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인사이트- 보일링 포인트, 1부 역전된 세계>

<다큐 인사이트- 보일링 포인트, 1부 역전된 세계> ⓒ kbs

 
2020년이 밝았다. 과연 올해는, 그리고 2020년대는 어떤 변화된 세상으로 우리를 맞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큐 인사이트>가 나섰다. 방송은 그 중에서도 최근 소셜 미디어의 확산, 인공 지능의 획기적인 도약으로 상징되는 세상을 이해해 보고자 '가상'에 주목하는 세계에 초점을 맞췄다. 이른바 '보일링 포인트'다.

지난 2일 방송된 '보일링 포인트 1부'는 이를 '기술사회학'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 첫 번째 주제는 가상의 세계가 현실 세계를 압도하는 '역전된 세계'다. 이에 대한 설명을 위해 전 구글 마케터이자 '2019 다보스 포럼 글로벌 쉐이퍼' 주영민씨가 프레젠터로 나섰다. 

주영민씨는 2010년, 아니 좀 더 포괄적으로 2010년대를 주목한다. 아이폰, 인스타, 카톡, 우버 택시가 등장했고 알파고와 이세돌이 대결을 벌였으며 비트코인이 2만 달러를 돌파했다. 과연 이 시대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누군가를 만났을 때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어색했다고 한다. 하지만 불과 10년 사이 우리는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일상이 어색하지 않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온라인 공간에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변화된 일상의 풍경은 우리 사회, 우리가 사는 지구의 풍경을 단박에 바꿔놨다. 가상 현실이 현실을 역전하는 거대한 흐름, 바로 '가상화 혁명'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 가장 큰 공포는 무엇일까
 
 <다큐 인사이트- 보일링 포인트, 1부 역전된 세계>

<다큐 인사이트- 보일링 포인트, 1부 역전된 세계> ⓒ kbs


이 시대 가장 큰 공포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모든 것이 그 작은 기계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신체의 일부가 된 듯,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켜면서 기계에 동기화되고 거기에 의존하여 사는 인간. 어쩌면 우리 자신보다도 더 실재 자신과 가까운 휴대폰으로 인해 우리는 '나'를 상실한 것 아닐까. 
 
'인터넷이 사는 곳'이라는 데이터 정보 센터의 클라우드 서버가 정지되면 메시지, 카톡 등 우리가 인터넷 공간에서 하는 모든 활동이 멈춘다. 아니 우리 세계가 멈춰버린다. 하지만 우리에 대한 '기억'은 지워지지 않은 채 그곳에 기록, 저장된다. 우리 삶의 모든 정보가 업로드 되어 분산 저장되는 그곳이 우리 시대 진짜 '아틀라스'가 아닐까? 어느덧 가상이 현실을 컨트롤하는 주인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오늘날 우리는 누군가를 알고 싶을 때 그 사람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찾아본다. 혹시라도 그 사람이 계정이 없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불투명함에 불편함을 느낀다. 지난 10년간 가상에 익숙해지며 생긴 감각이다. 어느덧 사람들은 실제 자아보다 인스타에 표현된 자신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어느덧 사람들은 자신들의 취향, 경험 외모조차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에 올릴 만한)'하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심지어 과거에 연예인을 닮고 싶다 했던 사람들 중엔 인스타필터로 변형해 놓은 자신의 얼굴과 실제 모습을 똑같이 만들기 위해 성형 수술까지 감행하는 이들도 있다. 

'힙'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대신 사진을 찍고, 여행은 인스타에 업로드하는 '노동'이 되었다. 24시간 인스타에 동기화하기 위한 행위, 삶의 최종 판단이 가상 세계로 전이되고 있다. 힙한 카페의 불편한 의자처럼 현실 공간이 외려 현실성을 잃어가고 있다. 

'소셜 미디어'라는 용어는 어쩌면 이제 더는 정확한 표현이 아닐지도 모른다. 더 진짜같은 현실, 그곳에서 더 행복하고 자유롭고, 풍요로운... 아무래도 우리는 이미 도래한 가상 현실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도래한 가상의 디스토피아 

과연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스마트폰을 들여다 볼까? 방송에 따르면, 놀랍게도 하루 한 사람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횟수는 2600회에서 무려 5400회에 이른다고 한다. 알림음으로 가득찬 하루, 스마트폰을 닫고 자신의 일상에 집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23분이나 된다. 우리는 현실의 일상 대신 그곳에 더 자주, 더 오래 머무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인스타그래머블'한 일상이 현실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드라마 <블랙 미러>에는 '좋아요'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고 '좋아요'를 받기 위해 투쟁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과연 드라마만의 이야기일까? 대중은 '좋아요'를 얼마나 받은 인물인가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한다. 어느덧 '좋아요'는 사람을 점수화시키고 평점화시키는 도구가 되었고, 현실 세계의 가치 척도로 기능하고 있다. 

