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태원' 포스터

영화 '이태원' 포스터 ⓒ KT&G 상상마당

 
DMZ국제다큐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에 초청 및 상영되었던 다큐멘터리 영화 <이태원>(감독 강유가람)이 지난 5일 개봉했다. 첫 상영 후 3년만의 개봉이다. 이태원에 오랜 시간 거주한 여성 세 명의 목소리를 담은 이 작품은 이들의 경험을 통해 이태원이란 공간의 변화를 보여준다. 지금은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로 여겨지는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그동안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걸까.
 
지난 8일, 종로3가에 위치한 인디스페이스에서는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느 날처럼 독립 영화 상영이 한창이었다. 이곳 1층 카페에서 <이태원>을 만든 강유가람 감독을 만났다. 

그동안 주로 다큐 작업을 한 강유 감독은 자신의 가족이야기를 담은 <모래>(2014), 국정농단 사태 때 활동했던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담은 <시국 페미>(2017), 젊었을 때 열심히 페미니스트 운동을 하셨던 분들의 현재를 담은 <우리는 매일매일>(2019)을 발표했다. 
 
'이태원'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강유가람 감독의 모습.  인디스페이스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 강유가람 감독의 모습. 인디스페이스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 이예나


1997년 이태원에서는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대학시절 이 사건을 접한 감독에게 이태원은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곳', '무서운 곳'이란 이미지로 남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젊은이들 사이에 이태원은 핫플레이스가 돼 있었다. '경리단길', '수제맥주' 등의 키워드들과 함께 말이다. 
 
이태원에는 '후커힐(기지촌, 미군을 상대하는 유흥업소가 밀집한 언덕)'이란 곳이 있다. 강유가람 감독에게 용산에서 후커힐까지 쭉 걸어가는 여정의 프로그램은 굉장히 인상깊은 경험이었다. 큰 미군기지가 있다는 것도, 그리고 후커힐이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것도 놀라웠다고 한다. 

그러던 중 감독은 지인의 소개로 <이태원> 등장인물인 나키를 만나게 됐다. 이 분의 이야기를 들은 감독은 그의 이야기와 공간의 변화를 함께 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군 대상 유흥 산업에 종사했고, 아직도 이 곳에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은 어떠할까', '그들에게 이태원의 변화는 어떤 의미일까', 이런 물음에서 탄생한 작품이 <이태원>이다. 

<이태원>에는 카리스마가 있지만 남동생과 얽힌 과거와 삶의 애환을 갖고 있는 '삼숙', 강인하고 삶의 대한 태도가 단단한 '나키', 잔정이 많고 잘 챙겨주지만 만나면 굉장히 쿨하고 털털한 '영화', 이 세 여성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세 인물들은 모두 이태원에서 오랜 시간 거주하였고 각기 다른 특징을 갖고 있지만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인 인물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에 대한 낙인이 너무 세다 보니 여성이 잃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그런지 인물들이 평면적이지 않았어요.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강인한 태도로 삶을 살면서도 애환도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
 
<이태원>은 강유가람 감독에게 첫 번째 장편인데,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앞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지, 어떤 방향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은지 고민을 많이 해 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강유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하면서 느끼는 건, 기록되지 않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너무 많다는 거예요. 계속 그런 소리를 담아내는 것은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남지 않는 목소리들을 잘 기록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 작업을 하면서 여성들의 삶을 어떤 시각으로 전달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태원> 이후에 만든 <시국 페미>나 <우리는 매일매일>에 이 고민들을 담아냈다. <시국 페미>는 2016년 촛불정국에서 페미니스트의 목소리가 남지 않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고, <우리는 매일매일>은 1990년대 학생운동에 대한 다큐멘터리 자료들은 많지만 페미니스트 활동에 대한 다큐가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된 뒤 만든 된 작품이다. 기록되지 않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는 것이 그의 목표이기도 하다. 
  
"사실 여성 창작자,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많거든요. 다큐멘터리 감독을 성비로 봤을 땐 거의 (여성)반(남성)반인 것 같아요. 근데 개봉까지 가기가 너무 어렵고, 여성 감독이 만든 작품은 작은 이슈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배급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상업영화계에서 남성 감독들은 한 번 실패를 하더라도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는데 여성 감독들은 실패를 할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실패하더라도 여성분들에게 기회가 더 주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여성 중심 영화를 위한 단관, 영혼 보내기 
 
 영화 이태원을 예매하기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

영화 이태원을 예매하기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 ⓒ 이예나


제작 지원, 투자 등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 창작자들을 위해 여성 중심 영화를 단관 해서 관람하거나 영혼 보내기(특정 영화를 지지하기 위해 영화를 직접 보지 않더라도 표를 예매하는 것) 운동 등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영혼 보내기 운동은 다른 관람객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비교적 관람객이 적은 아침 영화를 예매하거나 예매 한 표를 관람 할 수 있는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등의 형태로 이뤄진다. 이런 운동이 여성 창작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배급하는데도 돈이 많이 들다 보니 영화가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빨리 개봉을 하지 못하고, 표류하면서 관객을 못 만나는 거죠. 영혼보내기 등 관객들이 그런 활동으로 지지해 주고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젊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요즘 슬픈 소식들이 좀 많았잖아요. 삶을 어떻게 살아야 될지 잘 모르겠고요. 저도 한국 사회를 살아 가는 사람으로써 정말 암담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는데요. (영화 속) 이 여성분들의 삶이 거칠고 고난이 많긴 했지만, 자기 삶에 대한 태도나, 후회는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걸 보고 저도 많이 배웠어요. 이런 부분이 젊은 여성 분들에게도 와 닿는 부분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심히 살아가다가도 한 번씩 난관에 부딪힐 때가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감독의 말처럼 이미 우리보다 많이 살아 온, 어쩌면 더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어낸 여성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답을 찾아 줄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젊었을 때 열심히 페미니스트 운동을 하던 그들이 40대가 된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담은 감독의 <우리는 매일매일>이라는 영화를 추천한다.
강유가람 감독 이태원 우리는 매일매일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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