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는 시대와 세대를 넘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는 전 국민의 취미 생활이다. 누구든 한 편쯤 자신만의 '인생 드라마'는 있다.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이제는 매주 수 십 편의 드라마가 쏟아지고 시청자는 TV만이 아니라 PC, 모바일 등을 통하여 다양한 작품을 편하게 취향대로 골라볼 수 있다.

더불어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이제 국내를 넘어 아시아로, 세계로 뻗어나가며 K-POP,영화 등과 함께 '한류'를 대표하는 핵심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2010년대에도 수많은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201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드라마에는 어떤 작품이 있었을까.

로맨스 판타지의 전성시대
 
 주말 밤, 시청자들을 '현빈 앓이'에 빠지게 하는 SBS 주말 드라마 <시크릿 가든>

주말 밤, 시청자들을 '현빈 앓이'에 빠지게 하는 SBS 주말 드라마 <시크릿 가든> ⓒ SBS 시크릿 가든


남녀의 몸과 영혼이 바뀌고(시크릿 가든, 2010), 옆집에는 외계인이 살고(별에서 온 그대 2013), 도깨비와 저승사자를 보는데도 마음이 설레며(도깨비 2016), 낯선 외국과 극한의 환경에서도 군인과 의사간에 사랑은 싹튼다(태양의 후예, 2016). 나이든 40대 '아재'들이 20대보다 더 섹시할수도 있고(신사의 품격 2013), 하필 동명이인의 두 여자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자꾸 엮이게 되며(또 오해영 2016) 재벌집 아들이 가사 도우미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것(상속자들, 2014)도 드라마 안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나같이 현실성과는 거리가 먼 '환상'의 세계이지만 설득력있는 연출과 연기, 극본이 어우러지며 이른바 '한국형 로맨스 판타지' 장르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전 시대와 비교하면 남성 캐릭터는 뛰어난 능력치를 보유했으면서도 자신의 여자에게는 한없이 약해지는 순애보적인 면모가 부각되었고, 여성 캐릭터도 시대 흐름에 맞춰 가난하더라도 무조건 보호받기만 하는 약한 존재가 아니라 자기 주장을 이야기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진취적인 성향이 더 부각됐다. 판타지 성향답게 초능력, 외계인, 도깨비, 윤회 등 기존 로맨스물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소재나 캐릭터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시도도 두드러졌다.

이민호, 김수현, 송중기, 김우빈, 박신혜, 서현진 등은 2010년대를 대표하는 새로운 드라마 스타로 부상했고, 공유, 이동욱, 송혜교, 전지현, 하지원, 장동건 등 30-40대를 넘긴 배우들도 드라마를 통하여 제 2의 전성기를 열었다. 1990년대-2000년대까지 한류의 주요 타깃이 일본과 동남아였다면, 2010년대에는 중국에서도 한류 열풍이 본격화 되었는데, 이 열풍의 중심엔 드라마가 있었다. <별그대>가 중국에 불러온 '치맥' 열풍을 비롯하여 인기 드라마의 명대사, 명장면, 패션, OST, 주요 촬영지 등이 현지에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역사를 잊은 한류에 미래는 없다', 역사시대극의 침체
 
 KBS 1TV <정도전>의 한 장면

KBS 1TV <정도전>의 한 장면 ⓒ KBS


드라마의 황금시대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2010년대는 역사 시대극, 특히 정통 사극으로 불리는 '대하드라마' 분야에 있어 최악의 암흑기였다. 사실상 2000년대 후반부터 삼국시대-고려사 등을 다룬 대작드라마들이 시청률과 완성도에서 잇달아 참패를 겪으며 사극 제작이 주춤했다. 또한 2010년대부터 드라마 시장에서 지상파의 위상이 줄어들고 케이블과 종편을 중심으로 시장 환경이 재편되면서 수익성은 적은데 제작 난이도는 높은 대하사극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됐다.

