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바람의 언덕>이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라는 다소 생소한 상영방식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과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바람의 언덕> 팀은 2020년 4월말까지, 전국 각 지역의 영화 커뮤니티와 독립예술영화 극장 등에서 매주 토요일 혹은 일요일을 포함해 20회 정도의 상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매회 상영을 마치면, 상영을 주최한 커뮤니티 혹은 개인의 소개와 극장의 소개를 포함하는 이 '아주 특별한 여정'을 연재글로 전합니다. 그 첫번째는 '페미씨네'와 '진주시민미디어센터'가 보내온 편지입니다.[기자말]
 
 <바람의 언덕>의 진주 상영회 포스터.

<바람의 언덕>의 진주 상영회 포스터. ⓒ 영화사삼순

  여성주의 콘텐츠 상영회 소모임 '페미씨네'

영화 <바람의 언덕>은 엄마에게 엄마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페미씨네 12월 정기 상영회' 홍보물을 제작할 당시 홍보문구를 '떠나야만 했던 사람'으로 지었는데, 영화의 주제와 잘 맞아 다행이라고 생각했고요.

우리 사회와 문화에 뿌리 깊게 남은 가부장제에서 그 존재가 가장 많이 지워진 건 여성, 그리고 당연히 엄마일 것입니다. 엄마에게 주어지는 책임은 의문을 던지는 게 이상할 정도로 당연한 것이 됐고, 그 속에서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바람의 언덕>은 떠났던 영분이 다시 떠나 돌아가는 모습을 그리면서 또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살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따뜻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영화여서 그랬을까요. 상영회 당일(작년 12월 26일) 많은 관객 분들이 질문을 던져주셨습니다. 그 질문들에 감독님과 배우 분들이 아주 자세하고 솔직하게 대답해주신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영분 역을 맡으신 정은경 배우가 답변을 하다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 이 영화가 배우에게도 얼마나 소중한 작품인지 와 닿았습니다.
 
 진주시민미디어센터 상영회에서 OST '항해'를 연주하고 노래 부르는 <바람의 언덕>의 김태희, 정은경, 장선 배우.

진주시민미디어센터 상영회에서 OST '항해'를 연주하고 노래 부르는 <바람의 언덕>의 김태희, 정은경, 장선 배우. ⓒ 진주시민미디어센터

 
영화 말미, 정은경, 장선 두 배우가 부른 영화 OST '항해'가 나옵니다. 엄마와 딸 역할을 맡았던 두 배우가 직접 부른 노래는 '우리 이 삶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 지 아무도 모르고 그 앞에서 우리 모두 두렵지만, 살아왔던 것처럼 어떻게든 잘 나아갈 수 있을 거'라던 가사답게 잔잔한 위로가 되었는데요.

그래서 GV(관객과의 대화) 마지막 김태희 배우의 기타 반주에 맞춰 정은경, 장선 두 배우가 '항해'를 불러줬던 순간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질문에 대한 정성 담긴 답변과 더불어 진주시민미디어센터 상영관에서 울려 퍼진 배우 분들의 목소리는 추운 연말 따뜻한 위로가 되었기에 충분했습니다.
 
 지난해 9월 페미씨네가 진행한 진주여성영화제 '쪽빛극장'.

지난해 9월 페미씨네가 진행한 진주여성영화제 '쪽빛극장'. ⓒ 페미씨네

 
우리나라는 비수도권, 특히 소도시일수록 여성영화와 독립영화를 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다른 지역으로 가 영화를 봐야할 때가 많고, 그런 여건이 되지 않을 때는 관람을 포기하고 IPTV 서비스가 되길 기다려야 할 때가 많습니다. 또한 지방은 여전히 페미니즘이 뭔지 자세히는 모르면서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들이 페미씨네가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되었습니다.

페미씨네는 '여성주의콘텐츠상영회 소모임'입니다. 극장에서 잘 상영하지 않는 여성영화를 보고 싶은 대학생들이 처음 만든 소모임으로, 설립 초기였던 2016년엔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여성영화를 보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어 2017년 봄과 가을 '달빛극장'을 통해 페미씨네 구성원뿐만 아니라 관객 분들과 함께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상영회를 시작했습니다. 2019년엔 진주여성영화제에서 '쪽빛극장'을 9월 27일, 28일 양일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동네 페미니즘>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경남 지방에 사는 페미니스트 여러 명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로,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죽음의 땅'이라 불리는 경상남도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활동을 이어가는지를 알아보는 위한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이렇듯 여성영화를 상영하고, 여성영화제를 개최하며 사람들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매체인 영화를 통해 페미니즘에 대해 더 쉽고 말랑말랑하게 다가가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페미씨네의 설립 목적이고 활동 목표입니다.

