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리키> 포스터

<미안해요, 리키> 포스터 ⓒ 영화사 진진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어요."

영화 <미안해요, 리키>를 같이 본 지인이 상영관을 나서며 한숨과 함께 뱉어낸 말이다. 다섯 명이 함께 영화를 봤는데, 상영관을 나서자마자 모두 한 목소리로 '긱 이코노미'를 성토했다. 노동자에게 멈출 능력을 빼앗아간 죄, 누구를 단죄해야 하나?
 
원제는 < Sorry We Missed You >. 리키(크리스 히친)가 일하는 택배회사 송장에 인쇄되어 있는 로고를 그대로 제목으로 삼았다. 한국어판 제목은 <미안해요, 리키>. 이렇게 명명하자, 가족의 위기를 총체적으로 보기보다는, 가장인 리키의 위기로 좁혀 보게 되는 효과를 낳았다. 리키에 집중하자. 그와 함께 로켓처럼 밴을 몰고, 소포를 들고뛰고, 시비 거는 고객의 사인을 받아내고, 쉴 새 없이 삑삑 울려대는 회사 단말기에 응답하느라 숨이 가빴다. 그 바람에, 리키만큼 혹은 리키보다 더 고달픈 애비(데비 허니우드)의 노동은 주변화되고 말았다.
 
'잔혹한 낙관주의'는 노동을 멈출 수 없게 한다
 
가장 혼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족임금체제가 무너진 지 오래지만, 리키는 마음이 무겁다. 자신의 외벌이로 가정을 꾸려온 것이 아님에도 가장다움에 대한 압박을 버리지 못한다. 실업수당을 받아본 적이 있냐는 보스의 물음에 그는 "체면이 있지 그런 걸 어떻게 받느냐"고 답한다. 이는 그가 아직도 가부장의 그늘에 머물고 있음을 시사한다. 눈 뜬 채 코 베가는 약탈적 착취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곳인지 전혀 모른 채, 친구 말만 믿고 택배회사의 자영업자가 되겠다고 뛰어든 리키. 현실에 실패하면 할수록 더 나은 현실을 위해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사람들을 몰아붙이게 하는 '잔혹한 낙관주의'의 덫에 리키는 이미 걸려들었다.
 
셋방살이가 지긋지긋하고 생활비와 대출이자를 감당하기 벅찬 것은 리키만의 부담이 아니다. 리키의 아내 애비도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이다. 애비는 '제로 아워' 시스템으로 돌봄 노동을 하는 노동자다. '제로 아워' 시스템이란 한마디로, 노동자를 24시간 대기시키는 '노동의 좀비화'를 이르는 말이다.

애비는 가까스로 단란하게 둘러앉은 가족과의 저녁식사 자리마저 호출로 지키지 못한다. 어느 때건 호출되면 도시 이곳저곳의 환자에게 달려가 이들을 돌보는 일이 애비의 노동이다. 이런 애비에게 이동 수단인 차량은 필수다. 하지만 리키가 자신의 택배 영업을 위한 차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애비의 차를 팔아버리자 '뚜벅이' 신세가 된다. 애비는 7시에서 9시까지 일하던 기존의 시간보다 더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서야 하고 더 늦게 귀가해야 한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영화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 영화사 진진

 
게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엄마 애비의 일이다. 애비의 돌봄 노동은 비단 일터의 노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식사를 마련해 놓아야 하고, 아직 어린 딸의 일상도 챙겨줘야 한다. 반항기가 절정에 달한 아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학교의 부름에 불려가야 하는 것도 온전히 엄마인 애비의 몫이다. 애비는 직업으로서의 돌봄 노동 말고도 가사노동과 가족 돌봄 노동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애비가 돌보는 사람들은 환자들이다. 모두 거동이 어렵기에 도움이 절실한 이들이고 노인이 대부분이다. 이를 간단히 '돌봄 노동(care worker)'이라 부르지만 실상, 고난도의 감정노동을 수반하는 매우 강도 높은 노동이다. 결코 리키의 노동 강도에 뒤지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애비의 노동은 다소 '나이브'해 보인다. 돌보는 노인에게 아이처럼 머리 빗김을 받고 있는 애비의 모습은, 그의 볼을 타고 흐르는 피눈물을 낭만화한다.

영국의 돌봄 노동 현장이 한국보다 양호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코 영화처럼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애비처럼 가정 방문으로 환자를 돌보는 '돌봄 노동'을 한국에선 재가요양보호사(방문요양보호사)라 부른다. 이들은 실제로 매우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해 있다.
 
