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메인포스터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메인포스터

▲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메인포스터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메인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01.
충무로 멜로 영화의 대가로 불리며 자신만의 감성을 그려 나가던 허진호 감독의 전성기는 실로 인상적이었다. 그의 대표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1998)와 <봄날은 간다>(2001)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며 관객들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영화다. 공식 통계로는 각각 43만, 37만에 불과한 수치였지만, 지금과 같이 멀티플렉스관이 자리 잡지 못했던 시스템 하에서는 결코 적지 않은 기록이었다. 소재나 장르와 무관하게 인물의 심리를 세심하게 파고드는 허진호 감독의 작품 속에는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2000년 후반 이후 연출한 영화 <호우시절>(2009)과 <위험한 관계>(2012)가 다소 주춤하면서 아쉬움이 생기긴 했지만, 실존 인물인 덕혜옹주의 삶을 다룬 <덕혜옹주>(2016)가 550만 정도의 관객을 다시 한번 끌어 모으며 다시 한번 주목을 이끄는데 성공했다. 인물에 집중했을 때 드러나는 감독의 장점이 현재에도 충분히 통용될 수 있음을 확인하게 한 작품이었다.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이하 천문)은 영화 <덕혜옹주> 이후 허진호 감독이 3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 작품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손꼽히는 임금 세종대왕(한석규 분)과 조선 최고의 과학자로 칭송 받은 장영실(최민식 분), 두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시대를 타고났다는 칭송을 들을 정도로 위대했던 두 인물이 신분의 차이와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어 보여주는 우정과 충정을 그려낸다. 영화 <천문>은 그 중에서도 장영실이 명나라로부터 가져온 물시계 그림을 보고 이를 재현해내는 1422년 무렵의 이야기부터 장영실이 파면 당하고 세종이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1446년 사이의 일이 중심이 된다.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스틸컷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스틸컷

▲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스틸컷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02.
허진호 감독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은 조선 시대 경제 발전에 있어 필수적이었던 과학 기구의 발명을 꿈꾸던 세종의 꿈과 그 꿈을 가능하게 했던 노비 출신 장영실 사이의 신분을 뛰어넘는 특별한 관계를 풀어보고자 시작되었다고 한다. - 농업의 발전을 위해 이 땅에 맞는 정확한 날씨와 계절의 정보가 필요했으나, 이전까지는 명나라의 자료에 의존해왔기에 정확하지 않았다. – 다만, 역사적 사료가 풍부하게 남아있는 세종과는 달리 의문만을 남긴 채 갑자기 사라져버린 장영실이라는 인물의 존재에 대해서는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했다고.

실제로 영화 속에서는 실제로 알려져 있는 역사 속 인물의 사료와 달리 재해석된 부분이 등장하는데, 사료 속에서는 직접 명나라를 다녀온 장영실로 기록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세종이 건넨 알 자자리의 코끼리 시계를 보고 물시계를 만드는 것으로 그려진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태종 때부터 이미 그 재능을 귀하게 여겨지던 장영실의 재능을 세종이라는 인물과 더욱 가깝게 위치시키기 위한 장치로 여겨진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임금의 가마인 '안여'와 관련된 에피소드 역시 실제와는 다른 부분이 있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것과 달리 안여는 세종이 타기도 전에 부서졌다고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 형벌이 내려지는 과정에도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진다.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스틸컷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스틸컷

▲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스틸컷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03.
영화 <천문>이 실제 역사에서 조금 벗어나 극적 상상력을 가미할 수 밖에 없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먼저, 실록을 비롯해 다양한 기록물에서 세종의 이야기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천한 노비 신분이었던 장영실에 대한 기록을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찾을 수가 없다는 점이 직접적인 이유다. 약 5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모습을 드러내고 갑자기 자취를 감추는 노비 신분의 인물을 명확히 그려내기에 역사적 사료가 충분히 못한 것이다. 이는 장영실의 업적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동안 그의 삶에 대한 문화적 작품이 다양하게 제작되지 못한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두 번째로는 영화의 시선 자체가 세종과 장영실, 두 인물의 관계와 깊은 유대에 집중되어 있기에 모든 에피소드들이 그를 지지하기 위해 구성되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처음에서 세종의 안여가 고장 나면서 시작되고 그 이야기가 후반부의 파국으로 이어지는 것 역시 두 인물의 관계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다. 특히 이 장면은 실제 기록과도 다른, 영화적 허구라고 볼 수 있는데, 끈끈함을 이어가던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가 왜 무너질 수 밖에 없었는지를 시대적 배경과 함께 이어내는 것이다. 명나라의 내정 간섭과 세종을 무너뜨리려는 조정 세력의 암투, 아직 채 완성되지 않았던 훈민정음의 존재와 관련된 에피소드들까지 모두가 영화의 중심에 놓인 두 사람의 관계를 잇고 또 끊어내며 극을 완성해 나가는 요소가 된다.

04.
이 작품에서 눈 여겨 볼 점은 세종과 장영실의 태생적 차이라고 할 수 있는 계급의 문제, 국가의 가장 높은 신분인 임금의 세종과 신하 중에서도 가장 천한 위치에 놓인 노비 계급의 장영실이 동등하게 설 수 없었던 근본적 문제를 다른 소재에서도 동일하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철저한 시대적 배경의 반영이다. 세종이 장영실에게 하사한 종3품 대호군 관직과 관련한 문제는 물론, 조선의 과학 기술 발달을 견제하는 명나라와 이에 대해 사대하는 조정 세력의 대립에도 이는 녹아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을 지탱하고 있는 두 가지 가장 중요한 축은 브로맨스를 형성하는 두 인물의 '관계'와 시종일관 강조되는 '시대적 배경'이라고 할 것이다. 영화의 종반에서 세종이 처한 상황과 자신의 처지를 정확히 이해한 장영실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고 하면서까지 세종을 지키고자 하는 것 또한 영화의 러닝타임에서 쌓아온 '시대적 배경'과 두 사람의 '관계'가 화학적으로 결합하며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시대적 배경'을 지키고 '관계'를 포기함으로써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스틸컷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스틸컷

▲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스틸컷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05.
세종과 관련한 이야기는 그 동안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재구성된 바 있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2011)에서는 훈민정음 반포 직전의 7일동안 발생한 집현전 학사 연쇄살인이 다뤄진 바 있었고, 올해 개봉했던 영화 <나랏말싸미>(2019)에서는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과정이 그려졌다. 작품에 따라 실제 고증과 관련한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어쨌든 세종이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대중의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기도 할 터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영화 <천문>이 그려내는 업적이 아닌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더구나, 그 관계의 대상이 장영실이라는 위대한 기술자라면 말이다.

다만, 그것이 목표를 위한 빌드 업의 과정이라고 할 지라도 작품 속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인해 세종과 장영실, 두 사람의 관계가 생각보다 얕게 느껴진 점은 다소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영화 <덕혜옹주>에서 그려낸 덕혜옹주라는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던 만큼 허진호 감독이 그려내는 하나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점도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천문>은 세종의 또 다른 면모를 지켜볼 수 있다는 점, 다른 작품들에서 쉽게 만나지 못했던 장영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느끼게 한다. 1998년의 영화 <쉬리> 이후 최민식과 한석규, 두 배우가 20년 만에 재회한 작품이며 두 배우가 함께 만들어내는 연기가 여전히 인상적이었다는 것 역시.
 
영화 천문 한석규 최민식 허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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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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