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안재홍 인터뷰 사진

배우 안재홍 인터뷰 사진 ⓒ 제이와이드 컴퍼니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것이냐고? 절대 안 돌아간다."

배우 안재홍은 2020년 새해를 맞아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를 전하며 이같이 말했다.

"친구가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타임머신이 생긴다면) 돌아갈 것이냐고 묻더라. 돌아가도 똑같이 살 것 같다. 돌아보면 아쉽고 부족한 면도 많지만 후회는 없다."

2014년 스물아홉의 안재홍은 영화 <족구왕>으로 국내 여러 영화제의 신인배우상을 휩쓸며 영화계 주목을 받았다. <족구왕>을 계기로 캐스팅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1988>에서 '정봉이'로 많은 사랑을 받은 그는 이후 빠른 속도로 충무로와 안방극장의 신 스틸러 배우로 자리 잡았다. 

올해 서른다섯을 맞은 안재홍은 어느덧 상업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 가장 첫 번째로 이름을 올리는 주연으로 발돋움했다. 물론 이는 20대의 안재홍이 여러 연극 무대에 오르고, 수많은 영화에 조·단역으로 출연하며 쌓아온 내공의 힘일 것이다. 그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힘주어 말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가 이번에 선택한 영화 <해치지않아>는 망하기 일보 직전의 동산파크 신임 원장을 맡게 된 수습 변호사 태수(안재홍 분)가 동물원 정상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린다. 동명의 웹툰을 각색한 영화는 동물 없는 동물원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려 사육사들이 동물로 위장 근무를 감행하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안재홍을 만났다. 그는 평소 손재곤 감독의 열혈 팬이어서 "시나리오를 읽기 전부터 손재곤 감독의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미 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달콤 살벌한 연인> <이층의 악당> 중편 영화인 <너무 많이 본 사나이>까지. 손재곤 감독님의 영화들을 다 너무 좋아한다. 시나리오를 받고 손재곤 감독님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부터 이미 하고 싶었다. 그만큼 팬심이 컸다. 시나리오를 보는데 너무 재밌더라. 신선하고 기발하고 전에 본 적 없는 소재였다. 전개도 세련되고 유머에도 매료됐다. 너무 참여하고 싶었다."
 
 배우 안재홍 인터뷰 사진

배우 안재홍 인터뷰 사진 ⓒ 제이와이드 컴퍼니

 
극 중에서 안재홍을 비롯한 배우들은 동물 수트를 입고 동물을 흉내낸다. 영화에는 특수분장 전문가가 만든 꽤 리얼한 동물 수트가 등장해 관람객을 감쪽같이 속인다. 안재홍은 동물 수트가 촬영장의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초미의 관심사였다고 전했다. 그 역시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동물 탈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까, (영화) 관객에게 진짜처럼 보이는 게 가능할까 걱정했다고 고백했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까지 동물 수트가 완성되지 않았다. 촬영과 (수트) 제작을 같이 했다. 3~4개월에 한 동물씩 만들 정도로 엄청난 공을 들였다고 들었다. 동물 수트는 이 영화에 참여하는 배우, 스태프들 모두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동물 탈을 실은) 트럭이 온 순간은 아직도 기억난다. 모든 배우들, 스태프들이 다 나와서 트럭 뒷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첫 번째가 고릴라 탈이었는데 '와 이 정도면 (속이기) 가능하겠다' 싶더라. 시나리오 속 이야기가 성립되겠다, 말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태수가 맡은 동물은 하얀 털의 북극곰이다. 영화에서 태수는 관람객 몰래 콜라를 마시려다가 들켜 '콜라 먹는 곰'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안재홍은 "한겨울에 촬영을 해서 괜찮았다. 추운 날씨에도 땀에 흠뻑 젖을 만큼 털옷의 보온성이 좋았다"면서도 "북극곰 수트가 굉장히 크고 무거웠다. '내가 이렇게 움직이면 이렇게 보이겠지' 싶었는데 그게 아니더라"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자료조사를 위해 곰에게 습격 당하는 내용의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찾아볼 정도였다. 그러나 결국 안재홍이 찾은 답은 '본질'이었다고.

