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밤(현지시각)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제92회 아카데미상 작품상 최종 후보를 발표했다.

13일 밤(현지시각)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제92회 아카데미상 작품상 최종 후보를 발표했다. ⓒ Oscars

 
"한 1인치 정도의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놀라운 영화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 트로피를 손에 쥔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은 확실히 세계적이었다. 유달리 자막 읽기를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한 북미 관객들의 성향을 의식하는 동시에 "우리는 영화라는 하나의 '언어'를 쓴다"는 영화광다운 소감을 곁들인 비영어권 감독 특유의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세계 영화사에 한국영화 '최초'란 수식을 쌓아가고 있는 봉 감독의 <기생충>이 '로컬' 영화상인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 '공식' 입성했다. <기생충>은 13일 밤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이하 아카데미 위원회)가 발표한 제92회 아카데미상 최종 후보작(자) 중 국제 장편 영화상(외국어 영화상)을 비롯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미술상, 편집상 총 6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오스카상 공식 유튜브 계정으로 생중계된 이날 발표에서 발표자로 나선 한국계 배우 존 조는 유독 즐거워했다. <기생충>의 제작자인 곽신애 바른손이에이 대표 역시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배우 송강호와 국내외 스태프들이 함께 한 기념사진을 게재하며 자축했다.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인 네온 또한 발표 직후 "<기생충>은 올해의 영화다"란 <뉴욕타임스>의 한 줄 평이 포함된 '센스'있는 홍보 영상을 게재했다. 전 세계 관객들은 소셜 미디어 상에서 'parasite'란 해시태그를 공유하며 <기생충>의 '오스카' 입성을 축하했다.

이 모두 봉 감독과 <기생충>이 이룬 '세계 최초'에 포함될 영화계의 '사건'이라 할 만 했다. 그 '사건'이 다음달 9일(현지시각)로 예정된 본 시상식에서 실제 수상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칸과 아카데미 동시 석권 가능할까

'전초전'격인 골든글러브 수상으로 국제장편영화상(외국어영화상) 후보 지명은 확실시됐다. 그럼에도 <기생충>이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등 주요 부문 외에 미술상과 편집상 후보에 까지 이름을 올릴 것이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단연 한국 '최초'다. 아시아권 영화로는 두 번째다. 대만 출신으로 북미에서 활동 중인 이안 감독이 연출한 <와호장룡>(2001)이 제73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포함해 작품상과 감독상 등 10개 부문 후보에 지명된 이후 20년 만이다. 그해 <와호장룡>은 외국어영화상과 미술상, 음악상, 촬영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와호장룡>이 '마셜아트'(쿵푸)의 아름다움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미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지난해 작품상 후보에 오른 <로마>(멕시코)나 2012년 <아무르>(오스트리아)의 행보와 가까워 보인다. 두 작품은 각각 베니스와 칸 국제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이후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미 영화 전문지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기생충>이 작품상과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동시에 지명된 것은 < Z >(프랑스, 1969), <인생은 아름다워>(이탈리아, 1998), <와호장룡>(대만, 2001), <아무르>(프랑스/오스트리아 등, 2012), <로마>(멕시코, 2019)에 이어 역대 6번째다.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은 역대 11번째다. 

결국 <기생충>에 쏠린 관심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앞서 골든글러브 수상으로 <기생충>의 국제장편영화상 수상은 점점 가시화되는 분위기다. 여기에 전 세계 최초로 '오스카'상 작품상을 수상하는 첫 번째 비영권 영화에 등극할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보수적이라 일컬어지는 아카데미 위원회가 칸 영화제가 먼저 그랑프리를 안긴 외국어 영화이자 아시아 영화에 최초로 작품상을 안길지 말이다. 

<기생충>과 함께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는 <포드 V 페라리>, <아이리시맨>, <조조 래빗>, <조커>, <결혼 이야기>, <1917>,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작은 아씨들> 등 총 9편이다.  

이 중 <아이리시맨>의 마틴 스코세이지, <조커>의 토드 필립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쿠엔틴 타란티노, < 1917 >의 샘 멘데스 감독은 봉준호 감독과 함께 감독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쟁쟁한 감독들이, 토드 필립스를 제외하고 칸이 사랑한 감독들과 함께 후보 지명된 봉준호 감독의 소감은 어땠을까.

