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선수 라건아가 게재한 인스타그램

귀화선수 라건아가 게재한 인스타그램 ⓒ 라건아 인스타그램

 
귀화 선수 라건아가 인종차별 내용이 담긴 메시지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라건아는 14일 개인 SNS로 온 다이렉트 메시지를 공개했다. 인종차별적인 발언은 물론, 선수의 가족까지 모욕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라건아는 "한국인들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매일같이 받는다. 대부분은 그냥 차단하지만, 나는 이런 문제들을 계속 헤쳐나가야 한다"고 썼다.

라건아는 2012년 당시 리카르도 라틀리프라는 이름의 외국인 선수 신분으로 KBL 무대를 처음 밟았다. 울산 현대모비스, 서울 삼성을 거쳐 현재 전주 KCC에서 활약하며 KBL에서 4회 우승을 달성하는 등 명실상부한 리그 최고의 빅맨으로 성장했다. 2018년에는 체육 분야 우수 인재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태극마크까지 달게됐다. 라건아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과 2019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에 출전하며 현재 한국농구 대표팀에서도 대체불가한 핵심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라건아를 둘러싼 인종차별 논란은 한국 사회에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안이다. 라건아처럼 겉으로 보기에 부와 명예를 거머쥐며 성공적인 '코리안 드림'을 이룬 것으로 보이는 유명인들도, 그 이면에는 언제든 집단적 차별과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손흥민, 안정환, 박지성, 기성용, 구자철 등 해외에서 활약한 한국 선수들도 팀 동료나 팬들로부터 인종차별을 받았던 경험을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러나 서구권에서는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한 만큼, 그에 대한 경각심과 처벌 수위도 높다. 미국 프로농구(NBA)에서는 LA 클리퍼스 구단주가 흑인 비하 발언을 했다가 아예 농구계에서 영구 제명을 당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유럽에서는 각 리그마다 인종차별을 단호히 배격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물의를 일으킨 팬들에게는 경기장 출입을 영구히 제한하고 구단에게도 관리 책임을 묻는 등 단호한 대처를 강화하는 추세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공공연한 인종차별 사건은 드문 편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공론화에 소극적인 부분도 있다. 라건아의 사례처럼 SNS나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한 언어폭력은 미국, 유럽 못지않게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그 위험성이나 문제인식에 대하여 지나치게 둔감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한국이라고 해서 인종차별 안전지대인 것은 결코 아니다. 농구, 축구, 야구, 배구 등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외국인 선수들이 활약한 것은 이미 오래고 아예 한국에 귀화한 선수들도 많다. 라건아처럼 인종차별 피해를 직접적으로 호소했던 경우는 많지 않았을뿐, 실제로는 이런 사례는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선수들에게도 각종 입에 담지 못할 언어폭력이 가해지는 상황에서 외국인 선수들에게는 예외일 리가 만무하다.
 
 14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전주 KCC 이지스의 경기. 2쿼터 KCC 라건아(오른쪽)가 전자랜드 머피 할로웨이의 수비에 맞서 슛을 시도하고 있다. 2020.1.14

14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전주 KCC 이지스의 경기. 2쿼터 KCC 라건아(오른쪽)가 전자랜드 머피 할로웨이의 수비에 맞서 슛을 시도하고 있다. 2020.1.14 ⓒ 연합뉴스

 
라건아는 지난해 농구 월드컵 당시 "나는 여기(대표팀)에서 용병에 불과하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라건아의 귀화가 단기간의 전력 상승에 도움이 됐지만, 정작 한국 선수로서 그를 받아들이는 데는 인색한 한국 농구계의 이중성을 꼬집은 게 아니냐는 분석이 많았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었다. 미국 출신의 귀화 혼혈 선수였던 이동준(은퇴)이 현역 시절 경기 중 후배 선수에게 욕설을 듣고 분노해 상대를 밀쳤다. 사실 위계질서가 엄격한 스포츠계에서는 흔하지 않은 일이다. 전태풍(서울 SK) 선수는 혼혈 출신 선수들이 3년 만에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팀을 옮겨야 하는 KBL의 규정에 대해 '차별'이라며 강력하게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작 농구계 내부에서도 해외 출신 선수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거나 차별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들이다.

KBL도 라건아의 폭로에 진지하게 대처해야 한다. 팬들의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일단 농구계가 앞장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농구계에서 그들을 동등한 한국 농구의 구성원으로 존중하겠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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