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만 만지러 온 호날두 2019년 7월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팀 K리그와 유벤투스 FC의 친선경기. 유벤투스 호날두가 경기 시작전 벤치에 앉아 머리를 만지고 있다.

▲ 머리만 만지러 온 호날두 2019년 7월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팀 K리그와 유벤투스 FC의 친선경기. 유벤투스의 호날두. ⓒ 연합뉴스

 
지난 7월 한국축구계는 '호날두 노쇼' 사건으로 한바탕 큰 홍역을 치른바 있다.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예정된 한국 K리그 올스타와 이탈리아 명문 유벤투스간의 친선경기에서 당초 경기 출전을 기대했던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단 1분도 그라운드를 밟지 않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주최측은 호날두가 최소 45분 이상 경기에 출전하기로 계약되어있다고 밝혔지만, 호날두는 이렇다할 해명도 없이 끝까지 벤치를 지켰다. 호날두는 사인회 역시 불참하는가하면 입국 당시부터 출국까지 어떤 팬서비스에도 참여하지 않으며 시종일관 무성의하고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 공교롭게도 한국에 오기 직전 중국 투어에서 보여준 모습과도 극명하게 대비됐다. 호날두를 보기 위해 적지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현창을 찾은 팬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출했다.

정작 호날두는 사건이 벌어진 다음날 SNS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즐거운 표정으로 본인의 집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업로드하며 한국팬들의 항의는 끝까지 무시했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던 호날두였지만 이 사건으로 졸지에 '날강두'라는 별명을 얻으며 한국 팬들에게는 사실상 금지어가 됐다.

노쇼 사건의 시작은 호날두 개인의 프로의식 부재에서 비롯되었지만 정작 국내 팬들을 더욱 자극한 것은, 바로 소속팀 유벤투스의 무책임한 '사후 대응'이었다. 물론 잔루이지 부폰 등 다수의 유벤투스 선수들은 호날두와 달리 친선경기와 팬서비스에 나름 충실하게 임했다. 하지만 정작 구단은 이탈리아와 유럽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명문구단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호날두라는 일개 선수의 돌출행동을 전혀 제어하지 못하고 방관했다.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은 국내 언론의 질의에 "호날두가 그렇게 보고싶으면 내가 (이탈리아로 오는) 비행기 티켓값을 주겠다"는 망언으로 성난 팬심을 더욱 자극하기도 했다.

심지어 유벤투스 구단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공식 항의에도 불구하고 사과는커녕 모든 책임을 한국 측에 돌렸다. 일방적인 일정 변경과 이동시 경찰 에스코트 등 상식에 맞지않는 무리한 조건을 요구하고도 K리그가 받아들이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주장이었다. 정작 호날두의 출전계약 등의 조항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유벤투스의 무책임한 적반하장식 대응으로 그나마 국내에 남아있던 세리에A 팬덤도 완전히 등을 돌렸다. 유벤투스는 잘못된 이벤트 한번으로 잠재적인 팬들이 될수 있었던 한국 시장을 완전히 적으로 돌리게 된 셈이다.

최근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리버풀이 '전범기 사건'으로 도마에 올랐다. 리버풀은 지난 20일 플라멩구와의 클럽월드컵 결승전을 앞두고 구단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동영상에서 섬네일 바탕에 욱일기 문양이 등장하여 물의를 빚었다. 당시 동영상은 리버풀은 플라멩구와 38년전 일본에서 열리 도요타컵(클럽월드컵의 전신)에서 대결했던 것을 회고하는 내용이었다.마침 같은 날 리버풀은 일본 출신의 미드필더 미나미노 타구미 영입을 발표했는데 공교롭게도 홈페이지에는 미나미노 영입 소식 옆에 욱일기가 포함된 다큐멘터리가 개재되며 고의성 의혹에 휩싸였다.

욱일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나치 독일의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전범기로 분류된다. 한국 팬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리버풀 구단 측은 결국 해당 섬네일을 삭제하고 공식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렸지만 오히려 논란은 더 악화됐다.

리버풀의 사과문은 오직 한국 IP에서만 확인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리버풀이 '전범기 논란'을 축소-은폐하려든다는 의혹만 더 키웠다. 심지어 사과문의 내용도 진정성있는 사과라기보다는 '불쾌함을 느낀 누군가'(who may have been offended by the image)에 한정된 형식적인 뉘앙스가 더 강하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는 할께' 정도의 느낌에 가깝다.

리버풀이 욱일기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7월 나비 케이타를 영입할 때도 욱일기를 게재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케이타는 팔에 욱일기 문신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한국 축구 팬들로부터 지적을 받자 사과의 뜻을 밝히며 문신위에 다른 문신을 덮는 것으로 여론을 수습했다. 당시엔 선수 개인의 우발적 실수로 치부될 수 있었지만, 이번엔 구단 차원의 문제로 번졌다. 심지어 이미 욱일기 문제로 한번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음에도 아무런 학습효과가 없다는 것은 리버풀 구단이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이 부재하거나 한국팬들에 대한 존중심이 전혀 없다는 의미로밖에 해석될수 없다.

욱일기 파문은 리버풀만의 문제는 아니다. 바이에른 뮌헨(독일)이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 PSV 아인트호벤(네덜란드) 등도 구단 SNS 게시물이나 경기중 응원도구로 욱일기 문양이 등장하며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당시 관련 구단들은 한국 팬들의 항의를 수용하며 욱일기 문양이 들어간 게시물과 도구들을 전면퇴출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고, 한국어로 사과문을 올린 클럽도 있었다. 피드백의 바람직한 사례다.

유벤투스와 리버풀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명문이자 한국에도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인기 구단이다. 유벤투스는 2010년대 세리에A 8연패를 달성하며 그야말로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으며, 리버풀은 2019년 유럽챔피언스리그-슈퍼컵-클럽월드컵을 제패하고 올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선두를 독주하며 전성기를 구가중이다. 하지만 팬들의 인기를 먹고사는 프로의 세계에서 축구를 잘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들이 누리고 있는 인기와 명성에 비하여 스스로의 잘못과 외부의 비판을 겸허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는 낙제점에 가깝다.

오늘날의 축구는 세계에서 가장 글로벌한 스포츠다.클럽들도 국적, 대륙, 인종을 떠나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프로의식과 사회적 책임감이 필요하다. 명문구단이라고 해도 그래봐야 일개 축구클럽에 불과한 유벤투스나 리버풀이 이토록 불손하게 행동할수 있는 것은, 결국 한국 팬들 정도는 무시해도 상관없다는 오만함에서 비롯된다. 특히 같은 아시아인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도 유독 한국 팬들의 정서를 자극하거나 박탈감을 느낄만한 사건이 자꾸 벌어진다는 것은 우연이라고만 할수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격언처럼,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해프닝처럼 적당히 묻혀진다면 결국 나중에 같은 잘못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사과와 재발방지를 보장받기 전까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상대가 잘못을 인식할수 있도록 우리만의 목소리를 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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