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결산의 시즌이다. 2019년과의 작별, 2010년대와의 작별, 그리고 2020년대의 개막이다. '요즘 들을 것 없다'는 말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들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단 한번도 그 말에 동의한 적은 없다. 들을 가치가 있는 음악은 어느 시대에나 많았기 때문이다.

상투적이지 않은 감성의 표현, 자기 복제와 거리가 먼 음악들은 어느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우리를 찾아왔다. 2019년의 가요를 빛낸 다섯 팀을 소개한다. 선정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잔나비 정규 2집 < 전설 >

잔나비 정규 2집 < 전설 > ⓒ 페포니뮤직

 
잔나비 

보컬 최정훈의 패션을 놓고 보더라도, 올해 잔나비는 '레트로', '빈티지' 로 이름 붙여진 모든 것의 대표였다. 특히 두번째 정규 앨범 <전설>은 잔나비를 인디신의 기대주에서 '대중의 밴드'로 만들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예스러운 사운드를 듣고 있자면 유재하와 이문세,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ectric Light Orchestra) 등 수많은 '전설'들의 이름이 떠오른다. 그러나 마지막에 떠오르는 이름은 '잔나비' 세글자다. 노랫말 역시 상투적인 가요들과 거리가 멀었다.

'꿈과 책과 힘과 벽'에서는 어른과 청년의 경계를, 'DOLMARO'에서는 지역의 이름을 제제로 삼아, 그리움의 정서를 노래했다. 망설임과 조심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필연'이라 노래하는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는 단연 올해의 노래다.
 
"언젠가 또 그날이 온대도 우린 서둘러 뒤돌지 말아요
마주 보던 그대로 뒷걸음치면서 서로의 안녕을 보아요"
-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중
 

 
 지난 12월 발표된 백예린 정규 앨범 < Every letter I sent you.>

지난 12월 발표된 백예린 정규 앨범 < Every letter I sent you.> ⓒ 블루바이닐

 

백예린 

가수 백예린의 팬들에게 있어, 올해는 지난 몇 년 동안 쌓아온 신뢰의 결실을 보게 된 해였다. 백예린은 올해 봄과 겨울에 각각 < Our Love Is Great >와 < Every Letter I Sent You >라는 수작을 내놓았다.

백예린에 대한 대중들의 수요는 매우 특별한 것이라 하겠다. 그녀는 방송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지도 않았고, 음원 차트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스타일의 음악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중은 백예린의 음악에 응답했다. 다시 말하자면, 두터운 마니아층이 대중의 선호로 연결된 사례다. 시티팝과 네오소울, 재즈 등 장르적인 멋을 구현하는 프로듀서 구름과 백예린의 섬세한 표현은 훌륭한 조화를 이뤘다. 좋은 소리를 위해 고심하는 뮤지션의 철학이 멋진 결과를 낳았다.
 
"고가도로에 삐져나온 초록잎
아마 이 도시에서 유일히 적응 못한 낭만일 거야"
- '지켜줄게' 중
 

 
 씨잼의 앨범 < 킁 >

씨잼의 앨범 < 킁 > ⓒ 린치핀뮤직

 
씨잼 

2019년 국내 힙합신에서는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뮤지션들이 많았다. 마침내 <이방인>을 공개한 이센스는 물론, 성실히 작업물을 내놓은 릴러말즈와 애쉬 아일랜드, 래퍼 오도마의 예리한 시선 역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캐릭터 자체를 트렌드로 만들어 버린 염따도 있다.

그러나 씨잼만큼 충격적인 인물은 없었다는 것이 팬들의 중론. 대마초 흡연 혐의로 집행유예형을 받은 그는 반성의 의지를 애써 음악에 녹여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약물과 쾌락에 탐닉하면서도, 동시에 종교적인 죄책감마저 앨범에 녹여냈다. <킁>은 종결되지 않는 세상과의 다툼, 그리고 고뇌를 통해 완성된 작품이다. 록밴드 U2의 'Mysterious Ways'를 자연스럽게 샘플링한 '원래 난 이랬나'는 가장 인상적인 순간.
 
"이러다 진짜 못하지 갱생
끊어야지 작심삼일 캠페인"
- 'ㅈ(Error)' 중

 
 악뮤의 정규 앨범 < 항해 >

악뮤의 정규 앨범 < 항해 > ⓒ YG 엔터테인먼트


악뮤 

남매(이수현, 이찬혁)는 이번 앨범을 기점으로 활동명을 '악동뮤지션'에서 '악뮤'로 바꾸었다. '아이'를 의미하는 '동'을 뺐다. 세상과 사랑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야가 성숙해졌다는 암시다. 그들의 앨범을 듣고 놀랐다. 늘 '맑은 노래'를 들려주는 그들이었지만, 이번에는 그 이상을 들려 주었기 때문이다.

바다, 배와 같은 시어로 미루어볼 수 있듯이, 타이틀곡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를 제외하면, 이찬혁이 군생활 중 배 위에서 써 내려간 곡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컨트리와 포크 등, 아날로그 사운드가 앨범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감성의 농도는 짙어졌고, 이야기의 주제는 확장되었다. '악뮤'의 항해는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너는 꼭 살아서 지푸라기라도
잡아서 내 이름을 기억해줘"
- '물 만난 물고기' 중
 
 아이유의 미니 앨범 < Love Poem >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과 연대를 노래했다.

아이유의 미니 앨범 < Love Poem >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과 연대를 노래했다. ⓒ ㈜ 카카오 M


아이유 

'나의 아저씨', '호텔 델루나' 등 굵직한 드라마에서 존재감을 발휘했던 아이유. 그러나 그녀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노래를 부르고 곡을 쓸 때다. 스물일곱살 아이유가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 된 것은 그 순간이 만들어낸 '공감'에 있다.   

< Love Poem >에서 아이유는 단순히 좋은 음악을 들려준다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이 음악 속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이제 아이유는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사랑시를 부르고, 사랑이 남긴 상흔을 흔치 않은 언어로 노래한다.

'너랑 나'(2011)에서 "너를 알아볼 수 있게 내 이름을 불러줘'라고 말하던 소녀는 '미래를 찾지 않을 두 발로 숨이 차게 달려가겠어'(시간의 바깥, 2019)라고 말하는 작가가 되었다. '지은이 아이유'답다.
 
"아주 잠시만 귀 기울여 봐
유난히 긴 밤을 걷는 널 위해 부를게"
- 'Love Poem'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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