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요 123곡을 담은 음반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우리 동요 123곡을 담은 음반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 아울로스 미디어

모국어(母國語)와 모어(母語)의 차이가 있다. 모어는 국경, 국민의 개념이 빠진 그냥 엄마, 그냥 태생의 말이다. 경계를 갖다 붙일 수 없이 따숩고 정겨운 말과 노래.

이번에 한국 최초로 '총망라'한 동요집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우리 동요 베스트 123>은 엄마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삶의 노래이자 기억이며 꿈자락이다. 국경과 언어를 넘어 세상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는 엄마의 노래, 엄마의 말이다. 흔히 동요라고 부르고 외진 기억 공간에 가둬 두었지만, 이건 사실 어른들의 노래이고  오늘 내일 영영 불러야 할 노래가 분명하다.

우리는 모두 자장가를 듣고 배우며 자랐다. 둥개둥개 목마를 타고 높다란 하늘의 뭉게구름을 잡으려고 했다. 달과 별과 꽃을 보면서 불렀던 노래.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하면서 울었고,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가면 하면서 기억 저편의 그리움을 끌어 안았다.

세상의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며 노래들을 찾아 다녔는데, 현지인들의 동요와 자장가도 제법 많이 만났다. 나라마다 독특한 정서와 멜로디가 있는데, 한국의 동요는 아름답고도 슬픈 말과 가락이 돌자갈처럼 구른다. 어머니 아버지 고향산천도 잃은 나같은 고아 인생에겐 동요 첫소절이 안겨주는 위안과 위로가 배나 크다. 귓불이 떨리고 코끝까지 찡 시큰해진다.

KBS의 '세상의 모든 음악', 월드뮤직 음반 시리즈, 그리고 수많은 클래식 신보를 국내 소개하고 있는 '아울로스 미디어'에서 지난 2년 동안 애쓰고 준비한 이 동요집은 세계에 소개하고 널리 알릴 가치있는 한국인의 정신 산물이다. 현란하고 흥겨운 서양식 춤과 세속에 절인 노랫말이 아이들의 생활 문화가 되어버린 현실이다.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자연재난처럼 여겨진다.

정작 동요가 필요하고 자장가가 필요한 것은 우리 어른들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책을 읽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윽박지른다. 우리가 동요를 잊고, 동심을  버리고, 자장가도 없이 쓰러져 자면서 어떤 빛나는 꿈과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역사와 함께 흐르는 우리 동요의 역사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라는 가사의 <어린이날 노래>(윤극영 작곡)는 1948년에 작곡되었지만, '어린이 날'이 처음 지정된 것은 일제 강점기이던 1923년 5월 1일이다. '딸년' '아들놈' 등으로 불리며, 성인을 기준으로 아직 미숙하던 존재로 인식되던 아이들에게 '어린이'라는 새 이름과 세대명을 지어준 이는 방정환(1899~1931)이었다. 참고로 음반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이 발매되는 2019년은 방정환 탄생 120주년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방정환은 1923년 우리나라 최초로 어린이를 위해 발간한 월간 <어린이>의 창간사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새와 같이 꽃과 같이 앵도 같은 어린 입술로 천진난만하게 부르는 노래, 그것은 그대로 자연의 소리이며, 그대로 하늘의 소리입니다. 비둘기와 같이 토끼와 같이 부드러운 머리를 바람에 날리면서 뛰노는 모양 그대로가 자연의 자태이고 그대로가 하늘의 그림자입니다. 거기에는 어른들과 같은 욕심도 아니하고 욕심스런 계획도 있지 아니합니다. 죄 없고 허물없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하늘나라! (…) 이 모든 깨끗한 것을 거두어 모아내는 것이 '어린이'입니다."

방정환은 어린이를 성인이 되지 못한 미완의 존재가 아닌 문화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그 세대만의 독특한 감성을 갖고 있는 독립적인 인격체로 여겼으며, 어린이야말로 장차 세상을 이끌어갈 꿈나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1920~30년대 : 창작동요의 토대 형성과 전성기

월간 <어린이>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요로 알려진 '반달'(윤극영 작곡)은 물론 '고향의 봄'(홍난파 작곡) 등 주옥같은 작품들이 실려 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로 시작하는 '반달'은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불러봤을 만큼 익숙한 노래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아이가 부를 것을 염두에 두고 어른이 노랫말과 곡을 짓기 시작한 지도 100년이 다 되어간다. 즉, 한국 창작동요는 100년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창작동요를 부르게 된 것은 서양음악 도입 이후부터지만, 이전에는 전래동요가 있어 민요와 함께 오랜 세월 불려왔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 '강강술래', '동무동무 씨동무' 등이 전래동요에 해당하는 곡들이다. 민요나 전래동요의 가락은 매우 쉽고 단순해 어른들도 아이들도 쉽게 익히고 부를 수 있었고, 작사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려지지 않은 채 구전되어왔다. 따라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기도 하고 일부는 변형되어 전해지기도 했다.

