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영화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 찬란

 
저 깊은 구덩이에 묻어 버린 진실도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 영화는 안타깝게도 실화다. 십수 년 동안 가톨릭 사제가 아이들을 망쳐왔다. 그리고 교구는 사실을 알면서도 함구했다. 교구도 같은 편이었다. 가장 안전한 집이라고 생각한 교회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이다. 일명 '프레나 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은, 프랑스 리옹의 대교구 사제였던 '베르나르 프레나' 신부가 1979년부터 1991년까지 70여 명의 스카우트 아이들에게 성폭력을 가한 사건이다.

가톨릭 국가 프랑스에서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 문제였고, 상영 외압으로도 이어졌다. 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자국 내에서도 가장 도발적인 감독 프랑소아 오종이 영화화 했기 때문이다. 실제 피해자들을 만나 면밀한 인터뷰를 진행한 것은 물론 교구와 주고받은 편지글을 인용한 오종 감독은 극 영화이지만 다큐멘터리처럼 구체적인 팩트까지 놓치지 않았다. 또한 프레나 신부의 실명을 그대로 사용해 사실감을 높이고 고발성 영화임을 분명히 했다.
 
 영화 <신의 은총으로>스틸컷

영화 <신의 은총으로>스틸컷 ⓒ 찬란

 
극 중에서 아이 다섯의 아버지 알렉상드르(멜빌 푸포)는 중대 발표를 하려 한다. 어릴 적 자신은 교회에서 성추행 당했고, 그 사람을 고발한다는 내용이다. 결심한 계기는 프레나 신부가 다시 복직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충격적인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버지는 말한다. "너희도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거라." 진실은 언제 어디서든 밝혀지게 되어 있고 희생이 따르겠지만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아버지이자 남편의 고백이라니. 아무리 가족이라도 주변의 시선을 피해 마음으로 품어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프레나 신부(버나드 베를리)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혐의를 인정한다. 다만 나는 병에 걸렸을 뿐이다."

죄를 물으려는 사람, 사과를 받고 싶은 사람을 맥 빠지게 만드는 대답이다. 그것도 한없이 병약한 노인의 얼굴을 하고 뻔뻔하게. 본인은 끝까지 죄를 뉘우치기보다 환자라는 주장에 가깝다. 마치 대기업 회장들이 휠체어에 탄 채 담요를 덮고 나오는 장면과 오버랩된다.
 
 영화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영화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 찬란

 
하지만 알렉상드르 사건의 공소시효는 만료되었고, 다른 피해자를 수소문한 끝에 '프랑수아(드니 메노셰)'를 만나게 된다. 꺼진 불씨를 살려 타오르게 하는 생생한 증언들이 되살아난다. 이에 탄력 받아 다음 타자가 숨을 불어 넣는 작업이 계속된다. 이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다시는 나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프레나 신부의 처벌이다.

프랑수아는 미디어의 힘을 빌려 폭로하고 '라 파롤 리베레(해방된 목소리)'라는 단체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도 당했다며 진술하기 시작했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우리는 함께야'라는 연대감이 커진다. 그렇게 단체는 공소 시효가 남아 있는 또 다른 피해자를 찾아 나선다.

'에마뉘엘(스완 아르라우드)'은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해 긴장감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만드는 인물이다. 불우한 가정사 때문에 심각한 학대를 받게 되었고 신체적 변화까지 겪었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심각한 트라우마로 남은 에마뉘엘까지 힘을 보태며 영화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간다.
 
 영화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영화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 찬란

 
한 신부의 장난질에 수많은 아이들이 짓밟혔고 신앙이 흔들렸다. 유년기에 받았던 상처를 애써 숨기고 살았지만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위로받고 힘을 합쳐나간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도 함께하면 해낼 수 있다는 연결의 중요성이 커진다. 모두가 고통 속에서 지난 세월을 속절없이 보냈다. 인생이 완전히 망가진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듯한 가정을 이루고 보란 듯이 잘 살고 있는 사람. 각자의 방법으로 이겨내고 있을 뿐 씻은 듯이 나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구는 이렇게 말한다.

"신의 은총으로 공소시효가 지났습니다."

이 말은 '신의 은총이 있어 다행이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교구의 흠을 덮으려고만 하는 집단의 이기심과 폭력성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영화 <신의 은총으로>는 관행처럼 여겨지는 가톨릭계의 부패를 들추고 있다.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성범죄를 취재해 들춰낸 바 있는 영화 <스포트라이트>와 다른 점이라면 피해자 당사자들이 직접 나선다는 데 있다. 항상 가장 논쟁적인 작품의 중심에 서있는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첫 실화 영화면서도 지금까지 작품들과 결이 다른 영화다. 취향의 호불호는 갈릴 수 있으나 메시지의 영향력은 한 방향이 아닐까 짐작한다.
 
 영화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영화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 찬란

 
카메라는 시종일관 피해자를 건조하고 담담하게 바라본다. 프레임 안에서 분노하기보다 차분히 대응하고, 자극적인 장면을 피함으로써 극대화되는 폭력을 마주하도록 구상했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보여준 것보다 더욱 큰 반향을 이루는 효과라 할 수 있다. 그들을 마냥 도와주어야 하는 약자로 그려내지 않은 점도 눈여겨볼만하다. 바위로 계란을 치기는 가능하다. 끊어지지 않는 단단한 침묵의 사슬이 어떻게 해체될 수 있는지 영화는 증명하고 있다.
신의 은총으로 프랑소와 오종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