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의 은총으로> 포스터

영화 <신의 은총으로> 포스터 ⓒ 찬란

프랑스 리옹에 사는 평범한 회사원, 남편, 아버지인 알렉상드르(멜빌 푸포)에겐 커다란 상처가 있다. 어린 시절 성당 스카우트 지도 신부님이었던 프레나 신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것. 애써 과거를 잊고 지내던 그는 프레나 신부가 자신의 자녀들이 다니는 성당에 부임했고 여전히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는 알렉상드르의 문제제기를 묵살하고, 진상을 은폐하려고 한다. 이에 알렉상드르는 다른 피해자인 프랑수아(드니 메노셰)와 에마뉘엘(스완 아르라우드)을 만나 피해자들의 단체인 '라 파롤 리베레(해방된 목소리)'를 창설하고 진상을 은폐하려는 가톨릭 교회의 움직임에 대항한다.  

비록 한국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미를 비롯한 해외에서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범죄는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일례로 미국의 가톨릭 교회는 피해자들에게 4조 원이 넘는 피해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고 20여 개 교구가 파산했다. 오는 16일에 개봉하는 <신의 은총으로>는 여러 사건들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 리옹에서 발생한 사제 아동 성폭행 사건을 중심으로 다룬다.
 
 영화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영화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 찬란

 
<신의 은총으로>을 본 뒤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는 <스포트라이트>였다. 보스턴 지역에서 발생한 사제들의 아동 성폭행 사건을 취재한 '보스턴 글로브' 기자들의 취재 과정을 다룬 작품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다.

흥미로운 것은 <신의 은총으로>와 <스포트라이트>가 같은 소재를 정반대의 태도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전자가 사건의 충격과 피해자들의 분노와 설움을 있는 그대로 뜨겁고 열정적으로 토해내는 반면, 후자는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사건을 분석하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두 영화 속 사건의 주체가 다른 게 그 이유다. 

<스포트라이트>는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기자의 시점에서 진행되며, 피해자는 정보를 제공하고 사건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플롯 상의 장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신의 은총으로>는 오롯이 피해자들에게 집중한다. 그들의 감정을 조금도 억제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충격받고, 어쩔 줄 몰라하는 정형화된 피해자들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피해자들이 분노와 유머를 자유롭게 오가며 교회 권력과 신자들의 침묵에 맞서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풀어낸다.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이 일본군 성 노예 피해자가 아닌 인권 운동가 김복동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사실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투쟁한다는 <신의 은총으로>의 내용은 실화를 소재로 한 기타 많은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프랑소와 오종 감독은 주인공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독특하게 연출하면서 <신의 은총으로>를 개성 있는 작품으로 완성시킨다. 

영화 초반부 알렉상드르는 주로 편지(이메일)를 이용해서 교회와 연락하고, 프레나 신부의 범죄 사실을 고발한다. 그가 신부 내지는 추기경 등의 교회 인사를 직접 만나는 장면은 거의 없으며, 오고 가는 편지 내용은 내레이션으로 처리된다. 이러한 방식의 문제제기는 별다른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편지로 교회와 소통했던 프랑수아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알렉상드르와 프랑수아가 다른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부터 문제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더 많은 피해자가 증언하고, 그들이 모여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서로 위로하고, 단체를 만든 후에야 가톨릭 교회에 맞서 당당하게 교회의 범죄와 은폐 사실을 고발하고, 밝힐 수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피해자들과 가톨릭 교회의 갈등을 중점으로 다루는 듯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 영화는 사람들의 소통과 이를 기반에 둔 피해자들의 연대가 지닌 힘에 대한 이야기다. 두 세력 간의 갈등보다 개별적으로 투쟁하던 이들이 직접 만나고 관계를 만드는 과정, 그 과정이 만들어 낸 변화, 그리고 피해자들의 연대가 어떻게 그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주는지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프랑소와 오종 감독은 <신의 은총으로>를 통해서 교회와 종교의 존재,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영화 후반부에 알렉상드르, 프랑수아, 에마뉘엘은 가톨릭 교회에서 받은 세례를 취소하고 완전히 교회에서 벗어날지 말지 논쟁한다.

논쟁이 끝난 후 알렉상드르의 아들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아버지에게 "아직도 신을 믿어요?"라고 물어보는데, 이때 아들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마치 관객들에게 물어보는 것처럼.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오종 감독은 영화를 통해 '믿는다. 단지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영화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영화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 찬란

 
알렉상드르와 프랑수아 부모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투쟁해 왔지만, 끝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성당을 다니는 사람들이 교회로부터 더 이상 정신적으로,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충분히 가르침을 얻지 못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속에서 바르바쟁 추기경으로 대표되는 교회가 침묵한다면, 현대 사회에는 신이 침묵하고 있는 셈이다. 

이때 오종 감독은 "아직도 신을 믿어요?"라는 질문을 관객들에게 직접 던지면서 그 침묵을 깨고 싶다면 그 중간 단계를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암시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피해자들이 교회 밖으로 직접 나섰을 때 마침내 다른 피해자들이 응답한 것처럼, 신을 믿거든 더 이상 종교라는 기존의 질서에 복종할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가톨릭 교회를 완전히 떠날 것인지, 아니면 교회 안에서 투쟁할 것인지보다 그렇게 직접 움직이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종 감독이 영화 안에서 던지는 질문과 메시지를 보면, 이 작품이 본래 다큐멘터리로 기획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가 <신의 은총으로>를 두고서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고 말한 이유가 명확해진다. 

물론 이 작품에도 한두 가지 아쉬운 대목이 있다. 우선 가톨릭 신자가 아닌 경우, 특히 사제들의 아동 성폭행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한국에서도 이 영화가 공감받을 수 있을까. 한국에서 흔히 활용되는 가톨릭 기도문이 아닌, 원문을 직역한 자막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영화 초반부 삽입된 다수의 내레이션도 그 의도와 무관하게 평이하고 지루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은총으로>는 장점이 더 큰 영화다. 교회, 사회, 개인의 관계를 냉철하게 통찰할 줄 알고, 개인들의 아픔을 따뜻하게 보듬고 그들의 심정을 뜨겁게 대변하며, 신과 교회의 존재와 의미에 대한 질문과 성찰을 효과적으로 스크린에 담아내는 작품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어떻게 은곰상을 수상했는지를 스스로 증명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원종빈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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