2010년대 MBC가 드라마 <무신><구암 허준>, KBS <징비록>,<장영실> 등이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하면서 이후로는 정통 사극 제작이 눈에 띄게 주춤했다. 이로 인하여 능력있는 중견 배우들의 활동 폭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 한국 사극의 자존심을 그나마 세운 걸작으로 <정도전>(2014)을 빼놓을수 없다. 21세기 버전으로 재해석된 <용의 눈물>이라는 평가가 나올만큼 <정도전>은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민본의 나라를 건설하려는 정도전과 이성계, 그리고 그들과 맞서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하여 선과 악이 아닌 '각자의 정의'가 충돌하는 난세를 그려낸 최고의 정치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았다. 등장인물의 상당수가 겹치는 <용의 눈물>에도 출연했던 유동근, 안재모 등의 배우들이 <정도전>에서는 한 세대 위의 인물을 연기한 것도 소소한 화젯거리가 됐다.

정통 대하사극의 빈 자리를 메운 것은 역사적 상상력에 로맨스와 미스터리 요소같은 젊은 감성을 결합한 '팩션 사극'이었다. 조선 인조 시대를 배경으로 소현세자의 비극에 사회적 계급 갈등과 액션을 결합한 <추노>(2010), 세종의 한글 창제를 둘러싼 스토리를 무협 미스터리 형식으로 풀어낸 <뿌리깊은 나무>(2011), 가상의 왕실을 배경으로 고증 논란을 피해 '로맨스 사극'의 전성기를 열었던 <해를 품은 달>(2012), <구르미 그린 달빛>(2016) 등은 사극의 주시청층이 더 이상 중장년이 아니라 젊은 시청자들에게 옮겨가고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또한 구한말 항일투쟁과 의병들을 소재로 한 <미스터 선샤인>(2018)은 이미 많이 다뤄진 역사적 배경이나 소재라도 '다른 시각의 해석과 표현'을 통하여 얼마든지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며 앞으로 한국형 대하사극이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우리의 삶이 곧 드라마' 고단한 시대를 위로하는 '생활밀착형' 드라마
 
 tvN <미생> 스틸컷

tvN <미생> 스틸컷 ⓒ CJ E&M


한류가 불러온 높은 인기와 위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받는 부분도 있다. 반복되는 뻔한 소재와 사랑타령, 고증의 비현실성과 전문성 부족, 자극적인 설정이 난무하는 막장드라마 등에 대한 비판이다. 하지만 당연히 이런 작품들만이 한국드라마의 전부는 아니다. 판타지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시청자들과 시대의 추억, 일상의 아픔을 공유하는 '생활 밀착형 공감 드라마'들도 꾸준히 등장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미생(2014)은 tvN이 지상파를 넘어 '드라마 왕국'으로 자리잡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수작이다. 취업에 목마른 청년세대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도 바쁜 기성세대에 이르기까지, 매일매일 고단한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세대'의 현실을 섬세하게 담아내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초인적인 능력자도 극적인 해피엔딩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2010년대 복고열풍을 주도한 '응답하라' 3부작(1997, 1994, 1988)(tvN) 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다. 각 시리즈마다 제목에 붙은 연도가 상징하듯 이 드라마에선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만이 느낄수 있는' 감수성과 추억(패션, 가요, 유행 등)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활용됐다. 반면 그 시대를 모르는 요즘 세대에게는, 그 시절 젊은 우리의 부모님-언니-오빠들의 청춘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이해하고 그때의 감성을 공유할수 있는 계기가 됐다. 올림픽-대중문화-스포츠 등 그 시대에 실존했던 각종 에피소드와 극중 주인공들이 절묘하게 엮이는 연출, 결말을 짐작하면서도 궁금하게 만드는 추리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시청자들에게는 드라마 안에서 '복고와 현대'가 얼마나 흥미롭게 결합될수 있을지 보여줬다. 

