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경선.

배우 김경선. ⓒ 서정준

 
지난 6일 오후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배우 김경선을 만났다. 2004년 데뷔해 어느덧 16년 차를 맞이한 그는 시카고의 마마 모튼으로 익숙한 배우다. 하지만 연극으로 시작해 소극장과 대극장을 오가며 다방면에서 활약해온 내공있는 배우로 최근 몇 년 사이에도 <투모로우 모닝> <오디너리데이즈> <브로드웨이 42번가> <시티오브엔젤> 등에서 활약하며 존재감을 알렸다.

<웃는 남자>는 2018년에 초연된 EMK뮤지컬컴퍼니의 대형 창작 뮤지컬이다. 이야기의 구성이나 전개에서 아쉬움을 표하는 의견들도 있었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환상적인 비주얼과 한국 관객의 취향을 반영한 넘버들이 호평을 받았다. 이번 재연은 3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타고난 주인공은 아니지만, 무대 위 자신만의 매력을 통해 수많은 관객과 창작진의 선택을 받은 김경선은 이번 뮤지컬 '웃는 남자'에서 배우 한유란과 함께 새롭게 앤여왕으로 출연한다.

EMK뮤지컬컴퍼니와 첫 작업이라고 밝힌 그는 "원래는 EMK에서 몇 번이나 저를 추천해주셨는데 매번 시간이 맞지 않다가 이번에 잘 맞아떨어졌다. 처음에는 <레베카> 쪽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오디션을 잘 봐주셨는지 <웃는 남자> 오디션도 제안받았다"며 처음 작품에 참여한 과정을 밝혔다.

이어 "대본을 보고 음악 들었을 때 '이 작품 매력이 있구나', '이 공연이 웃는 남자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런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초연배우들이 고생을 했겠구나 싶었다(웃음)"며 <웃는 남자>의 매력이 자신을 끌어당겼다고 첫 만남을 회상했다.
 
 배우 김경선.

배우 김경선. ⓒ 서정준

 
사실 김경선이 맡은 앤 여왕은 전작 <시티오브엔젤>의 도나/울리처럼 극중 우르수스의 극단 단원인 비너스로도 변신한다.

"<시티오브엔젤> 때도 1인 2역을 했잖아요. 애초에 1인 2역인 작품이고 대놓고 다르게 연기하는 걸 보여주는 게 포인트라면 앤 여왕과 비너스는 그런 느낌이 아니에요. 도나와 울리는 웃는 모습, 걸음걸이 그런 디테일도 다르게 했다면 이번에는 성격적인 면을 표현하는데 초점을 맞췄죠.

앤 여왕은 지금까지 한 역할 중 가장 '높은' 역할이에요(웃음). 고소공포증이 있지만 리허설 때 보니 약간 해볼만하더군요(웃음). 초연을 보진 못했는데 오히려 선배님들이 만드신 뚜렷한 캐릭터에 눌리지 않고 '김경선의 앤 여왕'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비너스는 유랑극단 단원이에요. 우르수스 대장의 오른팔 격이죠. 그윈플렌과 데아를 엄마처럼 친구처럼 가족같이 키웠달까요. 좀 아픔이 있는 아이들이니만큼 밝고 따듯한 에너지를 주려고 해요."


<시티오브엔젤>의 도나/울리와 앤 여왕에게 또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실존인물(1665~1714)이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김경선은 "자료조사를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며 로버트 요한슨 연출의 추천으로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를 본 소감을 이야기했다.

"앤 여왕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를 봤어요. 연출님도 오디션 볼 때부터 꼭 보라며 추천하신 작품이죠. 앤 여왕은 무척 불행한 사람이에요. 18번을 임신했지만 대부분 유산, 사산했고 남은 자식들도 채 열 살을 살지 못했죠. 영화에서도 토끼를 그 숫자만큼 키우는 장면이 있어요. 앤 여왕은 모든 걸 다 가졌지만 외롭고 불쌍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고, 영화 속에서도 토끼를 귀여워하는 순수한 모습이 오히려 아파보였죠."

그리고 그가 앤 여왕에게서 발견해낸 키워드는 '인정'이었다.

"<웃는 남자>의 앤 여왕은 조시아나라는 이복동생을 엄청 질투하고 미워해요. 더 강한 위치에 있고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인데, 마음만 먹으면 없애버릴 수도 있는 조시아나 공작부인에게 왜 그럴까 싶었죠. 제 생각에 비슷한 수준의 상류층들에게 자신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목말라있는 게 앤 여왕이에요.

그런데 앤 여왕은 왕이잖아요. 자신과 동급이 없어요. 그래서 모든 걸 가진 채 행복해보이는 이복동생인 조시아나를 고통에 빠트려 자신이 상대적으로 행복하다고 느끼고 싶은 게 아닐까 싶어요. 극 초반에도 조시아나를 억지로 희대의 바람둥이인 클랜찰리 가문의 서자랑 결혼시키려 하죠. 후에는 그윈플렌이 가문의 적법한 후계자란 이야기를 듣고 더 좋아해요. '조시아나를 입이 찢어진 광대랑 결혼을 시킬 수 있다니'랄까요. 제가 해석하기엔 앤 여왕이 극중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바로 그때가 아닐까 싶죠."

 
 배우 김경선.

배우 김경선. ⓒ 서정준

 
한편, 앤 여왕은 김경선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캐릭터다. 뮤지컬 <웃는 남자>가 출산 전 마지막 작품이기 때문이다. 2018년 고스트컴퍼니 대표이자 배우인 유환웅과 결혼한 그는 이번 작품 이후 휴식기를 갖고 출산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물론 또 어떤 좋은 역할이 들어올지도 모르지만요(웃음). 사실 그동안 유부녀가 되면서 배우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적었어요. 어릴 때부터 여자주인공만 한 게 아니라 다양한 나이대의 역할을 해왔고, 남편 역시 배우 출신이기 때문에 배우로서의 고민이나 시간이 필요한 부분을 이해해주셔서요. 그동안 길게 쉬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해온 편이라 이렇게 가져올 공백기가 어떤 느낌이 될진 잘 모르겠네요. 그래서 <웃는 남자>를 더 열심히 했어요. 연습도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모두 '올출'했죠."

공백기 동안 그냥 쉬지 않고 대학원을 다니며 발성치료를 공부할 계획이라고 밝힌 김경선에게 그럼 뮤지컬 <웃는 남자>가 배우 김경선의 1막 엔딩이냐고 묻자 "나쁘지 않다"며 웃었다.

"이게 1막이라면 나쁘지 않네요. 앞으로 16년을 더할 수 있으면요(웃음). 한 3막까지 하면 안 될까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정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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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문화, 연극/뮤지컬 전문 기자. 취재/사진/영상 전 부문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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