데프 ⓒ 위키미디어 커먼스

 
한마디로 2018년 말 기준 세계 순위 상위 10걸에서 26세 이하는 2명에 불과했지만 2019년 말에는 5명으로 당당히 절반을 차지한 것이다. 게다가 이들 5명은 빅3의 바로 밑 즉 4~8위에 포진돼 있다. 20대 초중반 선수들이 빅3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왔다는 사실이 순위표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다.
 
테니스 남자 전성기 27~28세 '공식' 깨지나
 
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 세계 남자 테니스에서 가장 이상적인 선수 키는 통계적으로 볼 때 185cm라는 통설이 있었다. 유사한 맥락에서 남자 테니스 선수는 만 27~28세에 전성기를 맞는 경향을 보여줬다.
 
테니스 선수로는 환갑이 한참 지난 것이나 다름없는 페더러조차 예외는 아니다. 페더러가 지금까지 수집한 20개의 그랜드슬램 우승컵 가운데 15개가 2009년 혹은 그 이전 해에 모아진 것이다. 2009년은 1981년생인 페더러가 만 28세였던 때였다.
  
 치치파스

치치파스 ⓒ 위키미디어 커먼스

 
나달은 19개의 그랜슬램 우승 트로피 중에서 13개를 2005~2013년 사이에 거머쥐었다. 2013년은 나달이 만 27세이던 해이다. 조코비치는 16개 그랜드슬램 우승컵 중 12개째를 2016년에 들어올렸다. 만 29세를 일견 그의 전성기로 볼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라는 테니스 역사상 또다시 보기 힘든 걸출한 선수들 또한 남자 테니스 선수의 기량이 최고조에 오른다는 27~28세 공식이 들어맞는 듯 보인다. 하지만 '기이한' 점은 2017~2019년 3년 동안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가 각각 3개, 5개, 4개의 그랜드슬램 우승을 일궈냈다는 것이다.
 
 츠베레프

츠베레프 ⓒ 위키미디어 커먼스

 
3년 동안 이들 세 선수가 12개의 그랜드슬램을 우승했다는 말은 한 해 그랜드슬램 대회가 4차례 열린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문자 그대로 싹쓸이를 했다는 뜻이다. 무섭게 치고 올라왔던 영건들도, 탄탄한 기량을 갖춘 상위 30위권내 선수들도 그랜드슬램 우승에 관한 한 빅3에 눌려 고개조차 쳐들지 못했던 것이다.
 
전성기가 지난 운동선수가 다시 정상에 오른다든지,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사례는 이런저런 스포츠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전성기 이후 정상을 차지하는 기간은 아주 짧고, 머잖아 무대 뒤로 사라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는 제2의 전성기라 할 만큼 최근 정상 근처에 머물러 있는 시간도 긴 편이고, 경기력에서도 절정기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특이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베레티니

베레티니 ⓒ 위키미디어 커먼스

 
하지만 노화는 보통 사람도 그렇지만, 스포츠 선수에게 더더욱 급속히 찾아오는 경향이 있다. 속된 말로 '어느 날 갑자기' 몸과 경기력이 예전만 못한 현상을 흔히 목격되는 것이다.
 
최근 일반인 수천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사람은 평균 34세, 60세, 78세 3차례 급격한 노화가 진행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노년층 가운데는 경험칙으로도 대략 이런 연구결과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계에서는 야구, 농구, 축구 할 것 없이 일반인과 연령대는 다를망정, 어느 해인가부터 성적이 급전직하하고, 은퇴로 이어지는 예가 아주 허다하다.
 
조코비치 선수가 며칠 전 이번 AO 대회를 앞두고 "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강력한 우승 후보는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조코비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번 AO 우승에 가장 근접한 선수로 꼽히지만, 20대 젊은 선수들의 도전이 거세졌다며 그 어느 때보다도 빅3의 여정히 험난할 것으로 내다봤다.
 
외견상 여전히 난공불락인 것처럼 보이는 빅3와 상승세가 너무도 가파른 5명의 20대 선수의 충돌은 빅3 입장에서는 예년과 다른 경기 양상을 예고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빅3가 8강까지 진입한다고 해도 8강, 4강, 결승까지 최소 3경기는 체력을 크게 소모하는 한판 한판이 될 확률이 높다. 당연하지만 30대인 빅3에게 불리한 대목이다.
 
하지만 체력에서 우위에 있는 5명의 20대 선수에게도 시즌 첫 그랜드슬램인 AO 대회는 불리한 측면이 있다. 바로 컨디션 조절이라는 변수이다.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에게 이번 AO는 프로 데뷔 후 최소 16번째 시즌에 맞는 대회이다.
 