페미씨네 기획단 구성원은 2019년 기준 기획단장을 포함 8명입니다. 기획단은 영화 상영 관련 일을 담당하는 상영팀과 페미씨네 및 상영 관련 홍보물을 제작하고 SNS에 업로드하는 홍보팀, 그리고 페미씨네 자료 아카이빙을 담당하는 연구팀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진주여성영화제를 함께 준비하고 진행해야했기 때문에 팀을 나누지 못했던 2019년과 달리, 올해는 확실한 역할 분담으로 개인이 짊어지는 일을 줄이려 합니다.

페미씨네의 목표는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안정성 구축입니다. 사실 구성원 대부분이 대학생이기 때문에 졸업이나 휴학을 하면 진주를 떠나야 하는 상황입니다. 기획단 구성원 모집 때도 SNS 뿐만 아니라 대학 신입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대학 커뮤니티에 홍보를 하는 편인데요.

그때마다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홍보 게시물을 신고하기 때문에 오랜 활동이 예상되는 신입생들의 유입조차 어려운 편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대학교 캠퍼스 내에도 홍보물을 게시할 예정입니다.

더 큰 목표는, 진주여성영화제를 진주 여성단체들과 함께 주최하는 것입니다. 진주 소재의 여성단체들을 대상으로 2020년 하반기 개최 예정인 진주여성영화제와의 협약을 요청할 계획입니다. 아무래도 진주에서 오래 활동하고 각종 행사를 많이 개최하고 진행해 본 그 분들과 함께라면 조금 더 원활하게 진주여성영화제를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글쓴이_페미씨네 전진숙 단장
 
 야간인디씨네의 상영작 엽서 콜렉션.

야간인디씨네의 상영작 엽서 콜렉션. ⓒ 진주시민미디어센터

 
'진주 같은 영화제'를 만들어가는 진주시민미디어센터와 인디씨네

인디씨네는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40석 규모의 비상설 극장이에요. 매월 독립/예술영화를 2편씩 선정,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간 상영하고 있어요. 경남은 독립/예술영화를 접할 극장이 정말 흔치 않아요. 창원의 '씨네아트 리좀'과 진주의 '인디씨네'가 유일하답니다.

진주라는 작은 도시에서 10년 넘게 꾸준히 지속돼 온 인디씨네는 '진주시민미디어센터'가 운영을 맡고 있어요. 진주 시민들이 (독립예술)영화를 보기 위해 창원, 부산 등 타지역까지 가지 않고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열심히 운영 중이고요. 그러나 비상설 극장이다보니 더 다양한 영화들을 자주 상영할 수 없어 저희도 아쉬운 마음이 커요. 개봉 영화는 많지만 '지역'까지 개봉하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까요.

그래서 진주시민미디어센터는 인디씨네의 정기상영 외에도 다양한 상영회를 열고 있어요. 매년 꼭 진행하는 '무비토크'가 대표적이에요. 2019년엔 '청소년과 함께하는 무비토크'라는 제목으로 청소년들이 직접 진행하고 지역 청년 뮤지션이 공연도 하고 영화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단편영화 <유월>(연출 beff)과 <엘리제를 위하여>(연출 임승현)를 상영했고요.

'야간인디씨네'는 밤 10시 즈음부터 함께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는 비정기 프로그램이에요. 2015년부터 2018년까지는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으로 매월 소담하게 모여 영화를 보곤 했습니다(2019년은 한 번 진행 했고요). 또한 진주미디어센터가 응원하는 '페미씨네'에서도 매월 정기상영회를 열고 있답니다.

그리고 가장 큰 행사는 '진주같은영화제'입니다. 이름을 들으면 피식 웃는 분들도 계시고 이름이 예쁘다고 이야기해주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느끼시는 것처럼,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제목이에요. '지역'으로서 진주이기도하고 '보석' 진주이기도 해요. 진주를 비롯한 이 '경남 지역'에서 꾸준히 영화를 제작해가는 창작자분들의 작품을 상영하고, 진주의 관객 분들이 보지 못한 다양한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자리이고요.
 
