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해 귤이 맛있다. 올해는 좀 다른 비료를 줘서 귤맛이 좀 좋은 것 같다."

가수이자 농사꾼, 제주도민인 루시드폴의 인터뷰 현장에는 테이블마다 귤이 흩뿌려져 있었다. 자신이 수확한 귤을 기자들에게 권하며 '맛있다' 단언하는 모습에서 농부의 참마음이 느껴졌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안테나뮤직에서 열린 루시드폴의 정규 9집 <너와 나> 발매 기념 라운드 인터뷰를 전한다.

농사하다 심하게 다친 손... 기타를 놓게 되다  
 
 정규 9집을 발표한 루시드 폴

정규 9집을 발표한 루시드 폴 ⓒ 안테나

 
루시드폴의 이번 새 앨범은 지금까지 그가 발표한 음반들과 완연히 다른 색깔을 띤다. '루시드폴=어쿠스틱'이란 공식을 과감하게 깬 것. 전자음부터 소리의 합성까지 그야말로 '실험적' 음악을 시도했다. 더 놀라운 건 자신의 반려견 '보현'과 동등한 위치에서 컬래버레이션했다는 점이다. 어떤 연유에서였을까? 그 사연이 특별했다.
 
"저는 긴 시간동안 기타 없는 저의 음악을 상상하지 않고 살아왔다. 어떻게 하면 가장 어쿠스틱한 노래를 만들까를 고민해왔는데, 작년에 농사를 하다가 손을 심하게 다쳐 전혀 못 쓰게 되면서 기타도 못 치고 공연도 다 취소했다. 음악적으로 거세 당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컴퓨터가 많이 해주는, 손을 안 쓰는 음악들을 듣게 됐고, 하게 됐다. 인간이 만든 소리 이외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됐다. 그러면서 반려견과 같이 앨범을 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진지하게 소리들을 녹음했다."

루시드폴은 "기타를 업으로 삼는 사람에겐 치명적인 일이었지만, 음악적으로 해방되는 계기였다"고 정의했다. 듣는 사람들이 '이거 루시드폴 음악 같아'라고 말하는 것이 사실 고착화된다는 의미기도 해서 고민이었단 그는 "'이게 소리야, 음악이야?' 하고 경계가 흐릿한 음악을 들으면서 루시드폴식 '엠비언트(ambient·심신의 완화를 이루는 기능적인 명상음악)'를 한번 시도해볼까?란 생각에까지 미쳤다"고 말했다.

참, 루시드폴의 손은 이제 괜찮은 걸까. 이 질문에 그는 "1년 넘게 기타를 안 치다가 다시 기타를 잡았을 때 예전같지 않을까봐 무척 떨렸다"며 "그런데 예전과 똑같더라. 근육이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줘서 내 몸인데도 감사했다. 지금은 연주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대답했다. 

반려견 '보현'과의 협업은 어떻게 가능했나
 
 정규 9집을 발표한 루시드 폴

정규 9집을 발표한 루시드 폴 ⓒ 안테나


처음에 루시드폴이 자신의 반려견 보현과 함께 '대등한 위치에서' 음반작업을 했다고 설명할 때 무슨 소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이에 대해 그는 "강아지 소리를 녹음해서 소리를 변주시키고 합성도 하고, 북소리처럼 만들기도 하고, 드럼소리처럼도 만들기도 하고. 보현이 짖는 소리뿐 아니라 문 열어달라고 탁탁탁탁 두드리는 소리라든지, 밥그릇을 긁는 소리 등을 녹음했다"며 "보현과 언젠가는 헤어지겠지만, 보현의 소리를 담아서 '소리의 DNA'를 가지고 뭔가 또다른 음악을 만들어놓았을 때 이 노래 안에서 얘가 영원히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보현의 신상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사람 나이로 치면 현재 만 10살의 개로, 집 주변에 낯선 사람이 오면 매섭게 짖는데 이는 3년 전 동네 백구한테 심하게 물려서 목숨을 잃을 뻔했고 대수술을 한 경험 때문이다. 보현은 지금도 다른 개들에게 마음을 닫고 산다.
 
