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를 대표하는 록 밴드 러시(Rush)의 드러머 닐 피어트가 현지 시각 1월 7일 사망했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록 밴드 러시(Rush)의 드러머 닐 피어트가 현지 시각 1월 7일 사망했다. ⓒ 러시 페이스북 캡쳐

 
캐나다를 대표하는 록 밴드, 러시(Rush)의 드러머 닐 피어트가 뇌종양 합병증으로 현지 시각 1월 7일 세상을 떠났다고 10일 알려졌다. 향년 67세.

1974년 베이스와 보컬의 게디 리(Geddy Lee), 기타리스트 알렉스 라이프슨(Alex Lifeson)과 함께 합을 맞춘 닐은 로큰롤 역사상 최고로 손꼽히는 드럼 연주와 깊은 철학의 가사로 독보적인 '러시 사운드'를 확립했다. 게디 리와 알렉스 라이프슨이 건재함에도 팬들은 닐 피어트의 죽음을 곧 러시의 끝으로 이해한다. 그는 드러머들의 드러머, 뮤지션들의 뮤지션이었다.

닐 피어트가 처음부터 러시의 멤버였던 것은 아니다. 1968년 알렉스 라이프슨이 결성한 러시의 오리지널 라인업은 제프 존스(베이스)-알렉스 라이프슨-존 럿지(드럼)였다. 제프 존스는 곧바로 게디 리로 교체되었고, 원래 드럼 스틱을 잡고 있던 존 럿지는 1974년 당뇨병에 시달리며 드럼 스틱을 놓았다. 오디션장에서 닐 피어트를 처음 본 알렉스는 그가 탐탁지 않았지만, 더 후(The Who)의 키스 문과 닮은 연주 스타일을 인정하여 게디 리와 함께 닐을 밴드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때까지 러시는 레드 제플린의 아류라 해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특출 나지 않은 팀이었다. 닐의 합류를 통해 무색무취한 하드 록 밴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 탑재하며 단숨에 전설의 반열에 도전하게 됐다. 첫째는 악기의 극한을 끌어내는 '연주의 미학'이요, 둘째는 거대한 세계와 소박한 일상을 모두 아우르는 '노랫말의 미학'이다.
 
 러시(Rush)의 2015년 프로필 사진. 왼쪽부터 게디 리(베이스, 보컬), 닐 피어트, 알렉스 라이프슨(기타)이다.

러시(Rush)의 2015년 프로필 사진. 왼쪽부터 게디 리(베이스, 보컬), 닐 피어트, 알렉스 라이프슨(기타)이다. ⓒ 러시 페이스북 캡쳐

 
18세의 어린 나이에 영국으로 건너가 1년 6개월간 활동하며 기라성 같은 블루스-하드록 밴드들의 강력한 연주를 습득한 닐은 합류 후 첫 앨범 1975년 < Fly By Night >부터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1977년 라이브 앨범 < All The World's A Stage >의 ´Working man / Finding my way'를 들어보자. 불꽃같은 게디 리와 알렉스의 연주 아래 묵직한 킥과 섬세한 하이햇이 단단히 곡을 지탱하며 무아지경의 경지를 향해 질주한다.

1976년 장대한 프로그레시브 록 앨범 < 2112 >로 야망을 드러낸 후 이듬해 1977년 < A Farewell To Kings >와 < Hemispheres >는 숨겨둔 재능의 전격 해방이다. 일반 드러머들의 3배에 달하는 드럼 세트에서 튜블러 벨즈, 퍼커션, 윈드차임, 글로켄슈필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리듬을 분해하는 'Xanadu'와 재즈적 터치 및 블루스의 셔플 리듬을 두 파트로 쪼개 놓은 'Cygnus X-1 Book I: The Voyage'는 의심할 바 없는 천재의 작품이다. 게디 리가 "< Fly By The Night > 앨범보다 녹음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라고 언급한 'La villa strangiato'는 러시 연주 미학의 정점. 너바나의 데이브 그롤에게 드럼 스틱을 잡게 한 시기의 작품들이다.

대표곡으로 손꼽히는 'The spirit of radio'와 'Tom sawyer', 'Limelight'에서도 닐 피어트의 연주는 확실히 동시대 드러머들과 다르다. 더 섬세하게 리듬을 쪼개고 더 정확하게 타격한다. 변화무쌍한 'Yyz'를 주도하는 것도 닐의 드럼이다. 존 보넘의 파워에 테크닉을 더하고 코지 파웰의 묵직함에 아름다움을 더한 인물이 닐 피어트다.

