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스페셜-심야의 초대장-당신은 악플러입니까

sbs스페셜-심야의 초대장-당신은 악플러입니까 ⓒ sbs

 
악플,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회적 문제다.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든, 두 명의 젊은 여성 연예인들의 죽음 앞에선 예외없이 '악플'의 책임이 대두됐다. 그들에게 쏟아부어진 악플은 무수하지만, 정작 그 죽음에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모습을 싹 감추었다. 악플은 마치 독버섯처럼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나가고 있다.

15일 방송된 < SBS 스페셜 > '심야의 초대장 - 당신은 악플러입니까'에서는 악플에 신음하는 이들을 조명함과 더불어 실제 악플러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재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가온과 그의 엄마에게 지난 몇 달은 지옥과도 같았다. 가온이는 시간만 나면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핸드폰 중독'인 걸까? 아니다. 가온이는 혹시나 자신에 대한 악플이 달리지 않았을까, 끊임없이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본다. 

두 사람의 지옥과도 같은 일상은 한 방송국에서 매주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작은 시골학교, 골든벨을 울릴 것이라고 예측된 3학년 선배를 제치고 1학년 가온이가 124대 골든벨의 주인공이 되었다. 당연히 축하받아야 할 일이었지만, 가온이의 방송 출연분이 캡처돼 인터넷 공간에서 돌아다니면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특정 사이트에서는 가온이의 외모를 평가했고, 누군가는 성희롱성 댓글을 달고, 사상 검증까지 이뤄졌다. 결국 가온이 모녀는 이에 대해 법적인 해결을 모색했는데 그 과정에서 수집된 악플만 550여개였다. 본인이 직접 증거를 수집해야 했던 터라, 그 과정에서 악플을 직접 읽을 수밖에 없었던 가온이와 엄마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이제 가온이는 자면서도 '악플'에 시달린다. 엄마는 차라리 그 방송에 출연시키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악플이 지워진다 해도 이미 자신의 머릿속에 남은 악플로 인해 괴로울 것이라 가온이는 말한다. 

벌금, 구속으로도 악플을 막을 수 없었다

그룹 베이비복스 시절부터 악플에 시달려 왔던 배우 심은진씨는 3년 전부터는 자신의 SNS로 찾아와 악플로 도배를 하는 한 사람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 무려 그 한 사람이 단 악플만 1000개라고 한다. 

거듭된 고소로 인해 악플러는 벌금형은 물론 구속까지 됐지만, 악플은 계속 이어졌다. 심지어 고소 과정에서 심은진씨와 만난 악플러는 마치 아는 언니에게 인사하듯 '언니, 안녕'하며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고 한다. 어렵게 만난 악플러의 어머니는 외려 구속시켜줘서 고맙다고 할 정도다. 

배우 원종환씨의 경우, 고소를 당해 벌금을 문 악플러가 자신이 무대에 오른 공연 앞자리에 당당하게 앉아 관람을 하더라는 황당한 경험담을 털어놨다. 차단을 하면 다시 계정을 만들어 악플을 다는 이들로 인해 당하는 연예인들의 고통은 쉬이 끝나지 않는다. 

한 아이돌 가수에게 지속적으로 악플을 다는 사람을 추적해 보니 40대의 고시생이었다. 그는 사법 고시를 준비하다 겪은 사회적 좌절을 여러 명의 연예인들에게 악플을 달며 화풀이 하듯 해소했다. 

이렇게 한 사람, 혹은 특정의 몇몇에게 '강박증'처럼 댓글을 다는 병적인 악플러들도 문제이지만, 자신이 댓글을 단 사실조차 기억을 못하는 다수의 악플러들도 존재했다. 방송은 인터넷 상에서 악플을 달던 이들을 찾아 연락을 했지만, 대부분 자신이 그런 댓글을 달았단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멀쩡한 목소리로, '제가 쓴 건가요?'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을 비롯해 '개그로 적은 건데, 별 의도가 없었어요', 라던가, '그 글이 문제가 되는 건가요?'라며 문제 의식조차 느끼지 못한 채 댓글을 다는 다수의 악플러가 현재의 '악플 사회'를 만든다.

악플러를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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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작진은 악플러에 대해 보다 잘 알기 위해 '악플러를 초대'했다. 하지만 제작진의 거듭된 청에도 불구하고 매번 악플러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드디어 세 번째 시도 끝에 어렵사리 마련된 '악플러의 밤'. 그동안 악플로 인해 고통을 받아왔던 김정민과 김장훈이 호스트가 되어 세 명의 악플러를 만났다.

자신들이 이상 심리를 가진 사람이나 악마 본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며, 그저 너무도 평화로운 세상이 무료하다고 생각될 때 배설하는 기분으로 악플을 단다는 최민지(가명), 자신의 악플에 수 백명이 추천을 할 때 희열을 느낀다는, 그래서 당연히 선플도 달아왔다는 레이용(가명), 연예인의 가식적인 모습을 못 견뎌 악플을 단다는 니즈(가명)까지, 다양한 '악플'의 이유가 등장했다. 

인간의 사냥 본능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부터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는 식이라든가 재미 때문이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악플을 설명하는 악플러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신들의 행동이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상 심리를 가지거나 강박증적으로 악플을 다는 몇몇 집요한 악플러도 문제지만, 바로 이렇게 그 누군가의 악플에 감정적으로 휩쓸려 자신들의 공격성을 토해놓는 80%의 악플러가 오늘의 악플 세상을 만든다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어렵사리 악플러를 초대한 이날 이 현장의 결말은 어땠을까? 김정민에게 악플을 달던 니즈는 "알고보니 김정민이 가식적인 연예인이 아니라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인 것을 알게되었다"며 화해의 포옹을 나누며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됐다. 

악플러와의 포옹으로 모든 게 마무리됐다고 볼 수 있을까? 이야기 과정에서도 나왔지만 겨우 세 명, 그것도 몇 번의 초대가 무산된 가운데 등장한 세 명의 악플러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악플'이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문제를 진단할 수 있을까?

악플러들조차도 코웃음치는 '선플 달기' 캠페인보다는, 대화 중간 중간 김장훈이 언급한 '시스템'의 문제야말로 사실은 프로그램이 간과한 결론 아니었을까? '인간'이라는 종을 놓고 어떤 철학자는 '성선설'을 또 다른 철학자는 '성악설'을 내놓은 건, 결국 인간이 본래 어떤 존재인 것이 아니라, 어떤 시스템과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다른 인간성을 발현할 수 있는 존재란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악플러의 밤'에서도 등장했지만, 마치 악플을 도발하는 듯한 기사들은 그 자체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조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것처럼 아예 '댓글'을 쓰지 않게 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현명한 선택이자 정답 아닐까. 그 답을 굳이 겉핥기 식으로 한 번 언급하고, 김정민과 악플러의 급 화해 모드로 마무리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한편에서 조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방기하는 현재의 시스템에선 악플의 종식은 요원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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