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동> 포스터

영화 <시동> 포스터 ⓒ (주)NEW

 
꿈도 없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내게 어울리는 일이 무엇인지도 찾지 못한 청소년들이 여기 있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이지만, 사실 비슷한 고민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영화가 우리를 찾아온다.

<시동>은 학교도 싫고 집도 싫은 비행 청소년 택일(박정민 분)과 할머니를 위해 빨리 돈을 벌고 싶은 상필(정해인 분)이 세상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무작정 집을 나온 택일은 발 닿는 대로 떠난 군산에서 장풍반점 주방장 거석(마동석 분)을 만나고, 숙식을 제공하는 장풍반점에서 배달부로 일하게 된다. 상필은 치매 때문에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할머니가 매일 돈을 벌기 위해 밤을 까는 걸 안쓰럽게 여기다가, 결국 친한 동네형을 따라 사채업에 뛰어들게 된다.

영화 속 두 사람은 술을 마시고 담배도 피지만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비행 청소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택일은 "검정고시 준비해서 대학 가라"는 엄마에게 성질을 부리기 일쑤이지만, 알고 보면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 만큼은 극진하다.

또 택일은 군산에서 우연히 만난 또래 경주(최성은 분)에게 늘 시비를 걸면서도, 정작 경주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먼저 달려가서 구해주기도 하는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다. 최근 비행 청소년들의 범죄가 갈수록 흉악해져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이 영화가 그리는 불량 청소년은 어딘가 어설프고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 <시동> 스틸 컷

영화 <시동> 스틸 컷 ⓒ (주)NEW

 
이는 영화가 지난 2014년 연재된 동명의 웹툰을 각색한 작품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청소년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는 현실보다 만화에 더 닿아있다. 극 중에서 택일은 어설픈 반항을 하다가 배구선수 출신인 엄마에게 뺨을 맞아서 여러 번 쓰러지는데, 현실이라면 심각한 아동학대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이를 밝고 유쾌한 신으로 넘겨 버린다. 특히 하늘을 날아 뺨을 때린다거나, 뺨 한 대에 사람이 저 멀리 쳐박히고, 기절했다가도 금세 멀쩡하게 일어나는 등 만화 같은 연출도 분위기를 가볍게 만드는 데 한 몫한다. 

그나마 무게감 있게 그려지는 부분은 상필의 이야기다. 상필은 할머니를 책임지기 위해 사채 조직 '글로벌 파이낸셜'에 들어가는 철없는 소년이다. 그는 처음 이자를 받으러 갈 때는 쭈뼛쭈볏 겁을 먹은 모습이지만, 돈 뭉치를 쉽게 내놓는 채무자들을 몇 번 만나자 금세 우쭐해진다. 택일에게도 "내가 길을 닦아 줄 테니 너는 달리기만 하면 된다"며 합류를 제안할 정도.

그러나 채무자들이 원금보다 비싼 이자를 순순히 내놓는 이유는 '글로벌 파이낸셜'의 위협이 그만큼 무섭기 때문이었고 결국 상필 역시 누군가를 위협해서 돈을 받아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영화는 이마저도 심각한 사회문제를 건드린 것치고는 가볍게 넘어가는 편이다.

철없이 행동하던 아이들이 진짜 세상을 알게 되면서 성장하는 스토리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축이다. 그러나 영화는 택일과 함께 생활하는 거석의 사연에도 꽤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범상치 않은 '포스'의 장풍반점 주방장 거석은 택일을 놀리고 괴롭힐 때는 거침 없이 폭력을 사용하면서도 정작 아이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는 모른 척 한다. 영화는 후반부에 거석의 과거를 보여주면서 그 이유를 함께 설명하는데,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나 메시지와는 다소 동 떨어진 느낌을 준다. 택일이 거석을 만난 이후부터 성장한 것은 분명하지만 택일의 성장에 거석이 도움을 줬다고 보기도 어렵다. 거석의 이야기가 영화의 곁가지처럼 보이는 이유다.

여러 인물들의 방황과 성장을 모두 보여주려다 보니, 관객이 인물 하나하나에 몰입하기는 오히려 어려워진 모양새다. 택일이 군산에 도착하자마자 처음으로 만난 인물인 경주 역시 마찬가지다. 경주는 택일, 상필과 함께 방황하는 청소년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영화가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부분은 다소 아쉽다. 
 
 영화 <시동> 스틸 컷

영화 <시동> 스틸 컷 ⓒ (주)NEW

 
"너에게 어울리는 일을 해." 영화 안에서 반복되는 이 대사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세상이 말하는 틀에 갇히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전한다. 꼭 대학에 가지 않아도, 꼭 큰 돈을 벌지 못해도 혹은 잘못된 길로 가더라도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살다 보면 누구나 시동이 꺼지거나 엔진이 고장나는 일을 경험한다. 그러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 시동을 걸면 언제든 새로운 길로 갈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영화가 엇나가는 청춘들을 밉지 않게 그리는 이유도 그래서가 아닐까.

한 줄 평: 추운 겨울 방황하는 청년들을 향한 따뜻한 위로
별점: ★★★(3/5)

 
영화 <시동> 관련 정보

감독: 최정열
출연: 마동석, 박정민, 정해인, 염정아
제작: (주)외유내강
배급: (주)NEW
러닝타임: 102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19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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