이런 경향은 닐이 1992년부터 프레디 그루버의 지도 아래 버디 리치, 진 크루파 등 위대한 재즈 드러머들의 연주에 감명받아 드럼 스틱 잡는 법을 매치드 그립에서 레귤러 그립으로 바꾸면서 더욱 선명해진다. 초심으로 돌아간 닐 피어트는 1994년과 1997년 버디 리치를 추모하는 < Burning for Buddy > 앨범을 발표하며 또 한 번의 진화를 멋지게 선언했다. 40여 년의 긴 시간 동안 '드럼 최강자'의 지위를 놓지 않았던 이유다.
 
 닐 피어트는 생전 일반 드럼 세트의 3배에 달하는 거대한 드럼 세트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한치의 오차 없는 정교한 연주를 선보였다.

닐 피어트는 생전 일반 드럼 세트의 3배에 달하는 거대한 드럼 세트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한치의 오차 없는 정교한 연주를 선보였다. ⓒ 러시 페이스북 캡쳐

 
'노랫말의 미학'에서도 탁월했다. 1960년대나 지금이나 드러머가 밴드의 노랫말과 세계관을 설계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닐 피어트는 그 어려운 일을 해왔다. 그것도 아주 깊고 넓으며, 독창적인 작법으로 해냈다. 가사를 쓰는데 큰 흥미가 없던 게디 리와 알렉스 라이프슨을 대체하여, 닐 피어트는 방대한 배경 지식과 문학적인 표현의 노랫말로 밴드의 메인 작사가 자리를 꿰찼다. 닐이 있었기에 단순 하드 록 밴드였던 러시는 프로그레시브 록 / 메탈을 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즐겼던 닐 피어트는 러시 합류 후 흥미로운 주제로 록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영국 체류 시 만났던 소설가이자 철학가인 아인 랜드(Ayn Rand)의 객관주의(Objectism) 사상이 큰 영향을 줬다. < Fly By The Night >의 'Anthem'과 20분에 달하는 SF송 '2112'가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닐은 실험적인 소리와 대곡 지향적인 프로그레시브 록이 필요로 하는, 선명한 세계관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의 가사는 지적인 팬층과 일반 대중의 기호를 모두 자극한다. 공상과학소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미래를 그리는 그의 이야기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흥미롭다. '2112'와 비견할 수 있는 'Cygnus X-1 Book'이 대표적인 곡. 1편 'The voyage'로는 블랙홀에 끌어당겨지는 주인공의 심리를 상세히 묘사하고 이어지는 'Hemisphers'에선 인간 좌뇌와 우뇌의 대결을 다룬다. 불사의 공간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의 서사시 'Xanadu' 또한 러시의 대곡 리스트를 장식한다.

동시에 닐은 블루 컬러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일상을 포착하여 그들로 하여금 러시의 노래를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했다. 라디오로 음악을 들었던 음악 팬들에게 즉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The spirit of radio', 미국인들의 자동차 찬양을 정확히 포착한 'Red barchetta', 소외받는 왕따들을 위한 'Subdivisions' 등이 모두 닐 피어트의 작품이다. 러시의 '보편성'에 반한 충성스러운 팬들은 커리어 내내 평론가들에게 공격받고 방송국에서 외면당하던 밴드를 전폭 지지하며 팀을 지탱했다.
 
 닐 피어트는 드럼 연주로도 최고의 경지에 올랐음은 물론 공상과학소설과 일상을 넘나드는 밴드 러시의 노랫말을 작성한 만능 아티스트였다.

닐 피어트는 드럼 연주로도 최고의 경지에 올랐음은 물론 공상과학소설과 일상을 넘나드는 밴드 러시의 노랫말을 작성한 만능 아티스트였다. ⓒ 러시 페이스북 캡쳐

 
세계적으로 25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러시는 멤버 전원이 캐나다 훈장 2급 (OC)를 수여받았으며 2013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됐다. 그러나 팀의 승승장구와 달리 닐 피어트의 삶엔 비극이 많았다. 1996년 교통사고로 19살 딸을 잃었고 2년 후 폐암 투병 중이던 아내도 세상을 떠났다. 큰 충격을 받은 닐 피어트는 러시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여행을 떠나 북중미 대륙을 오토바이로 8만8000km 횡단하여 '고스트 라이더'라는 책을 발표하며 심신을 위로했다.

2015년부터는 발목과 어깨 통증 악화로 음악 은퇴를 선언한 상태였다. 2018년엔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뇌종양을 선고받았다. 치료가 불가능한 악성 교모세포종이었다. 1년 반을 고통스럽게 버텼으나 기적은 없었다. '로큰롤의 진정한 거인'(데이브 그롤), '신의 손을 가진 사나이'(테일러 호킨스)라는 후배들의 헌사와 함께, 닐 피어트와 러시의 질주가 마무리됐다. 그는 영혼을 두드린 위대한 드러머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중음악웹진 이즘(www.izm.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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