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하는 학생들 중에 1/3한테 상을 주던데 어떻게 신뢰하겠습니까."

tvN 월화 드라마 <블랙독>에서 한국대학교 입학사정관은 입시정보를 얻기 위해 찾아온 고하늘(서현진)에게 대치고등학교의 문제점은 시스템이라 꼬집으며 예시로 교내 대회를 언급했다. 지나치게 많은 학생들에게 상을 남발해 신뢰도를 떨어뜨려 평가의 지표로 삼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한마디로 상이 상답지 않다는 뜻이었다. 신뢰할 수 없는, 권위를 잃어버린 상은 그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스레 지상파 연말 시상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KBS <연기대상>의 한 장면

KBS <연기대상>의 한 장면 ⓒ KBS

 
2019년에도 어김없이 연말 시상식이 반복됐고, 영락없이 논란을 양산했다. 지긋지긋한 패턴이다. 특히 지상파 3사 연기대상을 놓고 시청자들의 원성이 끊이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지난 12월 30일 MBC가 먼저 스타트를 끊었고, 31일에는 KBS와 SBS가 함께 연기대상을 진행했다. 물론 3사의 시상식 모두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상의 개수가 너무 많았다. 마치 소나 돼지의 부위를 나누듯 드라마의 종류(?)를 갈라쳤다. MBC처럼 월화/수목/일일과 주말을 구분하는 건 이제 별난 일도 아니다. KBS와 SBS는 미니시리즈/중편/장편으로 구분해 두고 있고, KBS는 여기에 더해 일일드라마와 연작단막극을 추가하고 있다. 드라마의 '길이'로 상을 나눈 건 그나마 낫지만, '요일'을 기준으로 드라마를 세분화한 건 누가 봐도 민망한 일이다.

상의 개수를 이렇게 늘여놨는데도 어째서 '공동수상'이 이렇게 많은 걸까. SBS는 최우수 연기상과 우수 연기상, 여자 조연상 등에서 공동 수상자를 배출했고, KBS의 경우에는 대상과 작가상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복수의 수상자를 만들어 냈다. 포털 사이트에서 'KBS 연기대상'을 검색하고 (숨겨진) 수상자 명단을 펼치면 화면을 가득 채운 수상자들에 놀랄 지경이다. 심지어 신인 연기상은 무려 5명이나 된다. 

지상파 3사 연말 시상식의 이런 씁쓸한 풍경은 이제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상을 쪼개고, 나눠주는 방송사의 속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챙겨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도 안다. 지금의 연말 시상식은 공정하고 권위있는 '시상식' 개념이라기보다 제 식구 챙기는 '송년회(종무식)'의 뉘앙스가 훨씬 더 강하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상을 남발하는 건 그렇다 쳐도 최소한 줄 사람에게는 줘야 하는 것 아닐까?
 
 SBS <연기대상>의 한 장면

SBS <연기대상>의 한 장면 ⓒ SBS

 
온갖 꼼수를 써서 상은 넘쳐나는데 정작 받아야 할 사람이 빈 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은 납득하기 어렵다. MBC의 경우 <검법남녀2>(최고 시청률 9.9%, 이하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의 정재영의 무관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시즌1의 호평에 힘입어 시즌2까지 제작된 <검법남녀2>는 화제성이 떨어졌던 MBC 드라마에 단비와도 같았던 작품이었다. 게다가 전 시즌의 최고 시청률(9.6%)도 경신했던 만큼 명분도 있었다. 그 중심에 백범 역의 정재영의 활약이 있었던 건 두 말하면 잔소리다. 

KBS는 더 심각했다. <닥터 프리즈너>의 남궁민을 수상자 명단에서 제외한 것이다. <닥터 프리즈너>(최고 시청률 15.8%)는 미니시리즈 우수상(최원영), 베스트 커플상(김정난&장현성), 미니시리즈 조연상(김정난 김병철), 신인연기상(권나라) 등 4관왕을 기록했지만, 정작 최고의 연기를 펼쳤던 남궁민이 배제돼 시청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물론 경쟁 상대였던 유준상과 강하늘의 연기도 빼어났지만, 남궁민이 상 하나도 받지 못할 정도였을까? 역시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SBS도 만만치 않았다. <시크릿 부티크>에서 원숙한 연기를 보여줬던 김선아의 이름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청률(최고 6%)이 낮았고 화제성도 떨어졌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이는 잦은 결방 등에도 원인이 있다). 그러나 김선아의 연기력만큼은 상을 받아도 충분했다. 게다가 수상자가 <배가본드>의 배수지였다는 사실은 (그의 연기력이 성장했음과 별개로) 공정성과 신뢰성에 더욱 의문을 남겼다. < VIP >의 장나라조차 프로듀서상에 그쳐 시청자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쓸데없는 사람 빼고, 신동엽, 백종원, 유재석 정도만 대상 후보를 하는 게 긴장감이 있다. 대상 후보 8명 뽑아놓고 콘텐츠 없이 개인기로 1~2시간 때우는 거 하면 안 된다. 3사 본부장 만나서 얘기 좀 하시라. 광고 때문에 이러는 거 안다. 이제 바뀔 때가 됐다."
 
 SBS <연예대상>의 한 장면

SBS <연예대상>의 한 장면 ⓒ SBS

 
지난 28일 방송된 < SBS 연예대상 >에서 김구라가 던진 발언이다. 그는 "내가 대상후보인 것 자체에 나도 납득이 안 되는데 시청자들은 납득할지 모르겠다. 방송사에서 구색을 맞추려고 (후보) 여덟명을 넣은 것 같다. '연예대상'도 이제 물갈이를 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이 말은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줬다. 그리고 김구라의 말은 비단 그가 속해 있는 '연예대상'뿐만 아니라 '연기대상'에도 해당될 것이다. 방송사의 광고 수익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걸려 있는 만큼 실현되기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근래에 지상파 연말 시상식이 보여주고 있는 작태가 워낙 한심하기에 시청자들이 김구라의 말에 열렬히 환호했던 것이리라. 

시청자들은 제대로 된 시상식을 원한다.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공정하고 신뢰도 높은 시상식이 열리긴 바란다. 그럼에도 방송사들은 상을 쪼개고, 나눠주면서 '잇속'만 챙기고 있다. 시청자들의 바람은 안중에도 없다. 황당한 노릇이지만, 시청자들은 백번 양보해서 지금처럼 해야 한다면 적어도 줘야 할 사람들에겐 상을 줄 것을 요구한다. 정말 최소한의 공정성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2020년 연말에는 좀 다른 그림을 기대해도 될까? 헛된 기대를 또 다시 품게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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