한국의 돌봄 노동 시장은 대부분 경력 단절의 처지에 있거나 노동시장에 밀려난 저임금 중년의 여성노동자들로 채워진다. 방문요양보호사에게 가사 일을 시키는 것에서부터, 농사일을 강요하기도 하고, 괴팍한 환자들은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하는 폭언과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이들의 가장 큰 애로는,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영화를 같이 본 한 지인의 어머니는 지병과 치매로 오랜 시간 병상에 있었다. 병든 어머니를 간병한 것은 당연히(?) 딸의 몫이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딸이 셋인 지인네는 돌아가며 어머니를 돌보다가, 한 딸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본격적으로 어머니를 돌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저는 왠지 애비가 더 가엽게 느껴져요"라고 말하자, 환자를 돌보는 게 얼마나 고된 노동인지를 절감한 지인은 "아무렴요. 안 해 본 사람은 몰라요. 우스갯소리지만 나보고 택배 할래 돌봄 노동 할래 하면, 나는 택배할 거예요"라고 답했다.
 
이미 붕괴된 가족
 
위기에 처한 건 리키와 애비만이 아니다. 리사(케이티 프록터)와 세브(리스 스톤) 역시 위태롭다. 하층 계급 아이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돌봄의 위기' 양상은 매우 글로벌하다. 양극화로 치달은 부의 편중은 지구 어느 곳을 가리지 않고 '스카이캐슬'과 '할렘'('휴거', '빌거')으로 분할한 지 오래다. 든든한 부모가 배경인 캐슬의 아이들은 보다 화려한 스펙을 탑재하고 고급 사회로 진출하겠지만, 부모는커녕 오늘 하루의 안위마저 위협 당하며 사는 할렘의 아이들은 시급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으로 스며든다.
 
딸 리사는 불안 증세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부모가 잠든 거실에 나와 어질러진 테이블을 정리하고, 오빠의 아침 등교를 위해 잠을 깨우는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젠더화된 돌봄 노동이 아직 소녀인 리사의 일상에 이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오빠 세브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등록금을 지원할 복지도 든든한 부모의 재력도 없기에 막대한 빚이 되고 말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그래피티'를 하는 세브의 솜씨는 뽐낼 만하지만, 재주를 펼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부모가 어렵게 장만해 준 겨울 코트를 팔고, 그도 모자랄 땐 도둑질을 감행해야 한다. 고작 페인트 한 통에 '장발장'이 되어야 하는 부정의가 세브의 현실이다. 이 아이들 앞에 놓인 미래는 디스토피아의 암운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 이대로 죽을 것인가
  
 영화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영화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지난해 영국 런던 시립대 피터 플래밍 교수는 저서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죽음>을 펴냈다. 한때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내걸었던 영국의 복지가 무너진 후, 그 붕괴의 여진은 어떻게 영국을 흔들었을까. 그는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 하의 '개인화된 노동과 고용 방식'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를 깊은 고민으로 담아냈다. 인간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는 존재가 아님을 간파한 행동경제학 이론이 오용된 결과, 어떻게 기업과 국가의 이익에만 복무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탄생시켰는지를 파헤쳐 그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민주적 책임의식을 망실한 엘리트 주도 체제는 공동체에 기반한 자원과 경제적 활동을 포획해 점령했고, 기업이나 국가는 엄청난 권력으로 개인을 통제하는 '파괴의 경제학'을 구축했다. 이러한 '플랫폼 자본주의'는 '공유 경제'로 포장되어, 비공식 경제를 상업화하며 집단을 개인으로 흩어지게 만들었다. 우버, 딜리버루, 에어비앤비, 성매매 플랫폼까지, 빅데이터는 삶의 경제 곳곳에 스며들어 개인을 통제하며 막대한 이익을 약탈적으로 획득했다.

노동자를 자발적으로 착취하게 하는 '고용의 개인화', '노동의 우버화' 시스템은 노동조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렇게 흩어진 개인들은 스스로를 탓하며 돈의 파시즘에 매몰되어 갔다. 24시간 깨어있어야 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무엇을 하지 않을 수 있는지조차 불분명한 시대에 불시착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수많은 리키와 애비들은 이대로 자멸해야 하는 걸까. '노동자들이여, 대동단결하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걸까. 모래알처럼 흩어진 우버화된 노동자들은 이제 다시 단일한 집단으로 응집될 수 없는 걸까.
 
한국의 '긱 이코노미' 시장은 어떨까. 지난 11월 법원은 '특수고용근로노동자'라 불리는 택배기사도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배달원 노동조합인 라이더 유니온은 지난해 서울시로부터 합법노조로 인정받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플랫폼 노동자들의 많은 문제가 즉각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약탈적 자본주의가 전략적으로 흩어놓은 개인을 하나의 집단으로 결집한다면, 투쟁의 첫 발을 함께 떼볼 수는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자신을 노동자 계급으로 정체하는 한, '노동자들이여 대동단결하라'는 구호는 여전히 유효하다. 리키에게도 마찬가지다. 가족들의 눈물을 외면한 채 택배 밴을 몰아대는 리키, 그 질주를 멈추어야 한다. 자영업자가 아닌데 왜 자영업자라 불리며 악랄하게 착취당하는지, 밴을 멈추고 생각해야 한다. 생각했는데 이상하다면, 부정의 하다면, 싸워야 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