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부산국제영화제 남포동에서 열린 커뮤니티비프.

2019 부산국제영화제 남포동에서 열린 커뮤니티비프. ⓒ 부산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는 재도약에 나섰고, 전주국제영화제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내부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새로운 영화제들이 계속 생겨나면서 국내영화제들의 경쟁은 치열해졌다. 영화제 스태프 처우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근무 환경 개선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한국영화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국내영화제들은 2019년 안팎의 환경에 따라 적지 않은 논란과 변화를 겪어야 했다. 주요 영화제들은 블랙리스트 정권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서 늘어난 예산을 바탕으로 예년보다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행사를 치렀다. 
 
2014년 이후 정치적 탄압의 중심에 있던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해 정상화 원년을 선언한 이후 다시 뛰기 시작했다. 특히 우려를 받던 위치에서 다른 영화제들의 상황을 걱정해주는 위치로 바뀌었다. 위기를 벗어나며 반전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특히 마켓의 방향을 새로 설정하고 영화제의 폭을 넓히려 애썼는데, 무엇보다 새로 시작한 커뮤니티비프의 성공은 돋보였다. 태동지인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영화제의 역할과 영역을 크게 확장 시켰다. 처음 시도했던 전년보다 프로그램을 늘리면서, 3배 이상 성장한 커뮤니티비프는 새로운 혁신의 원동력으로서 발판을 마련했다.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커뮤니티 시네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관련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내부 문제로 부담 안은 전주, 부천, 여성
 
이에 반해 다른 영화제들은 내부 갈등의 표출로 인해 안팎으로부터 우려의 시선을 받았고 적잖은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 정치적 압박을 가하던 외부와의 대립이, 내부적 갈등으로 전환된 모습이었다.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 경우기도 했다.
 
먼저 지난 11월 김영진, 이상용, 장병원 프로그래머가 집단사표를 낸 전주국제영화제와 같은 시기 김봉석 프로그래머가 사표를 내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집행부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3월에 내분을 겪으며 집행위원장이 바뀐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내부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대표적인 영화제들이다.
 
전주영화제는 지난 11일 집행위원장 선정에 이어 26일 신임 프로그래머의 선임을 마무리하며 기존 프로그래머 집단 사임에 따른 논란을 서둘러 일단락지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집행위원장 선임 권한을 갖고 있는 지역 토호 중심 이사회 문제가 부각됐고, 해결의 과제로 남았다. 영화인이 아닌 지역 인사들이 중심이 된 이사회가 영화제 내부의 추천을 무시하면서, 프로그래머들의 사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집행위원장 선임 권한은 이사회에 있지 영화제의 추천을 반드시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한 이사의 입장은 이번 논란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빈자리를 대체하며 수습에 나서기는 했으나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영화제의 안정성은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영화제의 내부 개혁이 요구되는 이유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고사동 영화의 거리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고사동 영화의 거리 ⓒ 전주영화제

 
부천영화제도 다르지만 비슷한 측면이 있다. 초대 집행위원장을 맡은 이장호 감독 이후 김홍준-한상준-김영빈-최용배 집행위원장에 이어 올해는 신철 집행위원장이 새롭게 영화제의 책임을 맡았다. 집행위원장이 자주 바뀌는 구조는 영화제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주요요소가 됐다. 부천영화제의 경우 근래 들어 3~4년마다 한 번씩 집행위원장이 교체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선 장기적인 계획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그동안은 정치적인 요소가 작용한 면도 있었다. 어느 당 소속이 시장을 맡느냐에 따라 영화제에 대한 대응 또한 달라지기도 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또 시장과의 친분이 바탕이 돼 요직을 맡는 인사가 생기기도 했는데, 이런 것들이 불필요한 소모성 논란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시장이 명예 조직위원장으로 물러나고 조직위원장을 영화인들이 맡는 등 구조적인 변화도 있었으나, 최근 집행위원장이 자신과 친분이 있는 인사를 조직위원장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부담을 안게 됐다.
 
3년 만에 집행위원장이 바뀐 부천영화제의 올해 개막식은 참석자들로부터 상당히 어수선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개막식 장소도 바뀌었고, 방송사 생중계 등이 겹치면서 진행 과정에서 원활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개막작 상영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경험 부족에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수 있겠지만 20년이 넘은 영화제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김봉석 전 프로그래머가 SNS에 올린 비판도 영화제 경험이 적은 인사들의 운영방식에 대한 지적이었다. 그는 노동자로서 프로그래머의 위치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1년 계약, 주에 이틀 출근하고 4대 보험이 없고 영화제를 제외한 이전의 경력을 다 무시하고 250만 원을 받는다. ... 사업 용역을 주고, 실적에 따라서 수익을 나눠주는 직종코드가 영화제 프로그래머에게 부여되어 있었다. 노동자로서 일하는 프로그래머에게 명백히 불공정한 계약이다."(김봉석)
 
다만 내부의 반응은 온도차가 엿보인다.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힌 복수의 영화제 관계자들은 "김 전 프로그래머의 지적에 일부 공감하는 부분은 있지만, 개인의 시각으로 볼 뿐이다"라며 "문제라고 지적한 어떤 사안은 과정을 이야기한 것이지 결과적으로 잘 해결된 사안도 있고, 전후 맥락에 대한 설명 없이 프로그래머의 생각과 주장을 제기한 부분도 있어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경우도 이사장과 집행위원장이 충돌하면서 결국 둘 다 물러난 후, 김은실 이사장과 박광수 집행위원장이 새로 책임을 맡았으나 갈등으로 인한 부담은 컸다. 각 영화제들마다 내부 갈등이 없는 곳은 드물 상태이나, 조직에서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부각된 셈이다.
 