창작동요는 그 대척점에 있는 노래로, 1920년대에 활발하게 시작되었고 너도나도 부르는 노래로 자리매김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930년대에 많은 작곡가와 아동문학인들이 동요의 전성기를 만들어나간다. 질적, 양적으로 풍성해졌고, 동요를 통해 민족의 미래인 어린이들의 자생력을 키우자는 운동까지 일어날 정도였다.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에 앞으로 미래를 짊어질 '어린이'들이 부르는 노래에는 어른들이 갈망하고, 현재로서는 찾지 못하는 '희망'과 '빛'이 실렸다. 무엇보다 동요는 아이들의 심성에 침투하는 세파로부터의 방파제와 같은 역할을 했다. 천진난만하게 부르던 노래에는 이러한 시대상과 어른들의 희망이 담겨 있다.

1940년대 : 노래를 통해 성장하고 배우는 새 주역들

1930년대 후반부터 해방이 되던 1945년까지, 이 시기는 일제의 혹독한 민족말살정책으로 인해 우리말로 된 동요를 만들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부를 수도 없던 불행한 시절이었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아시아·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아이들은 전장에서 불리는 군가를 따라 부르거나, 일제에 충성하는 곡조의 노래들을 뜻도 모른 채 불러야만 했다.

하지만 뜻을 품은 어른들이 일제의 눈을 피하며 우리 동요를 전파했다. 어린이들의 앞날에 대한 걱정, 동요를 통해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려는 뜨거운 열망이었다.
그토록 힘든 시기를 지나고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했다. 시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동요가 수록된 이 음반에는 1940년대에 어린이들의 입에 오르고 내린 19곡의 동요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새 나라의 어린이'(윤석중 작사·박태준 작곡)는 이러한 광복의 기쁨과 어린이의 다짐을 나타낸 곡으로, 광복 후 최초로 창작된 동요이다. '새 나라'에서 꿈과 희망을 지닌 어린이로서 어떤 삶과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 그 가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새 나라의 어린이는 서로 서로 돕습니다. 욕심쟁이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해방이 되었으니 새 나라의 주역인 어린이들은 더욱 많이 배우고 갈고 닦아야 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동요가 상상이나 동화 속의 이야기를 노래했다면, 1940년대의 동요는 현실 속에서 더 '똑똑한 어린이'가 되기를 노래하는 노래들이 많다. '새 나라의 어린이', '학교종', '졸업식 노래', '어머님 은혜', '어린이날 노래', '어린이 행진곡' 등이 그렇다.

1920~30년대의 노래들이 잃어버린 조국을 상징하는 노스탤지어 풍의 동요들이 많았다면, 1940년대는 보다 활기차고 밝은 노래들이 많은 것도 이 시기의 한 특징이다.

1950~1960년대 : 전쟁의 상처를 달래고, 방송 동요의 전성기

1950년대는 6·25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따라서 마음을 순화하는 동요가 다수 발표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방송공사(KBS)의 '방송 동요'다. 1948년 종달새동요회를 결성하여 이끌던 한용희(1931~2014)가 방송국 PD가 되면서 '새 시대의 새로운 동요'라는 이름 아래 방송을 통한 동요 보급 운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게 된다.

이러한 방송 동요를 통해 수많은 문학인과 작곡가들이 한마음으로 동요 보급에 힘썼으며, 동요는 또 다른 전성기를 맞는다. 이러한 1950년대를 대표하던 '나뭇잎 배', '파란마음 하얀마음', '초록바다' 등 28곡의 동요가 제3편(1950년대)에 수록되었다.
특히 제3편에는 한용희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꼬마 눈사람', '푸른 잔디', '파란마음 하얀 마음', '고향 땅', '우리 유치원', '흰 구름 푸른 구름' 이상 6편의 동요가 수록되어 있어, 동요사에 큰 족적을 남긴 한용희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할 수 있는 가치도 지녔다. 이러한 동요의 전성기는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1970~1980년대 : 산업화, 대중음악과 문화에 밀린 동심

1960년대 1970년대에 산업화가 시작되었고, 많은 문화가 자극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TV·라디오 등이 신식매체는 아니었지만 보급되며 국민정서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가요, 팝, CM송 등의 대중음악들이었다. 상업적인 음악은 어린이들의 정서에도 깊게 침투하기 시작했다.

1975년 5월에는 국가가 긴급조치 9호를 발행했고, 대중가요에 금지곡의 딱지가 붙기도 했다. 그리고 음반마다 이른바 '건전가요'를 한 곡씩 의무적으로 넣어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클래식음악이 교양음악이 되었고, 동요가 건전 노래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래나 저래나 동요는 이러한 시대와 조우하며 1970년대에는 어린이들의 노래 경연 프로그램인 KBS의 '누가누가 잘하나'가, 1980년대에는 방송창작동요대회가 나름대로 동요를 지키는 역할을 해주었다. 점차 증가하던 경연대회는 참가자들에게 동요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교육·보급하는 역할을 했고, 이를 통해 어린이들은 기존 동요와 대회 참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노래를 열심히 부르곤 했다. 이 음반에 수록된 동요들 중 1960~70년대의 동요들은 이러한 경연 프로그램에서 사랑 받던 동요들이 많다.
 
