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한 장면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꼰대'라는 단어가 어디에서나 들려오는 요즘은 윗사람을 향해 존경이나 충성을 맹세하기는커녕 서로 볼썽사납게 물어뜯지나 않으면 다행인 세상이 됐다. '충의'니 '견마지로'니 하는 말들이 허황된 우스갯소리가 된 지 오래인 지금, 애초에 인간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도 긴가민가해졌을 정도다.

리더십과 팔로우십이 실종된 시대,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를 그린 영화 <천문>(2019)은 '부하를 아끼는 군주와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충신'이라는 고리타분한 내용을 가지고도 의외로 우리 삶을 환기시킨다. 
 
드라마 <미생>(2014)을 보면 인턴 PT를 앞둔 장그래(임시완)가 한석율(변요한)에게 '내 상사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며 주먹을 날리는 장면이 나온다. 입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상사를 모독하냐며 그러지 말라는 장그래의 모습에 한석율도 어처구니없었겠지만, 보는 시청자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설령 오래 본 사람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장그래의 행동에 대해 우리는 의문을 갖는 동시에 '나를 위해 주먹을 날릴 만큼 애쓸 사람이 주변에 있을지', 혹은 '내가 생판 남인 누군가를 위해 주먹을 날릴 수 있을지'도 생각하게 된다. 과연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를 모독했다고 상을 엎어버릴 사람이 가족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천문>에서도 세종을 향한 장영실의 충심은 가히 소크라테스를 향한 플라톤의 사랑에 비견될 만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건 단순히 군주의 총애를 받아 기꺼워하는 신하의 태도가 아니다. 늘 상대가 기뻐했으면 하고, 슬프지 않았으면 하는, 진심 어린 사랑의 모습에 가깝다. 

명령과 복종, 이해타산이 결부된 군신관계를 생각하면 <천문>이 장영실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역시 '한 인간이 어떻게 진심 어린 충의를 가질 수 있게 되었는가'에 맞춰진다. 정녕 세종의 무엇이 장영실을, 아니, 부하를 그토록 견마지로를 다하게 만드는가. 단지 좋은 관직을 받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신분이 높은 왕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기 때문이었을까.
 
 영화 <천문> 한 장면

영화 <천문>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본래 재주가 많은 사람이 그에 걸맞은 일을 하지 못하면 실의에 빠져 방탕한 인생을 살게 되는 법이다. 재능을 펼쳐 마땅히 얻어야 할 성취조차 손에 쥐질 못했다는 그들의 상실감은 여느 평범한 사람의 절망을 넘어선다. 그런 때 만약 어떤 유능한 사람이 그들의 재주를 인정해준다면, 그것만큼 감격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재능은 알아보기가 무척이나 힘들어서 그것을 알아보는 것 또한 대단한 눈썰미와 덕을 요구한다. 시정잡배 시절부터 친구로 지낸 관중이 적국의 포로로 붙잡혀 온 상황에서도 주군에게 수급을 내놓고 간언해 제나라의 재상으로 만든 포숙아처럼, 관포지교는 아무나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인간만큼이나 그 자신도 뛰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알아본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갈 용기와 인내심 또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세종이 신분제 사회에서 관노 출신 노비를 등용해 종 3품 대호군까지 오르게 한 것만으로도 이미 장영실이 충성을 다 할 이유로는 족해보인다. 

그러나 장영실이 그토록 세종에게 충의를 다하게 된 것은 단지 재능을 알아본 안목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자신의 가치를 알아본 세종의 안목 또한 그를 감명시키기는 했겠지만, 그가 세종을 자기 자신처럼 아끼고 따르게 된 것은 더 큰 이유가 있어서였다.
 
