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동> 정해인 인터뷰 사진

영화 <시동> 정해인 인터뷰 사진 ⓒ FNC엔터테인먼트

 
"모르겠다. (연기를) 더 해봐야 알 것 같다. 일단 배우로 10년 정도는 채워봐야 하지 않을까. 이제 7년 차인데 서른 중반, 마흔 가까이 되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는 18일 개봉 예정인 영화 <시동>에는 "어울리는 일을 해야 한다"는 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정해인이 분한 상필 역시 "네게 어울리는 일을 하라"는 이야기를 듣는 인물. 하지만 "배우가 본인에게 어울리는 직업인가"라는 질문에 정해인은 "아직 모르겠다"는 답을 내놓았다. 영화 <시동>의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처럼, 서른 둘의 배우 정해인에게도 고민은 계속되고 있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소격동 모처에서 정해인을 만났다. 영화 <시동>은 학교도 싫고 집도 싫은 반항아 택일(박정민)이 집을 뛰쳐 나와 장풍반점의 배달부로 일하면서 세상을 깨우치는 과정을 그린다. 정해인은 택일의 친구 상필 역을 맡았다. 상필은 매일 힘들게 밤을 까는 할머니(고두심)를 위해 하루 빨리 돈을 벌고 싶어 사채업에 뛰어드는 인물이다. 

청소년 흉악범죄율이 날로 증가하고 있고 비행 청소년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와중에, 영화는 청소년 문제를 귀엽고 유쾌하게 그려내는 편이다. 극 중에서도 두 주인공은 심각한 청소년 범죄와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인다. 상필이 사채업소에 입사하긴 하지만 원했던 일은 아니었고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후회하기도 한다. 정해인은 "상필이 나쁜 아이는 아니다. 처한 환경이 녹록지 않다 보니 그런 것이지. 그저 의욕이 앞선, 철없는 아이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게 저와 감독님의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연기할 때 움직임이나 욕을 할 때도 능수능란해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뭔가 어설프기도 하고 부족한 느낌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감독님이 원하셨던 것도 그랬다. 마음껏 뛰어놀되 아이처럼 놀았으면 좋겠다. 박정민 형도 저도 30대 초중반인데 그런(30대 같은) 모습이 아니라 겁 없이, 패기 넘치게 재기발랄한 연기를 보여주려 했다."
 
 영화 <시동> 정해인 인터뷰 사진

영화 <시동> 정해인 인터뷰 사진 ⓒ FNC엔터테인먼트

 
30대의 나이로 미성년자 연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다. 상필로 변신하기 위해 "10대들의 말투, 행동을 고민하고 연구하고 내가 10대였을 때를 되돌아 봤다"는 정해인은 "10대를 연기하는 건 제 인생의 마지막인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정해인의 10대는 어땠냐는 물음에는 "평범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특출나게 잘하는 것 없고 무난했다. 어중간하다고 해야할까. 그런 학생이었다"며 "친구들이랑 노는 걸 좋아하지만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공부도 어중간하게 했던 것 같다. 대체로 내성적인 편에 가까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그는 할머니와 둘이 지내는 상필을 연기하며 할머니와 보냈던 어린 시절이 많이 떠올랐다고 털어놨다.

"제가 어릴 때 상필이처럼 할머니랑 시간을 많이 보냈다. 촬영장에서 연기할 때도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영화 속 할머니도 치매 때문에 저를 못 알아보시는데, 제 친할머니도 그랬다. 어느 날은 알아보시고, 어느 날은 못알아보시기도 하고. 촬영하다가 그 생각이 나서 울컥 (감정이) 올라오더라. 그러면 안 되니까 (눈물을) 참아야 했다. 그건 상필이가 아니라 정해인이지 않나."

영화에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을 해야 한다"는 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사채업자가 돼 이자를 받으러 다니는 상필에게도 마찬가지다. 택일은 "그게 너한테 어울리는 일이냐"고 상필을 다그치지만, 반대로 상필을 사채업소로 이끈 동네 형 동화(윤경호)는 "하다보면 어울리는 일이 되는 거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해인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그 장면을 꼽았다.

"택일과 통화하는 장면에서 상필이 '나랑 어울리는 게 뭔데, 자꾸 어울리는 걸 하라는 거야'라고 말한다. 그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히 어른들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키지 않나. 열심히 뭔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는데 내가 즐거운 일을 하고 싶은데 시키는 걸 하라고 한다. 넌 이게 어울려. 넌 이거 해야 해. 그런 걸 탈피하고 싶은 상필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사였다. 사회로 발돋움하기 전 단계의 관객이나 직장생활을 하고 계시거나 집, 학교 어느 곳에 계시는 분들도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시동> 정해인 인터뷰 사진

영화 <시동> 정해인 인터뷰 사진 ⓒ FNC엔터테인먼트

 
"내게 어울리는 게 뭔데"라는 대사는 정해인에게도 와닿을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그 역시 부모님이 원했던 길을 뿌리치고 상필처럼 일탈을 감행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고 한 번 치지 않은 어린 시절이었다. 부모님이 학교에 오시거나 그런 일도 없었다. 부모님 말씀도 잘 들었다"면서도 "딱 한 번 반항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고3 때 연기하겠다고 진로를 틀어버렸다. 아빠랑 언성을 높이며 '하고 싶은 일 하겠다고 믿어 달라'고 얘기하다가 방으로 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그런데 방문 소리가 너무 큰 거다. 방 안에 들어가서 혼자 떨고 있었다. 문을 잠그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다행히 부모님이 방까지는 안 들어오셨다. 그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당시 정해인은 부모님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연기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제 와서 보면 그 시절 모범생의 반항이 지금의 정해인을 만든 셈이다. 그가 어엿한 배우로 자리잡은 지금, 부모님도 달라지셨다. 배우 정해인을 응원하시는 것은 물론, 정해인의 기사까지 꼼꼼하게 챙겨보실 정도라고.

그는 "지금은 누구보다 응원해주시고 믿어주시는, 내게 가장 든든한 존재다. 아버지 어머니가 제 기사를 다 찾아보시더라. 저보다 더 많이 보시는 것 같다. 요즘 부쩍 휴대폰을 많이 보시기에 뒤에 슬쩍 가서 봤는데 다 내 기사였다. '악플' 같은 것 보실까봐 보지 말라고 그랬는데 '알았어 알았어' 하시더니 방에 또 누워서 계속 보시더라"며 웃었다.

지난 8월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개봉 당시 정해인은 "연기를 하면서 자존감이 낮아질 때가 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후 3개월여가 흐른 지금 정해인은 그 고민을 해결했을까. 그는 "노력하고 있고 발전하고 있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연기해야 하는 캐릭터는 계속 바뀌니까, 처음에 (그 역할을) 시작할 때는 늘 새롭고 두렵고 막막하기도 하다. 특히 촬영장에서 어색하고 불편한 건 연기하는 본인이 가장 잘 안다. 감독님도 스태프도 있지만 배우가 가장 잘 느끼고 (사람들에게) 못 감춘다. 창피해서 말을 안 할 뿐이다. 나도 그럴 때가 많다. 부끄럽지 않은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상대 배우, 현장의 많은 스태프, 감독님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지 않나. 그래서 그 분들이 계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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