<나의 아저씨>(2018)는 저마다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삼형제와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며 호평받았다.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 주인공이라는 설정 때문에 방영전에는 오해와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막상 드라마는 로맨스나 판타지보다는 각자의 아픔을 간직한 평범한 인물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삶을 치유하게 되는 '힐링'에 초점을 맞췄고, 인생의 무게를 대변하는 감성적 명대사들로 많은 공감대를 얻었다. 신구, 윤여정, 김혜자, 나문희, 고두심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원로-중견배우들이 총출동한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2016)는 나이는 들어도 여전히 삶의 열정을 간직하고 있는 '황혼 청춘'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다뤄내며 기존 드라마에서 잘 조명되지 않았던 기성세대에 대한 선입견을 넘어섰다는 호평을 받았다.

반면 <스카이 캐슬>(2018, JTBC)은 대한민국 사교육 열풍과 명문가들의 계급 갈등을 다룬 '사회고발성 풍자극'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역대 종편 드라마 최고의 시청률을 달성했다. 드라마는 한국 사회 상위 1%만 모여 사는 스카이 캐슬 안에서 교육과 입시라는 수단을 매개로 신분상승과 성공지상주의에 찌든 상류층의 욕망을 리얼하면서도 코믹하게 다뤄냈다. 그동안 드라마의 주변부 소재에 머물던 30-40대 기혼여성들을 극의 중심인물들로 내세웠고, 로맨스나 신파에 의존하지 않고도 웰메이드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것도 또다른 성과다.

여기는 '프로'들의 세계, 장르극의 진화
 
 KBS 2TV 드라마 <동백꽃이 필 무렵>의 한 장면

KBS 2TV 드라마 <동백꽃이 필 무렵>의 한 장면 ⓒ KBS


이전의 한국드라마들이 자주 다루지 않았던 특수 소재나 배경, 직업군 등을 다룬 '장르극'도 활기를 띠었다. 이른바 2000년대부터 본격화된 '미드'(미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범죄, 액션, 의학, 법학, 종교, 교육, 타임슬립, 엑소시즘에 이르기까지 '전문성 있는 소재'들을 다룬 작품이 늘어났고, 시즌제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됐다는 것도 2010년대 드라마들의 주요한 특징이다.

<시그널>(2016)은 무전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미제 사건을 다룬다는 신선한 설정에 김혜수, 조진웅, 이제훈 등 세 배우의 앙상블, 장르물에 특화된 김은희 작가의 필력까지 더해지며 탄탄한 내러티브로 2010년대 범죄수사물을 대표하는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나쁜 녀석들>(2014)은 강력범죄자들을 모아 더 큰 악을 처리한다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한국형 '다크 히어로'물의 선구자가 됐다.

법조계를 다룬 작품도 유난히 많았다. 감정을 느끼지못하는 검사와 정의로운 여형사의 투톱을 내세운 <비밀의 숲>(2017)을 비롯하여 <동네변호사 조들호 1,2>(2016, 2019), <무법변호사>(2018), <마녀의 법정>(2017), <이판사판>(2017), 해외 원작을 리메이크한 <굿와이프>(2016), <슈츠>(2018) 등이 대거 쏟아졌다. 이밖에 법의학을 다룬 <검법남녀>, 사이비 종교와 폐쇄 사회의 위험성을 고발한 <구해줘> 등은 시즌제로 이어질만큼 완성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0년대 마지막 수작으로 꼽히는 <동백꽃 필 무렵>(2019)은 '장르의 이종교배' 가능성을 보여준 독특한 작품이다. 농촌을 배경으로 하나의 장르를 넘어서 미스터리 스릴러+로맨스+휴먼드라마를 넘나드는 이색적인 구성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기본적으로는 로맨스물이지만, 주인공이 온갖 불행을 극복해나가는 성장스토리에, 타인을 차별하는 폐쇄된 작은 공동체에 대한 사회 고발과 풍자성, 연쇄 살인을 추격하는 추리극 등 독특한 콘셉트까지 자연스럽게 결합했다. 초인적인 주인공이나 판타지가 없어도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는 이야기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며 앞으로 2020년대로 이어질 드라마 트렌드에 또 하나의 힌트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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