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영화 <백두산>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백두산> 스틸컷

영화 <백두산>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 덱스터스튜디오


백두산 폭발을 소재로 한 영화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두산은 휴화산이기 때문에 에너지가 쌓이고 적절한 물리적 조건이 갖춰지면 분화하게 된다. 분화는 피할 수 없고, 언제이고 어떤 규모이냐가 문제이다. 한국의 백두산이나 미국의 옐로우스톤이나 사정이 매한가지이며, 두 곳은 '○○○년 이내 폭발확률 ○○%'란 제목으로 간헐적으로 보도의 대상이 되곤 했다. 누군가 이걸 소설이나 영화로 만들어보겠다고 생각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
 
이해준-김병서 감독이 영화 <백두산>을 내놓았다. 극화하는 많은 방법 가운데 이들은 비교적 정공법을 택했다. 북한뿐 아니라 한반도 전역을 파멸적 재앙으로 몰아넣을 백두산 폭발을 상정하고 남한과 북한의 영웅적 인물들이 합심하여 최악의 폭발을 막아내는 스토리다.

일단 백두산이 분화하는 장면에서 영화가 시작하기에 CG는 필수다. 분화 외에 폭발에 따른 연쇄적 재난인 지진·범람 등의 표현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기에 영화의 성패의 첫 관문은 CG의 완성도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CG에 불만을 느끼지는 못했다. 극의 전개과정에서 약간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든, 다른 말로 조금 과하다는 대목이 없지는 않았지만, 워낙 드라마틱한 CG에 익숙해져서인지 넘어갈 수 있었다.

다음 단계는 줄거리. 그것도 약간의 비약이 있지만 넘어갈 수 있었다. 백두산 밑 10·20·28·32km 지점에 4개의 마그마방(房)이 존재한다는 기존 탐사결과를 바탕으로 가장 아래에 있는 마그마방의 폭발력이 가장 크다고 설정하고 그 마그마방이 폭발하기 전에 마그마방의 옆구리에 구멍을 만들어 마그마방에 농축된 마그마를 (분화구가 아니라) 지하로 유출시킴으로써 괴멸적인 최후의 폭발을 막아낸다는 줄거리. 상식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인다. 다만 지하의 마그마방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서 마그마를 지하로 흘려보낸다는 해법이 실제 실현가능한 것인지는 전문가들이 따져볼 문제이지 싶다. 영화가 과학다큐가 아닌 한 그런 설정이 무리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이러한 줄거리에서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가장 아래에 위치한 마그마방 옆구리에 구멍을 내는 것이고 실제 이 작업의 마무리와 함께 영화가 끝난다. 그렇다면 어느 지점에서 어느 정도의 위력으로 마그마방에 구멍을 뚫을 것인가가 극화의 얼개가 된다.

시나리오는 상당히 큰 위력이 필요한 것으로 작성되었다. 한반도에 현존하는 폭발물 가운데 가장 폭발력이 큰 것은 핵폭탄이다. 핵폭탄을 써야만 마그마방의 옆구리에 구멍을 낼 수 있는 것으로 극화의 방향을 정하면서 영화의 줄거리는 자동기술 단계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 존재하는 핵무기는 미군 아니면 북한군 소유다. 백두산의 괴멸적 최종 폭발을 막는 데 쓰라고 미군이 한국 정부에게 핵폭탄을 내어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전무하다.

후자를 선택한, 영화 <백두산> 제작진
 
 영화 <백두산> 관련 사진

영화 <백두산> 관련 사진 ⓒ CJ ENM


백두산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에 위치해 있어서 미군의 핵무기가 중국의 턱 밑에서 터지는 상황은 국제정치의 관점에서 상상하기 어렵다. 게다가 만일 한반도가 초토화한다면 한국의 산업이 일시에 붕괴하기에 만성적 과잉공급 상태인 세계경제로서는 호재이며, 미국과 일본으로선 국익에 보탬이 된다고 판단을 내릴 확률이 높다.

핵폭탄의 출처는 북한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협조를 받든지 아니면 탈취하든지 두 가지 상황 중에서 영화 <백두산> 제작진은 후자를 선택했다. 핵무기 탈취 및 탈취한 핵무기로 마그마방 옆구리 구멍내기는 남한군 주도로 비밀작전으로 수행된다. 국군 특전사 EOD(explosive ordnance disposal, 폭발물 처리) 소속 조인창 대위(하정우)와 이중첩자인 북한 인민무력부 소속 리준평(이병헌)이 갈등하고 협력하면서 작전을 이끈다.

아마도 관객들에게 낯설어 할 장면은 남한군이 작전 수행 과정에서 미군과 교전하는 것이 아닐까. 한반도 구하기 작전의 최대 방해세력은 미군으로 그려지고, 실제 여러 차례 교전이 벌어진다. 태극기부대에서 난리를 칠 장면이 아닐까.

영화에서 미국의 방해책동은 무장한 미군이 한국군 합참본부로 추정되는 작전지휘소를 무력으로 점령하는 것에서 정점에 이른다. 현재 전시작전권이 미군에 귀속되어 있기에, 남한군이 북한 영토에 진입한 상황을 전시로 판단하여 미국이 남한의 작전권을 회수한다는 논리가 영화에 적용되었다.

영화에서 미국은 한반도의 비상상황에서 가장 큰 적대세력이고 중국 또한 적대세력으로 잠시 등장하며, 우호세력은 리준평으로 대표되는 북한이다. 한반도를 구하기 위해 영웅적인 희생을 결행하는 이는 북한군 리준평이며, 리준평의 딸을 자기 딸처럼 키우는 이는 남한군 조인창이다. 위기를 넘어선 뒤 복구작업 또한 남북한의 협력과 공조 속에 진행되는 것으로 극화하였다.
 
 <백두산> 스틸컷

<백두산>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 덱스터스튜디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입장과 미국의 이익을 냉정하고 정확하게 판단했다는 측면에서 이 영화 제작진의 국제정치 감각이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한반도와 한민족, 가족이란 키워드를 중심으로 주인공들의 주된 행동동기를 설명한 데는 다소 '국뽕'적인 요소가 엿보인다.

국제정치에 관한 냉철한 인식이 약간의 '국뽕'적인 취향과 어울리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자칫 '상업적 반미'라는 오해의 소지를 남길 수도 있지 싶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속과 같은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다면 미국이 실제로 영화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타의에 의해 원하지 않은 상황에 던져진 남북한 군인들의 행동 또한 충분한 개연성을 갖는다.

이제 약간의 웃음코드와 신파가 적절한 수준이었느냐 하는 판단이 남는다. 아주 빠르게 전개되지는 않지만 느리게 가는 영화도 아니다. 영화 <백두산>이 전형적인 오락영화라고 할 때 '양념'이 적절했는지는 비평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관객의 영역이지 싶다. 즉 상업적 고려는 시장의 판단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상영시간 128분.
19일 개봉.
덧붙이는 글 안치용 기자는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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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평론하고, 래디컬 정치를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청소년/대학생들과 자주 접촉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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