"앨범에 보현이 작곡한 곡이 있다. 가요 역사상 최초로 강아지가 쓴 곡이 아닐까 싶다. 보현이 콜라비나 사과를 먹으면 사람의 구강구조로 낼 수 없는 소리가 난다. 굉장히 음악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녹음해서 들어보니 기분이 너무너무 상쾌해지더라. 쌱쌱쌱쌱-하는 그런 소리. 보현이 곡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채집해서 제가 컴퓨터로 변주를 해서 여러 강아지가 콜라비를 함께 먹으며 합주하는 것처럼 만들었다. 곡명은 '콜라비 콘체르토'다.

보현이 뮤비도 찍었고. 어떻게 보면 데뷔를 한 거다. 인간이 귀여워서 쓰담쓰담하는 반려견이 아니고, 대등한 파트너로서 음반을 만들었고 저작권도 보현에게 줄 거다. 제가 위탁관리를 해야하지만, 보현의 저작권으로 껌도 사게 하고, 보현의 이름으로 친구들(유기견들)에게 도움도 주고. 금전적으로 독립을 하게 되는 거다." 


타이틀곡은 '읽을 수 없는 책'이다. 반려견은 인간에게 한 권의 읽을 수 없는 책이라고 그는 표현한다. 루시드폴은 이 곡에 무한 애정을 드러내며 "참 희한하게, 저 자신한테 되게 위로가 되는 곡이어서 처음 데모를 만들고 제가 정말 많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렇다면 보현과의 협업을 통해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그는 "너무 많았다"며 무엇을 먼저 말해야할지 혼란스러워할 정도였다. 루시드폴은 "'어쿠스틱 악기=내추럴=따뜻함' 이런 게 공식처럼 있지만 정작 클래식 기타 줄은 인공적인 나일론이다. 아날로그가 훨씬 왜곡이 많다"며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게 차갑나? 필름카메라가 따뜻하나?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도구가 많아졌을 뿐이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자연에 없는 소리는 자연스럽지 못한 소리일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고 오래 묵은 생각들을 끄집어냈다. 

"디지털이냐 아날로그냐 이건 진짜 무의미한 구분이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날카롭고 귀를 자극하는, 좋지 않은 심상을 만들어내는 소리는 인간이 만든 소리더라. 1년 365일 저희 집 주변에선 나무 베고 건물 짓는 소리가 들린다. 자연엔 그런 자극적인 소리는 없다."

팔레트에 많은 물감 갖추고 싶어
 
 정규 9집을 발표한 루시드 폴

정규 9집을 발표한 루시드 폴 ⓒ 안테나

 
기타를 치며 노래해온 그는 이번 계기로 쓰는 악기, 가진 도구가 다양해졌는데 이것이 그의 음악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그는 "내가 만약 화가라면 팔레트 위의 물감을 찍어 그림을 그릴 거잖나. 물감이 한 가지만 있어도 수묵화처럼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내가 물감 100가지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를 선택해서 그리는 것과 하나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걸로만 그리는 건 다른 것 같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내 팔레트에 물감을 하나씩 늘려가고 있다. 나에게 자극을 계속 주면서! 조금만 다르게! 조금만 다르게! 애를 쓰는 거다."

마지막으로 '보현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와 '농사꾼으로서와 음악인으로서의 각각의 목표'를 물었다. 그는 이에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보현의 입장에서 계속 보고 싶었다. 나는 왜 보현을 사랑하지? 보현은 나를 사랑할까? 내가 다른 강아지를 만났어도 똑같이 사랑할까? 그럴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인상적인 이야기를 덧붙였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원형에 보현이 아주 가까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이를 안 가져봐서 하이레벨의 사랑을 모르겠지만, 그런 종류인 것 같다.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한 거구나. 인간이 해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사랑..."

보현을 통해 다 내어주는 무한사랑을 경험하고 있는 루시드폴은 끝으로 앞으로의 목표에 관해 답했다. "6년 정도 농사를 지었는데, 그냥 조금 더 알고 싶다. 나무, 귤나무에 대해. 땅을 좀 알고 싶고. 많이 수확하려는 목적은 전혀 없다. 요즘은 식물들에 음악을 들려주는 실험을 하고 있는데, 자신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명체기 때문에 이 신호를 받아서 음악화시키는 걸 하고 있다. 실제로 식물의 소리를 녹음하여 변주해 음악을 만들었다. 발매도 계획 중이다"라고 밝혔다.

순두부처럼 부드러워보이는 루시드폴이 얼마나 실험적이고 예리하고 탐구적인 사람인지 여실히 깨닫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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