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스페이스의 <바람의 언덕> 인디토크 포스터.

인디스페이스의 <바람의 언덕> 인디토크 포스터. ⓒ 인디스페이스

 
"언덕을 오르는 발걸음.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것은 힘겨운 무게로 잡아끌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언덕길이 자신에게 의미가 있다고 다짐을 하는 것만 같은 걸음. 당신에게 약속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어떤 장면들은 당신의 마음을 움직일 것입니다. 아무리 단단히 여며도 당신을 안아주듯이 그렇게 다가갈 것입니다. 저는 신기하게 이 영화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만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영화감독이자 평론가인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이달 초 관객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초대장' 중 일부다. 그 결심이, 영화 팬들을 위한 아주 근사하고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어줄 듯하다. '영화광' 출신 영화평론가이자 영화 감독이 관객들과 성탄 전야에 자정이 넘도록 영화에 관한 길고 긴 이야기를 진행하는 이 비범한 광경이라니.  

본인의 영화인 <녹차의 중력>이 개봉 중이고, 또 신작 <백두 번째 구름>이 개봉(26일)을 앞두고 있는 정성일 평론가. 그가 "당신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라며 "초대의 마음으로, 편지를 보내는 심정으로" 성탄 전야를 위한 초대장을 발송한 영화는 바로 박석영 감독의 <바람의 언덕>이다. 정 평론가의 달달한, 온기 넘치는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우리는 그날 그저 기약 없이 영화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영화 <바람의 언덕> 소셜미디어 홍보 자료.

영화 <바람의 언덕> 소셜미디어 홍보 자료. ⓒ 영화사삼순

 
"그 자리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장소는 종로 3가에 있는 인디스페이스입니다. 그리고 날짜는 다소 놀랍겠지만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7시입니다. 영화가 끝난 다음에는 <바람의 언덕>에 출연한 김태희 배우가 기타 연주를 하고 장선과 정은경 배우가 함께 노래하는 자리도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박석영 감독과 세 배우들과 함께 영화 이야기를 해볼 참입니다.

한 가지 더 마음 설레는 것은 끝나는 시간 없이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잠들어서 산타할아버지가 착한 아이들을 위해 돌아다닐 그 시간까지, 아주 늦은 밤에도 우리는 영화 이야기를 나누기로 약속했습니다. 고맙게도 인디스페이스에서도 그걸 허락했습니다. 아마 당신께도 마이크를 드릴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따뜻한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볼 참입니다. 우리는 그날 그저 기약 없이 영화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아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다. 정 평론가가 크리스마스 전야에 관객들을 초대한 장소는. 그 곳에서 영화 상영 직후 성탄 전야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영화 수다'와 영화에 대한 '애정 고백'이 새벽까지 이어진다.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독립영화를 애호하는 당신이라면 꽤나 설렐 만한, 가슴 따뜻해지는 풍경이자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정 평론가는 혹시나 '꽃 3부작'을 지나쳤을지 모를 관객들을 위해 초대장에서 이런 소개를 덧붙였다. <들꽃>과 <스틸 플라워>는 "마치 드릴을 손에 든 것처럼 파내려가는 영화"라고, <재꽃>에서 "박석영 감독은 자신의 인물들을 어루만지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바람의 언덕>은 박 감독이 "다시 시작하는 그 발걸음을 더 멀리 내딛고 있었습니다"라는 문장을 남기기도 했다.

정 평론가의 소개대로, <바람의 언덕>은 이른바 '꽃 3부작'이라 불리는 <들꽃>, <스틸 플라워>, <재꽃>의 박석영 감독이 연출한 신작이다. 올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섹션과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본선경쟁-장편' 부문에 먼저 상영된 바 있다.

이번 '<바람의 언덕> 인디토크'는 향후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라는 특별한 상영을 계획 중인 <바람의 언덕>의 첫 번째 극장 상영이다.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특별한 방식에 대해 좀 더 소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바람의 언덕>의 아주 특별한 상영회
 
 영화<바람의 언덕> 감독 박석영, 배우 정은경, 장선, 김태희, 장해금, 박소이가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걸으며 입장하고 있다.