 영화 <천문> 한 장면

영화 <천문>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진실로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영실의 사람됨이 비단 공교한 솜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똑똑하기가 보통보다 뛰어나서, 매일 강무할 때에는 나의 곁에 두고 내시를 대신하여 명령을 전하기도 하였다. 이제 자격궁루를 만들었는데 비록 나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였지마는, 만약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결코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종실록」 세종 15년(1433) 9월 16일  

세종은 장영실에게 관직을 준 것도 모자라 아예 측근에서 보좌케 했다. 사대부들조차 왕의 옆자리를 차지하고자 혈투를 마다하지 않는 시기에 천민이 왕의 최측근이 될 수 있었다는 건 '노비 임관' 만큼이나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파격적인 만큼 그런 행동에는 큰 위험이 따랐다. 조선은 분명 가진 것을 지키고자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똘똘 뭉쳐 운영하는 '꼰대의 국가'였다. 비록 왕이 최고의 권력자이기는 했으나 '왕'이라는 자리가 존재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는 사대부들의 것이었다. 왕은 어쨌든 조선이라는 체제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조선의 방식'을 부정하는 것은 그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도 같았다. 

영화의 도입부에 군신의 예의를 갖추고자 명을 향해 사배를 올리는 세종의 모습을 넣은 것도 왕도 결국은 체제 안에 종속돼있음을 간접적이나마 드러내려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늘을 우러러 고개 숙일 일이라고 없을 것 같은 왕도 명과의 군신관계라는 틀 앞에서는 허리를 숙여야 한다. 왕을 규정하는 체제의 집단적 힘이란 그렇게나 강력한 것이다.

신분제 역시 조선과 명이 맺은 사대관계만큼이나 조선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실 신분을 정해두는 것만큼 자신의 이권을 챙기기 좋은 수단도 없다. 자질이 있든 없든 간에 사람을 천성에 따라 나누면 별 다른 노력 없이도 계속해서 요직을 차지하고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다. 바보 같은 양반이 머리 좋은 상놈을 만나더라도 양반은 신분제의 그늘 아래서 언제까지고 배를 두드리며 지낼 수 있다. 그런 손쉬운 방법을 성공적으로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그 방법을 뒤흔드는 인물을 곱게 볼 리 없다.
 
 영화 <천문> 한 장면

영화 <천문>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장영실은 분명 비천한 자신을 거둔 세종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장영실의 견마지로는 단순히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준 주군에 대한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기까지 했다면 그 사람이 위험에 처한 만큼의 책임감이 생긴다. 세종이 왕의 자리까지 걸고 지키려고 했던 건 장영실의 재능이었다. 실제로 그가 쏟아낸 무수한 관측 기구와 과학기구에서 볼 수 있듯, 그는 세종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군이 위험과 맞바꾼 것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만이 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여기고 행했다.

세종은 자기 자신이 왕으로 추앙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조선의 민중이 조선이라는 틀 안에 구속되어 삶의 제한을 받는 것보다 더 큰 가치를 펼칠 수 있기만을 바랐다. 세종은 국가가 아니라 인간을 보았고, 그에게 왕의 자리는 그저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

그런 형편이었기 때문에 세종은 그 자신의 뜻을 십분 이해한 장영실의 영특함을 지키고자 닥쳐올 위험을 온몸으로 맞는 희생을 보여주었고, 장영실 또한 위험조차도 초월한 세종의 믿음에 감복해 개나 말의 수고를 할지언정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살벌한 명령복종 관계에서도 절대적인 신뢰와 헌신을 낳은 비결이 아니었을까?

이유는 제각각일지언정 까만 하늘에 빛나는 별 하나 새기고 싶은 인간의 마음은 임금이든 노비든 똑같다. 하늘은 누구나 올려다볼 수 있고, 우리가 마음속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산다면 마음을 이루는 것에 그 무슨 제약이 필요하겠는가. '하늘은 다 같이 바라봐야 하는 것'이라는 세종의 마음가짐이라면 우리는 충의가 우스운 시대에서도 언제든 헌신할 주군을, 충성심 넘치는 부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위험에서 멀찍이 떨어져 그저 아랫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개나 말처럼 헌신하기를 바라는 요즘, 꼰대에게 지친 사람들이나 이미 '꼰대'가 된 이들이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해당 기사는 황경민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연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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