 '진주같은영화제' 중 '영화인의 밤' 활동 모습.

'진주같은영화제' 중 '영화인의 밤' 활동 모습. ⓒ 진주시민미디어센터

 
우리 동네에서 찍은 영화를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 보면 재밌지 않을까요? '진주같은영화제'는 매년 경남 지역만을 묶어 '경남지역 단편섹션'과 '경남지역 장편섹션'을 상영하고 있어요. 2019년 제12회 진주같은영화제는 경남지역 단편 4편과 장편 1편을 만날 수 있었어요. 실제로 관객 분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GV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섹션들이랍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 바로 '영화인의 밤'입니다. 다른 영화제도 감독들 간의 네트워크 파티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진주시민미디어센터는 이 자리에 경남 지역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감독님들을 모두 모셔서 다른 지역 감독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을 마련합니다.

또 재밌는 것은, 진주같은영화제는 미디어센터만의 힘으로 진행되지 않아요. '무비메이트 모락모락'이란 단체가 영화인의 밤의 프로그램을 맡아 아주 알차게 준비해 준답니다. 이렇게 영화를 사랑하는 시민들과 또 지역의 제작자들, 영화제를 찾아온 게스트들, 그리고 영화제를 만드는 미디어센터 활동가들까지, 모두가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는 이 자리가 정말 귀하고 소중한 것 같습니다. 올해는 조금 더 재밌게 꾸며보려고 하고요.

이외에 '청소년 영화동아리'도 올해까지 진행된다면 3년째네요! 영화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모여 함께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또 1년에 한 번 '900원 영화제'라는 작은 영화제를 열고 있습니다.

왜 900원일까요? 청소년 버스 요금이 900원이라서 친구들이 이름을 그렇게 정했답니다. 비록 하루 열리는 영화제이지만, 영화동아리 친구들이 직접 상영작을 프로그래밍하고 상영 후 토크 등 부대행사까지 진행해요. 

작은 공간에서 생각보다 다양한 상영회를 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상영회든 꾸준한 지속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운영하는 사람들도 꾸준히 붙어있을 수 없고 또 운영 예산이 늘 준비되는 것도 아니다보니. 열심히 해왔지만 내년 이후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상영회들도 많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디씨네는 이 공간을 믿고 꾸준히 찾아와주시는 관객 분들, 그리고 상영회와 GV를 대하는 관객 분들의 눈빛과 태도를 보면서, '그래 이거지'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영화는 너무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됐고, 굳이 집밖을 나가지 않더라도 내 손안에서 수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잖아요.

그럼에도 영화를 '함께' 보고 '함께' 이야기 나눌 때, 그 시간만큼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유일한 시간인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과 영화를 보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그런 시간 이후에 내가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는 다시금 달라지게 돼 있으니까요.

요즘 들어 기분이 좋은 것은, 더 많은 분들이 저희를 찾고 문의해주세요. 2019년 화제작인 <벌새>와 <메기>의 경우도 상영문의가 정말 많이 들어왔고요. 그래서 정기 상영은 못했지만 특별 상영회를 진행했어요. 이렇게 적극적으로 문의하고 관심 갖는 관객 분들을 보면서, 더욱 잘해야겠다는 욕심과 책임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진주에서 그런 '적극적인 영화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니 저희가 열심히 하고, 더 재밌는 상영회를 만들어봐야죠. 그것이 인디씨네와 진주시민미디어센터의 존재의 이유라고 생각해요.

글쓴이_인디씨네 활동가 정현아
 
 진주시민미디어센터가 제작한 <바람의 언덕> 스페셜 굿즈.

진주시민미디어센터가 제작한 <바람의 언덕> 스페셜 굿즈. ⓒ 영화사삼순

 
 
 진주시민미디어센터에서 기념촬영에 응한 관객들과 김태희(좌로 두번째), 장선 배우(좌로 세번째).

진주시민미디어센터에서 기념촬영에 응한 관객들과 김태희(좌로 두번째), 장선 배우(좌로 세번째). ⓒ 진주시민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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