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열린 2019년 한-아세안 영화인 토론회에서 인사하고 있는 오석근 영진위원장

지난해 8월 열린 2019년 한-아세안 영화인 토론회에서 인사하고 있는 오석근 영진위원장 ⓒ 영진위


지난해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오석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무슨 일을 하고 있나?'라는 말이 종종 나왔다. 영진위 사업들이 지난 정권에 비해 큰 논란 없이 진행되면서 위원장의 존재감이나 활동이 미약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 행사에 참석해 축사나 인사말을 하는 외부활동과 해외 출장 등을 제외하면 위원장의 역할이 딱히 눈에 띄지 않았던 측면도 오 위원장의 활동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한 부분이기도 하다. 오 위원장이 높은 관심을 기울이는 아세안국가들과의 영화 네트워크 구축 사업 또한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보니, 부정적 시선이 스며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의구심은 지난 연말 국회에서 올해 예산안이 통과되면서 반전됐다. 영진위 예산 증액 규모가 2019년보다 32.1%p(247억 원) 늘어났기 때문이다. 영진위 전체 예산은 1015억 원으로, '1000억 시대'를 여는 것과 동시에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 증액을 이뤄냈다. 
 
천억 예산이 이뤄낸 반전
 
'1000억 예산 시대'를 연 오석근 영진위원장이 8일로 취임 2년을 맞이했다. 지난 2018년에 취임했으니 3년 임기의 후반부에 들어선 셈이다. 지난 2년간 오 위원장이 이룬 가장 큰 성과는 단연 예산으로 평가된다.
 
취임 첫해인 2018년 659억 원이었던 예산은 이듬해인 2019년 전년보다 16.5%p 증가해 768억 원으로 늘어났다. 오 위원장이 예산 편성에 직접 참여한 순간부터 두드러진 성과를 낸 것이다.
 
600억 정도를 맴돌던 영진위 예산이 700억 시대를 연 것도 적지 않은 성과였는데, 2020년 예산이 1000억을 넘어서면서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다. 오 위원장은 취임 후 "예산 1000억 정도는 돼야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냐"라며 예산 증액에 상당한 의욕을 보였는데, 올해 예산을 통해 빈말이 아니었음을 입증해 보였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 영진위

   
700억 예산이 편성됐던 지난해는 독립영화 예산의 동결로 안팎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올해는 독립영화 예산도 적지 않게 늘렸다. 올해는 '독립·예술영화 유통배급지원센터 설립'에 40억 원이 배정됐다.
 
부산으로 이전한 한국영화아카데미 예산도 크게 늘려 작품 촬영에 투입되는 영화 제작 인력의 처우 개선이 가능하게 됐다. 서울에서 이전한 이후 예산 증액이 안 돼 어려움을 겪었으나 올해는 대폭 늘어나면서 여유를 갖게 됐다. 1억 미만의 초저예산 제작비로 인해 제대로 된 스태프들이 인건비를 지급 받지 못하고 품앗이 형태로 만들던 환경이 개선될 수 있게 된 건 긍정적이다.

'천억 예산'에 영화계는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영화인들은 "정권이 바뀌니 좋아지고 있다"며 "예산 부족으로 힘겨웠던 예전과는 다르게 다양한 사업에 천억의 예산이 편성됐으니 기대해볼 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6일 봉준호 감독 <기생충>의 골든글러브상 외국어영화상 수상은 오석근 위원장 취임 2년과 겹치며 선물과 같은 소식이 됐다. 영진위는 지난해 11월 <기생충>이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자 배급사 측과 협의해 지원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영진위 관계자는 "배급사와 회의를 했는데, 수상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는데, 수상이 실현되면서 활짝 미소지을 수 있었다. 블랙리스트로 움츠러들었던 한국영화가 영진위 정상화 후 세계적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영화산업의 대기업 수직계열화 문제에 대해서도 영진위는 예전과 다른 모습을 나타냈다. 비록 규제기관이 아니기에 직접적인 대처를 할 수는 없으나 현안이 생길 때마다 대기업독과점에 비판적 입장을 밝히며 문제의식을 나타낸 것은 긍정적이다.
 
"지난 2년보다 남은 1년을 더 열심히 하겠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한국영화의 밤에서 아미연 영등위원장, 주진숙 영상자료원장 등과 함께 영화인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오석근 영진위원장

지난해 부산영화제 한국영화의 밤에서 아미연 영등위원장, 주진숙 영상자료원장 등과 함께 영화인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오석근 영진위원장 ⓒ 영진위


이렇듯 안팎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난 정권에서 저지른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 부분과 관련해선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여전하다. 영화인들은 블랙리스트 실행자들에 대한 합당한 처벌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면서, 영진위 대응이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영진위는 제도적 한계 등으로 인해 해결 과정에 어려움도 있고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영화인들은 소통 강화를 요청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진위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지난해 10월 열린 블랙리스트 관련 토론회에서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관장은 "블랙리스트 후속 조치 중 영화인들에게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 폐지나 개편, 신설된 정책, 심사제도 개편 등에 대해 충분히 설명될 필요가 있음에도 영진위의 설명이 없다"라고 소극적인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올해 공공기관 경영평가도 오석근 위원장의 후반부 평가에 중요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영진위는 지난해 공공기관 평가에서 하위권 등급인 D를 받았다. 2018년 경영을 평가한 것인데, 영진위 내부에서는 결과에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영진위의 관계자는 "위원장이 임명되기 이전인 2017년에 편성된 예산과 사업 계획이 2018년에 실행된 것인데, 박근혜 정권 시절 블랙리스트 등으로 문제가 된 사업들이 많아 변경되거나 중단된 부분들이 많다"며 "이런 고려 없이 정량으로만 평가하다 보니 변경되거나 중단된 사업들이 부정적인 등급을 받는 주요한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영진위원장의 임기는 2021년 1월 7일까지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1년 정도 연장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늘어난 예산만큼 각종 사업들이 원활히 진행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지난해 11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통해 한·아세안영화기구 설립 추진이 시작되면서 영진위의 역량이 집중될 전망이다.
 
오석근 위원장은 "몇몇 예산은 더 늘리지 못해 아쉽다"면서 "지난 2년보다 남은 1년을 더 열심히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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