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앙증맞고 예쁜 컵케이크, 자연을 담은 꽃 튀김, 벚꽃 향이 날 것 같은 김밥, 보글보글 보기 만해도 침이 고이는 만두전골...
 

JTBC 드라마 <초콜릿>의 주인공 차영(하지원)이 만드는 음식들이다. 호스피스 병원에서 일하는 셰프 차영은 매 회 환자들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이 음식들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차영은 환자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읽어내고 이에 꼭 맞는 음식을 만들어 삶의 마지막 과정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행복을 선사한다. 정성껏 요리하는 차영의 모습과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 하는 드라마 속 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시청자인 나도 행복해지는 듯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요리하지 않는' 차영의 모습이 나올 때면 답답함이 밀려온다. 강(윤계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분명하건만, 자신의 마음은 애써 모른 척 하며 "저 이강 선생님 좋아하지 않아요. 제 목숨을 구해주셨던 고마운 의사선생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10회)라고 말하는 차영. 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잘 알아주고 성심껏 보살펴주는 차영이 자기 자신의 마음엔 이토록 야박하게 구는 걸까? 모든 이들을 사랑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은 실천하지 못하는 차영은 도대체 어떤 마음인 걸까?

있는 그대로 사랑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

어린 시절의 차영이 등장하는 장면은 이랬다. 한 바닷가 마을로 가족과 함께 휴가를 간 차영은 동네를 돌아다니다 대문이 열려 있는 한 집의 마당에 들어간다. 마침 마당에는 말리기 위해 내놓은 고구마가 있었다. 너무 배가 고팠던 차영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고구마 말랭이를 훔쳐 먹는다. 이 때 그 집의 아들인 강이 나타난다. 강은 차영을 나무라기는커녕, "이 쪽 것이 사람 먹는 것"이라며 고구마 말랭이를 나눠준다. 그리고 차영을 엄마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데려가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려준다. 차영은 강이 차려준 음식을 너무나 맛있게 먹는다. "너무 맛있어 눈물이 난다"며 울음까지 터뜨리면서.

도대체 어린 차영은 왜 배가 고팠던 걸까. 왜 강이 차려준 음식에 눈물까지 보이며 감동을 받은 걸까. 이어지는 차영의 가족 모습은 단서를 제공해줬다. 차영의 어머니는 딸을 '아역배우'로 만들기 위해 혹독한 다이어트를 시킨다. 차영이 강이가 준 밥을 맛있게 먹고 온 날, 어머니는 "내일이 오디션 날인데 몸무게가 늘었다"며 타박한다. 반면, 차영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화를 내고 있는 그 순간 치킨을 사가지고 온다. 하지만, 아내의 분노 앞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다루는 어머니와 이에 휘둘리는 아버지에게서 자라난 차영이 이들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건 '밥'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그 마음도 분명 채워지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 차영의 배고픔은 단순한 배고픔이 아니다. 이 배고픔은 사랑받고 싶은 욕구의 결핍, 즉 애정결핍을 상징한다. 이런 차영에게 자신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강이의 행동은 차영이 그토록 갈구했던 '사랑'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이는 차영에겐 온전히 수용 받는 첫 경험이었을지 모른다. 차영이 성인이 될 때까지 강을 잊지 못한 건 바로 이런 이유다.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
 
 JTBC <초콜릿>의 차영(하지원)은 음식을 통해 사람들을 치유하는 요리사다.

JTBC <초콜릿>의 차영(하지원)은 음식을 통해 사람들을 치유하는 요리사다. ⓒ JTBC

 
이토록 결핍된 사랑에 배고파했던 차영은 자신의 생일 날 선물을 사준다며 백화점으로 불러낸 엄마를 끝끝내 만나지 못한다.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날,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끔찍한 백화점 붕괴사고를 겪은 차영. 그는 어떤 자기개념을 갖게 되었을까?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은 중요한 타인(대표적으로 부모)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간다. 어린 시절 나의 생존을 의지했던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 수용되고 사랑받는 경험은 '나는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긍정적인 자기상을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세상과 관계 맺은 사람은 타인은 물론 나 자신에게도 친절하게 된다. 반대로 중요했던 타인이 나를 거부하거나 조건적으로만 수용해주는 경험을 할 경우 스스로에 대한 수용과 사랑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차영은 어땠을까? 어린 아이의 배고픔조차 수용해주지 못하면서 '아역배우'의 꿈을 강요했던 어머니와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 아버지. 게다가 부모는 둘 다 사라져 버린다. 이런 부모에게 생존을 의지했던 차영의 내면에는 '나는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메시지가 자리 잡았을 것이다. 배고픔과 같은 기본적인 생리욕구조차 수용 받지 못했던 경험은 '나의 욕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주입했을 것이다.