보상과 간격, 크기를 조절할 수록 인간의 강박은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구글의 조사처럼, '좋아요'로 상징되는 가변 보상 행복, 즉 가짜 즐거움의 맑은 종소리는 '비타민'을 넘어 '진통제'처럼 인간의 삶을 제어하기에 이른다. 수면 시간이 경쟁자가 된 세계, 기독교 인구를 넘어선 그 세계(페북 가입자)의 사람들, 어느덧 기술이 종교보다 우리를 더 지배하고 있는 세상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가상의 점수에 그 누구보다 연연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니 현실 권력이다. 2010년 이후 정치에서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급격히 증가했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최초의 트위터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등장했다. 1,2년 전만 해도 유튜브를 욕하던 정치인들이 앞다퉈 유튜브를 개설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단적인 예이다. 

무엇보다 위험한 현장은 가상의 권위를 얻은 '가짜'가 '진짜'로 둔갑하는 것이다. '가짜뉴스'를 믿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은 그에 기반을 둔 채 신념을 만들어가고 행동한다. '백신은 해롭다'든가 '기후 변화는 조작됐다'와 같은, 이미 과학적으로 거짓이라 판명된 이론들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마치 사실인양 호도되고 있다. 하물며 현실에서 이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그 폐해의 심각성은 '정치'나 '기업'의 영역에서 극대화된다. 가상의 여론으로 현실을 지배하려 드는 것이다. 그 중에 이른바 '봇산업'이 있다. 스팸 메일, 음원 사재기, 리트윗 조작, 유튜브 시청수 조작, 상품 후기, 나아가 정치적 메시지까지 사용자를 흉내내는 프로그램으로 마치 진짜 유행인 것처럼 만든다. 방송에서 언급한 실제 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트래픽 절반이, 우리가 보는 댓글과 팔로우의 절반, 인기 영상의 좋아요의 절반이 '봇산업'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심각함을 떠나 무서움을 안긴다. 

미래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뒤섞여 사는 영화 <터미테이터> 속 디스토피아가 먼 미래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사는 '가상 세계'에 이미 도래해 있지 않냐고 <보일링 포인트>는 묻는다.  

리버스 싱귤래리티 - 인간의 퇴화 
 
 <다큐 인사이트- 보일링 포인트, 1부 역전된 세계>

<다큐 인사이트- 보일링 포인트, 1부 역전된 세계> ⓒ kbs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역설적 질문이 등장한다. 나머지 절반은 그렇다면 '인간'일까? 

영국 노동당은 총선 과정에서 트위터 등에 나타난 지지자의 특성을 분석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가짜 뉴스를 배포하고, 반복적 메시지를 유포하며,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상적 린치를 가하고 진영 논리를 전파하는 등 열성 지지자들의 행동이 '봇'과 차이가 없다는 결과에 도달했다. 

어떤 기이한 신념이라도 동지를 찾아 연결되면 그에 대해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들, 팩트 체크가 무력해지고 신념이 사실을 취사 선택하며 나의 믿음이 승리하는 것만이 중요한 사람들, 그 사람들을 주영민씨는 '봇맨'이라 정의내린다. 

소프트뱅크 회장인 손정의씨는 기계가 진화하여 인간을 추월하는 시점, 싱귤래리티(singularity)를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싱귤래리티는 그리 멀지 않은 5년내지 10년 안에 현실이 될 것이라 예언하고 있다. 하지만 주영민씨는 '리버스 싱귤래리티(reverse singularity)'가 아닐까 라며 우려를 표명한다. 즉, 기계가 똑똑해져서가 아니라 오늘날 인간이 기계의 단순성을 닮아 후퇴해서, 소셜 미디어의 점수에 연연하고, 인스타의 아바타에 집착하는, 그리고 봇의 단순성을 스스로 내재화시키는 오늘날의 세상이야 말로 '리버스 싱귤래리티', 인간성의 후퇴가 아니겠는가 반문한다. 

가상 세계의 역습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저 알파고에 진 것만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사이 우리 자신도 이미 그 세상에 '접속'하고 '동기화'되어지고 있다는 분석은 예리하다. 거기에 더해 굳이 지구는 평평하다를 들지 않더라도 유튜브를 중심으로 갈라지고 갈등으로 들끓는 우리 사회를 보면, 가상 세계에서 점화되는 권력의 실체가 섬뜩할 정도로 실감난다. 더불어 더 이상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기를 포기한 '봇'이 되어가는 인간을 마주할 수도 있다는 지점에선 씁쓸함이 몰려온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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