남자 테니스는 투어 일정이 너무 빡빡해 연말 제대로 쉴 수 있는 시간이 한달이 될까말까할 정도로 짧다. 선수들은 이 휴식 기간 AO를 필두로 한 다음 시즌 경기에 대비를 하는데, 이런 준비 측면에서 경험 많은 빅3가 컨디션 조절에 상대적으로 잇점이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빗나갈 확률 큰 우승자 맞추기
 
전문가들이나 도박사들의 전망을 종합하면, 우승 확률이 가장 높은 선수는 조코비치이다. 다음으로 나달이 꼽히며 메드베데프나 치치파스가 뒤를 잇는 가운데 페더러를 우승 후보에서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사실 이 정도의 예상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할 수 있다. 현재 랭킹과 그간의 이력을 감안하면, 가장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랭킹 1위인 나달보다 조코비치를 앞세운 것은 조코비치가 나달보다 확연하게 하드코트에서 강한 탓이다. 나달을 차순위 우승 후보를 꼽은 건, 만 33세로 체력에서 크게 밀릴 게 없는 데다 최근 컨디션도 좋은 까닭이다.
 
랭킹 3위인 페더러가 우승 가능성에서 3위 안에 들지 못하는 건 노쇠화를 이유로 봐야 한다. 기량이나 경험에서는 여전히 1위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지만, 페더러는 지난 수년 동안 경기력이 과거만큼 안정적이지 못했다. 특히 랠리가 길어지면 포인트를 잃을 때도 많아졌고, 첫 라운드나 두 번째 라운드에서는 그런대로 괜찮다가도 8강이나 4강 혹은 결승전에서는 체력이 떨어지는 게 종종 눈에 보일 정도였다.
 
메드베데프나 치치파스는 체력이나 기술 측면에서 이번에 첫 그랜드슬램 트로피를 받아들어도 이상할 게 없는 선수들이다. 다만 당일의 컨디션이나 대진운 등의 영향을 받을 수 있어 빅3를 만나기 전, 즉 1~4 라운드를 잘 넘기는 게 관건이라면 관건이다.
 
분명 이변이 있겠지만, 랭킹대로 즉 시드대로 8강에 진출한다면, 나달-팀, 메드베데프-츠베레프, 페더러-베레티니, 조코비치-치치파스의 대결을 예상할 수 있다. 빅3와 20대 초중반의 영건 5명이 정면충돌하는 것이다.
 
그러나 8강이 메이저 대회에서 시드대로 형성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따라서 이번 AO의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는 이들 8명 중 누가 먼저 업셋의 희생양이 되느냐를 지켜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다음으로 흥미로운 대목은 빅3 가운데 누가 4강에 진출하지 못하냐는 점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빅3 중 누가 4강 문턱에서 좌절해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 이번 AO 대회의 특징이다. 이변이라고도 할 수 없고, 희생양이라는 말을 쓰기는 어렵다. 그만큼 올해 AO는 우승자를 맞추기 어려운 그랜드슬램 대회이다 

권순우 첫 승 올릴 가능성은
 
한국 남자 선수로 이번 AO 단식 본선에 직행한 선수는 권순우가 유일하다. AO 예선에서 정현은 기권했고, 이덕희는 예선을 치르고 있어, 대회 개막 직전에야 본선 참가 여부를 알 수 있다.
 
권순우는 전체 대진표 상으로는 유리한 나달 쪽에 속해 있다. 이번 대회 시드는 나달과 조코비치가 이끄는데, 나달쪽 절반의 대진표가 비교적 덜 치열하다. 반면 조코비치 쪽에는 3위인 페더러와 최근 20대 영건 가운데 파워랭킹이 가장 앞서는 것으로 평가되는 치치파스, 그리고 시드 13번으로 좀 밀리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개월 동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데니스 샤포발로프가 포진해 있다.
 
크게 보면 권순우가 유리한 대진표를 받았지만, 문제는 1회전이다. 권순우는 26번 시드인 니콜로즈 바실라쉬빌리를 첫판부터 상대한다. 바쉴라쉬빌리는 모든 기량을 고루 갖춘 선수로서 권순우와 경기 스타일 등이 비슷한 편인데다, 객관적 전력에서는 조금 위라고 봐야 한다. 둘다 A컨디션이라고 할 때 권순우는 잘하면 4대 6, 아니면 3대 7 정도로 밀린다. 결국 당일 컨디션이 누가 좋은가가 승부를 결정지을 가능성이 높다.
 
권순우가 1회전만 통과한다면 2회전에서는 바쉴라쉬빌리보다 더 편한 상대를 만나게 돼 있고, 3회전쯤에 이르러서야 7번 시드의 알렉산더 츠베레프를 조우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도 상금이 크게 오른 AO는 본선 참가 즉 1회전 진출만으로도 9만 오스트레일리아 달러를 상금으로 받는다. 3회전에 나가면 18만 달러로 액수가 2배로 뛰는데, 이는 웬만한 투어 대회 우승에 맞먹는 금액이다.
 
프로에게 상금은 곧 포인트와 랭킹을 의미한다. 이번 AO 대회 1회전 통과 여부는 권순우의 커리어 도약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랭킹이 오르면 웬만한 투어 대회에서 예선을 거치지 않을 확률이 높고, 이 경우 체력을 아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벌어들일 수 있는 상금도 늘어나게 되며, 자신의 몸상태 등에 맞춰 대회를 골라 뛸수 있는 여지도 커진다. 한마디로 선순환이 시작되는 셈이다. 선순환에 접어들면 랭킹, 수입, 인지도 등이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많아진다. 스타덤에 오른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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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이 코앞. 그러나 정신 연령은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승차 유랑인으로서 시한부 일상 탈출.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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