영화<바람의 언덕> 감독 박석영, 배우 정은경, 장선, 김태희, 장해금, 박소이가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걸으며 입장하고 있다. ⓒ 유성호

 
"이것들은 모두 상업적으로는 매우 이상한 선택으로 보일 것이나, 관객의 마음을 최선을 다해 마주하기 위해서, 너무 당연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는 커뮤니티 시네마의 일에 삶을 거신 분들에게 어려운 부탁을 드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아시겠지만 저는 감독으로서 <바람의 언덕>을 가장 사랑해주실 수 있는 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함께 만나는 이 길이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니다."

박석영 감독이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라는 특별한, 국내 최초라 불러도 무방할 배급 방식을 선택한 의도다. 어쩌면 정성일 평론가가 마련한 크리스마스 선물 역시
<바람의 언덕>이 마련한 특별한 상영 방식의 의도에 부합하는 자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의 언덕>은 5월로 계획 중인 와이드 릴리즈 개봉 전, 전국 각 영화 커뮤니티와 독립예술영화 극장에서 먼저 상영하는 로드쇼의 형태로 선보일 예정이다.

시작은 "왜 행복한 만남을 계속 이어 나가면 안 되는가"라는 박 감독의 자문이었다. 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바람의 언덕>을 찾은 관객들을 만난 박 감독은 "어릴 적 버린 딸을 결국 찾아가게 되는 어머니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알아보지 못하는 딸의, 어쩌면 아침드라마의 통속 구도 안에 있는 이 이야기를 이상할 정도로 관객 분들 자신의 인생과 연결하여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미 세 편의 영화로 관객들을 만난 박 감독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방식"이었고 "반응"이었다. 박 감독은 그 경험을 "도리어 말하기보다 듣기 위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은 깊고, 행복한 경험"이었다고 설명한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그런 일은 또 있었다고 한다.

"부산의 모퉁이 극장이라는 공동체에서 프로그래밍했던 부산국제영화제의 리퀘스트 시네마(그 전해에는 커뮤니티 시네마였던) 행사에서 <재꽃>을 상영하였고, 그날 김영훈(<재꽃>을 함께 보고싶다고 리퀘스트하셨던) 관객님께서 처음 해보는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시는 시간에 참여했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관객 분들의 마음이 끊이지 않게 이어져나갔습니다. 그리 그 시간은 저에게도 배우 분들에게도 깊은 위로를 받고, 또 용기를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이러한 행복을 더 이어가고 싶은 그 마음이 결국 전국 커뮤니티 시네마와 독립영화전용관을 중심으로 관객들을 직접 만나고 소통하는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라는 형식을 고민하고 실현하게 만든 셈이다.

24일 인디스페이스 상영을 시작으로, <바람의 언덕>은 향후 스케줄이 확정된 상영회 10회와 이후 아직 시간, 장소가 정확히 정해지지 않은 상영회를 통해 전국의 관객들을 '유랑극단'처럼 만날 계획이다. 박 감독이 영화의 제작자이자 배급을 동시에 진행하기에 가능한 일이자, 전작들의 개봉 방식을 넘어 독립영화의 좀 더 생산적이고 활력있는 개봉 방식을 고민한 결과이라 할 수 있다.

우선 <바람의 언덕>은 오는 12월 26일 진주시민미디어센터에서의 상영 이후 해를 넘긴 2020년 1월 3일 부산 모퉁이극장, 4일 창원 시네아트리좀 11일 파주 헤이리시네마, 18일 대구 오오극장, 2월 1일 강릉 신영극장, 8일 제주 포크뮤지션제주, 15일 청주 씨네오딧세이 등에서 상영이 확정됐다. 이후 더 많은 전국의 관객들, 영화 커뮤니티 구성원들을 만나기 위해 동분서주 할 계획이기도 하다.

"왜 관객들과 행복한 만남을 계속 이어 나가면 안 되는가"라는 박석영 감독의 순수하고도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 정성일 평론가의 성탄 선물. 2020년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라는 독립영화로서도 남다르고도 특별한 행보를 계획 중인 <바람의 언덕>의 미래에 이 선물이 근사한 시작이 되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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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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