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

동백꽃 필 무렵 ⓒ KBS2

 
KBS 2TV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아래 <동백꽃>)은 올해 한국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었다. 지상파 드라마가 과거의 영광을 잃은지 오래 됐다고들 하지만, 2019년 최고의 화제작은 단연 <동백꽃>이었다. 23.8% 시청률을 기록했고(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종영한 지 한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주요 포털사이트 국내 드라마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지난 18일에는 제237회 이달의 PD상 TV 드라마 부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심사위원회는 이 드라마가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제공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무엇이 <동백꽃>이라는 콘텐츠의 가치였을까. 시대의 변화를 성실하게 반영한 이야기가 있었고, 좋은 배우들의 연기가 여기에 숨을 불어넣었다. 연쇄 살인범 '까불이'를 추적하는 서브 플롯 역시 산만하지 않게 본 이야기와 연결되었다.

팔자가 별 거야?

"팔자가 아무리 진상을 떨어봐라. 내가 주저앉나." - 동백.

<동백꽃 필 무렵>의 임상춘 작가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거리를 두고자 한다. 작가의 세련된 태도는 드라마의 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동백(공효진)은 어린 시절에는 고아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 드라마 속 배경인 옹산에서 동백은 술집을 운영하는 미혼모라는 이유로 수 년을 시달렸다. 그녀의 삶에서 언제나 '팔자'라는 이름의 차별은 작동했다. 그러나 동백은 사람을 편견으로 대하지 않고 끌어안을 줄 안다. 유흥업소 '물망초'에서 태어난 성매매 여성 향미(손담비)를 우리 식구라고 감싸는 유일한 사람 역시 동백이다.

용식(강하늘)의 어머니인 백두 게장 곽덕순 여사(고두심)는 세상의 편견을 가만히 듣고 있지 않는 위인이다. 그녀는 자신이 지역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신망을 이용해 동백을 지킨다. 젊은 시절 남편을 잃었을 때, 무당이 남편에 빙의되었다며 '서방 잡아먹을 팔자'를 운운하자, '내 남편은 전라도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며 무당을 붙잡는 모습은 상징적이다.

"나는 걸을 때 땅만 보고 걷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나를 자꾸 고개 들게 하니까, 이 사람이랑 있으면 내가 막 뭐라도 된 거 같고. 자꾸 또 잘났다, 훌륭하다 지겹게 이야기를 하니까. 내가 꼭 그런 사람이 된 거 같으니까." - 동백

여자 주인공 동백은 타인을 따뜻하게 안을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녀를 안아주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나타난 이가 남자 주인공 황용식이다. 씩씩하게 살아가는 동백의 모습을 보고 용식은 대책 없는 사랑에 빠진다. (너 너 또 눈깔을 왜 그렇게 떠?) 용식은 동백에게 끊임없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인물이다. 성장의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백마 탄 왕자님'도, '도깨비'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동백을 사랑한 '사람'일 뿐이다. 다른 드라마와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는 점은, 그가 그녀를 구하려고 하는 여러 순간에 동백은 스스로를 구해냈다는 것.

"내가 너 위해서 딱 하나, 뭐든 딱 하나는 해주고 갈게." - 정숙.

모성과 가족은 오래되고 보편적인 소재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결코 모성을 초월적인 것으로 단순화시키지 않았다. 여러 인물을 통해 모성의 다양한 단면을 표현하고자 했다. 특히, 동백 엄마 정숙(이정은)의 모성은 노골적으로 시청자를 울린다. 그러나 그녀의 모성은 완전무결한 것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죄를 짓고, 후회한다. 가부장제와 빈곤의 희생자였으나, 7살의 어린 동백을 버린 그녀에게 손가락질하는 것은 당연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시청자로 하여금 더 많은 공감과 이야깃거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 역시 현실적인 아픔과 인간적 한계를 간과하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

사랑하고 싶은 이야기

임상춘 작가의 전작 <쌈 마이 웨이>가 그랬듯, 다양한 캐릭터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겁다. 그것도 입체적이며 사랑스러운 캐릭터의 향연이다. '10대를 눈앞에 둔'(?) 여덟 살 필구(김강훈)는 아역이 아니라 엄연한 주역으로서 활약한다. 찌질한 노규태(오정세)와 냉철한 법조인 홍자영(염혜란)의 부부 관계 역시 흥미롭다. '옹산 어벤저스'로 대변되는, 작고 평범한 여성들의 연대는 유쾌하다. 이 드라마가 종영된 이후, 많은 시청자들이 '향미야 코펜하겐에서 행복해'라는 댓글을 달았다. 최향미처럼, 누군가에게 하잘것없다고 규정되는, 목소리가 주어지지 않은 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 역시 이 드라마의 미덕일 것이다.

동백이와 용식이는 세상이 뭐라 떠들든 자기들의 '쪼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있어 사랑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허구의 이야기라지만 두 사람을 보면서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제목이 '기적 같은 소리'였다. '팔자'의 아이콘이었던 동백은 기적 같은 소리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기적을 만들어낸 것은 사람이었다. < 동백꽃 필 무렵 >은 사람의 연대를, 그리고 사랑을 믿고 싶어지도록 하는 작품이다. 이 따뜻한 서사가 마음 한 구석을 따뜻하게 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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