영화제 많아졌지만, 간섭에 중단된 곳도 생겨나
 
 8월 개최된 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 개막식. 2020년부터는 평창국제평화제로 이름이 바뀐다

8월 개최된 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 개막식. 2020년부터는 평창국제평화제로 이름이 바뀐다 ⓒ 성하훈

 
국내영화제의 비중이 커지면서 다양한 영화제들이 계속 생겨나는 것도 올해 엿보인 특징 중 하나였다. 평창남북평화영화제, 강릉국제영화제, 충북국제무예액션영화제 등이 첫발을 내디뎠다. 반면 시작된 지 5년 미만의 영화제들은 외부적인 영향을 받아야 했다.
 
매해 9월에 개최되던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2020년부터는 4월로 개최시기를 옮겼다. 울산시가 새로 추진하는 울산국제영화제와 일정이 겹칠 가능성이 크고, 두 영화제의 통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행사 기간을 옮기면서 독자생존 방침을 굳힌 것이다. 그러나 울산국제영화제 개최에 대해 지역에서 부정적 여론이 생기면서 내년 개최가 불투명해져,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괜한 영향을 받은 모양새가 됐다.
 
군산과 서천에서 치러진 금강역사영화제는 서천군이 5.18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을 추적하는 <김군> 상영 중단을 요청해 논란이 됐다. 영화제 측이 서천군의 공식사과를 요구했으나 서천군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2회를 끝으로 2020년 행사 자체가 어렵게 됐다.
 
서천군은 "예산을 지원하는 입장에서 간섭이 아닌 상영작에 대한 의견만 제시했다"는 입장이지만 영화제라는 특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다만 금강역사영화제 측도 이를 처음부터 공개하지 않다가 뒤늦게 영화제가 끝난 이후 수개월이 지나 공개하면서 뒷북을 치는 모양새가 됐다. 영화제 중단의 책임이 서천군에 있다고는 해도, 결과적으로 의욕적으로 시작한 영화제가 2회 만에 끝나게 됐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서천군의 <김군> 상영 중단 요청에 따른 간섭 문제로 2020년 개최가 어려워진 금강역사영화제

서천군의 <김군> 상영 중단 요청에 따른 간섭 문제로 2020년 개최가 어려워진 금강역사영화제 ⓒ 금강역사영화제

 
작은 규모의 영화제들은 특성을 잘 살려내며 알차게 진행돼 호평을 받았다. 대표적인 영화제로 꼽히는 7회 무주산골영화제는 6월 개최 영화제의 대표가 됐고, 7월에 열리는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의 경우도 아시아 최대 청소년영화제로 자리매김하며 국제적인 위상을 높였다.
 
평창남북평화영화제와 강릉국제영화제는 강원도 지역에서 잇달아 생겨나 주목됐는데, 남북 간의 교류에 역할을 하려는 평창남북평화영화제는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어렵게 첫발을 뗐다는 것 자체로 의미 있었다. 2020년부터는 평창국제평화영화제로 이름을 바꿔 영역을 넓힌다.
 
문학을 주제로 한 강릉국제영화제는 첫해 행사를 잘 마쳤으나 김동호 전 부산영화제 이사장이 조직위원장을 맡으면서 원로영화인들을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부산영화제를 세계적으로 성공시키고 성장시킨 인사가 80세가 넘은 나이에 다른 영화제를 맡는 게 모양새가 안 좋다"는 것이었다.
 
스태프 문제 개선 긍정적 변화
 
지난해부터 제기된 영화제 스태프들의 처우 문제는 올해 중요한 관심사로 부상했다. 시간 외 수당 등의 문제들은 영화제의 개최도시들이 예산 지원을 통해 해결 의지를 보였고, 영화진흥위원회도 적극 나서면서 개선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영진위는 영화제 스태프 노동환경 문제를 연구한 정책보고서를 통해 "젊은 인력들의 열정을 무상으로 쓰려는 사고를 바꿔야 한다. 인건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할 영화제라면 아예 기획부터 중지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스태프 문제가 부각되면서 부천영화제에서는 노조가 만들어지는 등 영화제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긍정적인 변화였다.
 
 영화제 개막 준비를 돕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단기 스태프들과 자원봉사자들

영화제 개막 준비를 돕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단기 스태프들과 자원봉사자들 ⓒ 부산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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