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라 이야기> 포스터

영화 <브라 이야기> 포스터 ⓒ 알토미디어


열차를 모는 기관사 눌란(프리드렉 미키 마뇰로비치 분)은 후임 기관사(드니 라방 분)를 교육하며 은퇴를 준비한다. 기차를 청소하면서 우연히 딸려온 물건의 주인을 찾아주곤 하던 눌란은 퇴직을 앞둔 전날, 열차 앞에 걸린 하늘색 브래지어를 발견한다. 그는 브래지어의 주인을 알아내기 위해 동네를 탐방하기 시작한다.

영화 <브라 이야기>는 은퇴를 앞둔 기관사가 우연히 습득한 브래지어의 주인을 찾아 나서는 내용을 다룬다. 연출은 1968년 독일에서 태어난 현대판 동화 이야기꾼으로 우리에겐 <투발루>(1999)와 <우리 친구 피들스틱스>(2014)로 친숙한 바이트 헬머 감독이 잡았다.

바이트 헬머 감독은 유리 구두의 주인을 찾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브래지어로 바꾼 발칙한 성인 동화를 어떻게 떠올리게 되었을까? 그는 서아시아와 동유럽 사이에 위치한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의 수도인 바쿠의 한 독특한 동네가 영화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한다.

"집들 바로 옆에 철로들이 놓여있고, 이 철로가 거리이자, 골목, 아이들의 놀이터 역할을 한다. 철로를 중심으로 생활이 구성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유조통을 실은 기차가 지나간다. 이런 배경으로부터 고독한 철도 기관사 이야기의 영감을 얻었다."
 
 영화 <브라 이야기>의 한 장면

영화 <브라 이야기>의 한 장면 ⓒ 알토미디어


바이트 헬머 감독은 퇴직을 앞둔 기관사가 사랑을 찾는 이야기를 독특한 화법으로 들려준다. <브라 이야기>의 특이한 점은 대사가 없단 사실이다. 영화는 주변 소음 등 소리, 배경 음악은 사용했지만, 인물의 대사는 없다. 데뷔작 <투발루>처럼 말이다.

과거 무성 영화 시기엔 자막을 통해 이야기의 주요 내용을 전달했다. 유성 영화에선 그 역할을 대사가 맡았다. 오늘날엔 대사가 사건, 상황, 나아가 감정까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런 시대 속에서 대사를 제거하겠다는 건 창작자 입장에서도, 관객 입장에서도 간단치 않은 선택이다. 사람 사이에서도 몸짓만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영화 전체를 그렇게 만든다고 상상해보라.

우선, 대사가 없어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전체적인 구조가 간단해야 한다. 지나친 단순화는 슬랩스틱 소동의 나열에 불과할 수 있기에 극 구성의 균형이 필요하다.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배경의 구성, 편집의 활용, 음악의 효과, 인물의 행동 등 이미지와 소리를 구성하는 데 더 많은 고민이 요구된다.

무언극에 가까울 정도로 대사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르 아브르>(2011), 신체의 언어만 사용하는 도미니크 아벨, 피오나 고든, 브루노 로미의 <룸바>(2008)가 시각적 서사방식에 능한 대표적인 사례다. 바이트 헬마 감독 역시 "대사의 도움을 받지 않는 영화는 특수한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고 작업을 설명하며 <브라 이야기>가 "관객에게 특별한 체험이 될 것"임을 강조한다.
 
 영화 <브라 이야기>의 한 장면

영화 <브라 이야기>의 한 장면 ⓒ 알토미디어


<브라 이야기>에서 마을 사이를 지나가는 철로를 따라 열차가 달리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열차는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 사이를 통과하고, 신호 불빛이 바뀌면 동네 꼬마(이스마일 클루자데 분)가 뛰어다니며 호루라기를 분다. 그러면 철로 위에서 게임을 하던 남자들과 빨래를 널던 여자들은 일제히 비킨다.

이것은 만들어진 세트가 아닌, 실제 생활하는 공간을 그대로 담았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마을 풍경은 아날로그 색감과 효과를 넣은 디지털 이미지와 어울려 지나간 시대를 그리워하는 마음, 사라져 버린 것들을 향한 아쉬움을 자극한다.

<브라 이야기>는 고전 동화 '신데렐라'를 유쾌하게 비틀었다. 기관사 눌란은 '신데렐라'의 왕자가 유리 구두의 주인을 찾는 것처럼 브래지어를 들고 마을 곳곳을 돌아다닌다. 그는 브래지어의 주인을 찾기 위해 온갖 창의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브래지어의 주인을 찾는다는 건 자칫 변태적 행위 내지 집착으로 보일 수 있다. 영화에서 기관사 눌란의 행동은 지나치리만치 과감한 구석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눌란이 저급하게 보이지 않은 건 프리드렉 마키 마뇰로비치의 표정, 감정 연기가 뛰어나고 동네 꼬마의 순수성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영화 <브라 이야기>의 한 장면

영화 <브라 이야기>의 한 장면 ⓒ 알토미디어


흥미로운 건 여성들의 반응이다. '신데렐라'에서 유리 구두의 주인이 되고 싶은 여성들에겐 남성에 의존하는 신분 상승의 욕망만이 가득했다. 반면에 <브라 이야기>에서 기관사 눌란이 만난 여성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여준다. 한 여성은 브래지어를 가슴에 대자 화를 낸다. 어떤 여성은 춤을 추며 그를 유혹한다. 브래지어를 억지로 착용하려는 여성도 있다.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브라 이야기>의 첫 장면엔 형형색색의 브래지어를 빨래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나온다. 기관사 눌란은 브래지어의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여성들의 감춰진, 또는 억압된 욕망을 접한다. 브래지어를 찾는다는 것은 결국 여성의 다양한 얼굴, 바로 욕망을 마주한다는 의미인 셈이다. 이런 기관사 눌란과 대립하는 남성들은 자연스레 가부장 제도의 붕괴, 여성의 해방과 연결된다. '신데렐라'의 창의적인 재해석이 아닐 수 없다.

<브라 이야기>가 신선한 체험을 준다. 무언극의 형식, '신데렐라'를 여성의 다양한 욕망으로 재해석한 면에서 그렇다. 그리고 이제는 사라진(영화에 나오는 마을은 지금은 철거된 상태다) 과거의 풍경을 경험할 기회이기도 하다. 자본이 찍어내는 천편일률적인 공장형 영화로 인해 작가형 영화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을 찾는 영화의 실험은 여전히 멈추지 않은 채로 달리고 있다. 2019 아반카 필름 페스티벌 남우주연상, 각본상, 장편 부문 특별언급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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