"가능한 많은 자료를 참고했다. 동물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부터 유튜브도 보고 SNS도 많이 찾아 봤다. 일단 북극곰과 친해지려고 했다. 브랜드 모델 중에 생각보다 북극곰이 많더라. 욕실 전문 기업도 있고 밀가루도 있고 콜라도 있고. 직접 (동물원에서) 보지는 못했어도 친밀한 동물이더라.

그래서 완벽하게 똑같이 북극곰의 움직임을 묘사하기보다는, 태수의 움직임처럼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태수가 곰이 돼서 콜라 뚜껑을 어떻게 딸지가 더 중요했다. 태수가 (돌 너머로) 관람객을 빼꼼 바라볼 때 어떤 표정일까 관객에게 더 잘 느껴지길 바랐다. 관람객을 속이고 관객까지 설득시키려면 더 본질적인 연기를 해야했다. 동물보다 태수라는 인물의 감정과 상황에 더 몰입하려 했다."

 
 배우 안재홍 인터뷰 사진

배우 안재홍 인터뷰 사진 ⓒ 제이와이드 컴퍼니

 
반려묘와 단둘이 살고 있는 안재홍은 <해치지않아>를 촬영하며 동물의 심정을 아주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특히 동물원 방사장에 북극곰 탈을 쓰고 들어가 있을 때는 진짜 동물원 속 동물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고. 

"200여 명 정도의 보조출연자와 호흡하면서 촬영했다. 그분들 앞에서 북극곰 연기를 할 때는 조금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동물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건 과한 표현이다. 그런데 흔히 '동물원에 동물 보듯이', '동물원에 동물이라도 된 양'이라는 표현을 쓰시지 않나. 진짜 동물원에 동물이 돼 보니까, 그런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표면적으로는 태수가 얼떨결에 동물 없는 동물원장에 부임하는 이야기이지만 영화를 보면 다른 메시지가 툭 던져진다. 동물원에 대한 이야기도 되고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한번쯤은 생각해봄 직한 이야기를 관객에게 '이렇게 생각합시다'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요'라는 식으로 부드럽게 전하는 부분이 참 좋았다."

한편 안재홍은 오는 2월 이제훈, 최우식과 함께 영화 <사냥의 시간>으로 다시 한번 관객을 찾아온다. 또 최근 배우 강하늘, 그룹 워너원 출신 옹성우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세 사람의 여행기는 JTBC <트래블러>를 통해 2월께 방송될 예정이다. 

그는 "<해치지않아>와 <사냥의 시간>은 다른 시기에 촬영한 작품들인데 우연히 비슷한 때에 개봉하게 됐다. 바쁘지만 감사한 시간이다.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영화 두 편과 함께 자연인으로서의 내 모습까지 보여드릴 수 있게 됐다"며 "아르헨티나 여행은 정말 좋았다. 셋이서 마음도 잘 맞고 유머코드도 비슷해서 재미있었다"고 말해 방송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이날 인터뷰에서 안재홍은 "정확하게"라는 말을 여러 번 사용했다. 배우로서 관객에게 인물을, 상황을, 감정을 "정확하게 전하고 싶다"는 게 그의 연기론이었다. 그가 왜 연기파 배우라는 칭찬을 듣는지 이해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이전에 내가 맡은 역할들은 둥글둥글하고 선해 보이는 인물이 많았다. 그런 내 이미지가 관객 분들에게 남아 있을 것 같았다. <해치지않아>의 태수는 좀 예민하고 날 서 있는 인물이니까 밉게 말하고 싫은 소리하는 부분들을 신경 썼다. 로펌 대표와 있을 때의 태수, 동물원 직원들과 있을 때의 태수, 혼자 있을 때의 태수가 다 다르게 보였으면 했다.

그렇다고 그 전에 이런 연기를 했으니 이제 다음에는 다른 연기를 해봐야지. 뭐 이런 마음은 없다. 그냥 내게 주어진 재미있고 소중한 이야기를 잘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다. 그 마음이 가장 크다. 더 정확하게 연기하고 싶다. 나라는 사람이 '우와 (연기 잘한다)'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정확하게 그 인물로 관객에게 받아들여지는 연기를 더 선호한다."
해치지않아 안재홍 태수 동물원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