 동요집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를 낸 아울로스 미디어 홈페이지.

동요집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를 낸 아울로스 미디어 홈페이지. ⓒ 아울로스 미디어 홈페이지

 
1990년대~현재 : 희미해진 명맥... 하지만 다시 불러야 할 우리 동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음반에 수록된 노래 중 그 끝을 차지하는 노래들은 시기적으로 1990년대에 만들어진 곡들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 시청률과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제일 먼저 폐지된 것은 어린이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새 주역이라고 치켜세우던 어른들은 그 공백을 자신들을 위한 흥미 위주의 프로그램들로 채웠다. 시대적으로는 풍족해졌지만, 어린이들은 동요 한 자락 배울 수 없을 정도로 바빠졌다. 동요보다 더 먼저 영어를 배워야 하는 국제화시대였고, 동요보다 입시를 통과하며 경쟁해야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생존을 위한 공부가 더욱 중요해진 것이었다.

1990년대가 되면서 문화적으로는 더욱 풍요로워졌지만, 그 이후부터 현재 지상파 방송에서 유지하고 있는 KBS의 '누가누가 잘하나'가 유일한 어린이 동요프로그램으로 방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동요제도 많이 줄어 몇 개 되지 않는다. 동요대회에 관심이 있거나 노래를 잘하는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동요제를 잘 알지 못하고, 동요를 부르지도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일제강점기, 해방기, 전쟁기의 역사에서 동요의 생명력과 역할을 살펴보았듯이 동요는 당대와 함께 호흡하며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맑고 순수한 감성을 갖게 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한 세기 동안 민족의 숨결을 고이 간직해온 동요는 척박한 역사와 환경이 과거보다 더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유아기의 아이들도 동요보다는 유행하는 만화 주제가를 선호한다. 어린이가 어린이다운 순수함을 잃고, 자극적인 상업음악에 길드는 현상이 만연한 것이다.

기계 문명에 익숙한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기계화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샘물처럼 맑고 순수한 동요가 더욱 절실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아름다운 그들만의 마음을 담은 노래를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이 시대를 사는 지혜로운 어른의 몫일 것이다.

오늘날에 작곡되거나 불리는 동요뿐만 아니라, 이 노래를 부를 어린이들의 부모와 조상이 어린 시절에 불렀던 동요까지 포함되었기에 어린이들은 이 노래들을 통해 선조의 어린 시절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잃어버린 동요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이것이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음반의 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녹음후기]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만들어지기까지

어린이를 위해, 어린이에게 맞춘 음악인 동요는 쉽고 아름다운 선율에 어린이의 순수함과 활력, 서정성, 그리고 긍정적인 정서가 가득 담긴 노랫말이 얹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동요는 어린 시절의 정서 함양과 상상력의 자양분이 되죠.

이러한 어린이들의 노래 '동요'가 점점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중문화와 모바일, SNS에 익숙한 요즘 어린이들이 동요보다 어른들의 노래를 쉽게 접하고 뜻도 모르는 가사를 따라 부르며, 어른들의 춤을 따라 출 때마다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어린이가 자신들의 노래인 동요를 즐겨 부르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길 바라며 그 꿈과 뜻을 모아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우리 동요 베스트 123> 음반을 만들었습니다.

2017년 1월 시작해 제작 기간 2년 10개월, 제작 참여 인원 총 65명, 가창 어린이 47명, 녹음 기간 10개월... 요즘처럼 동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좀처럼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듯 좋은 음악을 좋은 소리로, 제대로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예술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지금까지 애창되는 노래 중 우리나라 시대별 아름다운 순간들과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동요 명곡 123곡을 담았습니다.

원곡 그대로의 느낌을 살리며 간결하지만 동요의 품격을 살릴 수 있도록 두 가지 시도를 했습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미디나 전자악기 대신 실내악 편성의 실제 연주를 바탕으로 녹음했고, 다양한 음악 장르를 이용한 편곡을 통해 듣기 편안하고 따뜻한 음악으로 완성했습니다.

또한 24bit 48kHz의 고음질 녹음을 통해 기존에 전혀 경험할 수 없었던 동요의 깊은 울림을 느끼실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우리 어린이들의 마음을 자라게 하는 동요의 아름다움과 힘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가려져 있는 우리 동요의 소중한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 글-황설윤 작가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임의진 월드뮤직 전문가 겸 '여행자의 노래' 선곡자(앞부분 음반 소개)와 송현민 음악평론가(뒷부분 한국 창작동요의 역사)가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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