<빅 쇼트> 감독이 만드는 '미드' <기생충>
 
 77회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기생충>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이정은 배우, 제작자 곽신애 대표 등

77회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기생충>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이정은 배우, 제작자 곽신애 대표 등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마치 <인셉션>인 것 같다."

13일 봉 감독은 미 영화매체 <데드라인>과의 인터뷰에서 6개 부문 후보 지명 소식에 대해 통역가인 샤론 최 감독에게 위와 같은 농담을 던졌다. 꿈을 소재로 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을 인용한 것이다. 이날 <데드라인>은 다른 주요 작품을 제쳐두고 <기생충>의 6개 부문 후보 지명 소식을 홈페이지 메인으로 올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봉 감독은 "곧 난 깨어나서 이 모든 게 꿈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라며 "여전히 <기생충> 한가운데 있고, 현장 상황은 죄다 마음대로 안 돌아가고. '밥차'에 불이 붙어서 울부짖고.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훌륭하고 너무나 행복하다"며 특유의 위트 있는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봉 감독은 또 하나의 깜짝 소식도 전했다. <기생충>이 '미드'의 명가인 미 케이블 채널 HBO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것, 그 '미드' <기생충>의 연출을 <빅 쇼트>의 아담 맥케이 감독이 맡는다는 것.

이에 대해 봉 감독은 "아담 맥케이의 <빅 쇼트>를 정말 좋아한다. 그의 유머와 미 정치에 대한 예리한 풍자를 사랑한다"며 "<기생충>을 쓸 때 2시간이란 상영 시간에 담기 어려운 더 많은 아이디어들이 있었다.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부분에 대해선 아담 맥케이와 곧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방영을 앞둔 <설국열차>에 이어 <기생충>까지 '미드' 제작을 예고하며 북미를 강타한 '봉준호 열풍'은 온라인 '팬덤'인 '봉하이브'(bonghive)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 중 핵심 세력은 북미 평단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마치 <기생충> 수상을 위해 전세계 8000여명의 유명 영화계 종사자로 이뤄진 아카데미 위원회를 향해 시위라도 벌이고 있는 듯 보일 지경이다.

'세월호' 품은 아카데미 

<기생충>은 지난해 10월 이후 전미 비평가위원회(외국어영화상), 뉴욕 비평가협회(외국어영화상), LA 비평가협회(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송강호), 필라델피아 비평가협회(외국어영화상), 워싱턴DC 비평가협회(작품상, 감독상, 외국어영화상), 시카고 비평가협회(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영화상), 제9회 호주 아카데미(작품상), 미국영화연구소(AFI 특별언급상), 전미비평가협회(NSFC 작품상, 각본상) 등에서 주요 부문 상을 휩쓸었다.

이중 오스카 시상식이 열리는 할리우드가 위치한 LA 비평가 협회나 미 전역을 아우르는 전미비평가협회의 작품상 수상은 특히 주목된다. 또 골든글러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이후에도 <기생충>은 제23회 온라인 비평가 협회상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영화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했고, 제25회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에서도 감독상과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남은 것은 이제 아카데미상 시상식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놀라운 소식. 전 세계인이 공감할 만한 계급 문제를 다룬 <기생충> 외에 '세월호 다큐'도 제92회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로 지명됐다.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이다.

상영 시간이 29분인 이 단편은 2018년 열린 제9회 뉴욕 다큐멘터리영화제 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제31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2019년 열린 제17회 AFI 다큐멘터리영화제 등 해외에서 소개된 바 있다. 'In the Absence'가 영어 제목인 <부재의 기억>은 유튜브를 통해 공개돼 있기도 하다(https://youtu.be/Mrgpv-JgH9M).

제16회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부재의 기억>에 대해 "당시 현장 영상과 통화 기록을 중심으로 세월호 참사 당일의 현장에 고스란히 집중하며 국가의 부재에 질문을 던지는 다큐멘터리"라 평하기도 했다. 

'계급 문제'와 '세월호'를 품은 아카데미 시상식이라니, 이 자체로 영화 같은 풍경이지 않은가. 과연 보수적이라 일컬어지는 아카데미 위원회가 101주년을 맞은 한국영화에 어떤 선물을 안겨줄지, 또 봉준호 감독은 과연 외국어영화상을 넘어 작품상 트로피를 품에 안을지 다음달 9일까지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기다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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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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