때문에 차영은 답답하리 만큼 강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밀어낸다. 4회 강에게 수술을 받고 살아난 차영은 고마움을 전하러 강의 사무실을 찾아 간다. 하지만 "당신께 닿지 않으려고 열심히 또 이렇게 도망을 칩니다"라며 머뭇거리기만 한다. 물론, 강이 차영의 전 남자친구였던 민성(유태오)의 절친한 친구였다는 설정은 차영이 강에 대한 사랑을 수용하지 못하게 하는 조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민성은 편지를 통해 '강이 때문에 그리스로 떠난 걸 알고 있으며, 강을 잘 부탁한다'며 차영에게 유언한다. 이를 알고 있음에도 차영은 강에게 "저한테도 이강 선생님은 민성씨의 친구예요. 그 사실을 한 번도 잊어본 적 없으니까 걱정마세요"(10회)라며 자신의 감정을 계속해서 부인한다.

차영이 보살피지 못하는 것은 강에 대한 마음만이 아니다. 다쳐서 도움을 받아야 할 때마다 차영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보살피기보다는 "괜찮아요"만 반복한다. 머리를 다쳐 후각과 미각을 잃었음을 알게 된 후에도 차영은 그저 환자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 뿐이다. 차영은 이렇게 자기 자신이 바라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들을 애써 무시하며 살아간다.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나

반면 차영은 타인을 돌보는 데는 열정을 다한다. 요리사의 영역을 넘어 지나가는 행인들, 병원의 환자 한 명 한 명의 사연에 관심을 갖고 이들을 애써서 돕는다. 아들에게 버림받은 할아버지의 마음을 살펴주고, 지용의 어머니를 찾아주고, 희주와 준(장승조)을 연결해주기도 한다. 단순히 온정을 베푸는 것만이 아니다. 환자들을 "죽어가는 사람들"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강의 고모(윤예희)에게 "여기 계신 분들 죽어가는 분들 아니고 하루하루 사랑하고 있는 분들이세요"(10회)라며 단호하게 대응한다. 해외 입양간 아들에게 돈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친어머니와 그 가족에게도 강하게 경고한다.

차영의 이 같은 행동은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온 삶에 대한 반동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나 자신의 존재감을 확고히 수용 받은 경험을 한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없는 차영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무엇인가를 베풀고 타인의 권리를 대변해 줄 때야 내가 가치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차영의 이타적인 행동은 그 자체로 숭고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고픈 무의식적 소망이 더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차영이 베푸는 사랑의 손길은 나도 이렇게 대접받고 사랑받고 싶다는 깊은 욕구의 표현이기도 하다. 차영은 환자들의 사연들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소중히 대하고 함께 울고 웃는다. "요리사답게 음식만 만들면 될 것을 이 환자 저 환자 다 쫓아다니며 문제를 일으킨다"는 강의 말처럼 차영은 남을 돕다 스스로가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돕기를 멈추지 않는 차영은 자기 자신이 받고 싶은 사랑을 타인에게 전하며 대리만족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차영(하지원)은 호스피스 병원의 많은 환자들에게 행복을 선사한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행복은 찾아 나서지 못한다.

차영(하지원)은 호스피스 병원의 많은 환자들에게 행복을 선사한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행복은 찾아 나서지 못한다. ⓒ JTBC

  
차영은 10회 후각과 미각을 잃고 충격에 빠진다. 그럼에도 병원에 가자는 동생의 제안을 뿌리치고 묵묵히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음식을 만든다. "도대체 왜 그러냐"는 동생의 절규에 차영은 이렇게 답한다. "무너진 백화점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도 견뎠고 나는 살았어. 여기서 주저앉으면 나는 끝이야. 다시는 못 일어나." 아마도 이게 차영이 살아온 방식이었을 것이다. 분명 차영은 스스로를 포기하진 않았다. 열심히 나를 다그치고 또 다그쳐서 살아남았고,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며 멋지게 살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차영은 무척 쓸쓸해 보인다. 이는 모든 이들을 보듬어 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소외시킨 데서 비롯된 쓸쓸함을 것이다. 이젠 차영이 타인에게 베푸는 사랑을 자기 자신에게도 좀 베풀어 주었으면 좋겠다. 나 자신을 다그치지만 말고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해주었으면 정말 좋겠다. 그래서 강의 사랑에 마음을 연다면, 그 자체로 차영은 있는 그대로 수용 받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수용의 경험은 어릴 적 차영이 받았던 상처들을 보듬어 줄 것이다. 이를 통해 나 자신을 보다 사랑할 수 있게 될 때, 차영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타인에게 편안함을 선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자기 자신을 사랑할 때 타인에게도 진정한 행복을 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www.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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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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