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시사직격>의 한 장면

KBS <시사직격>의 한 장면 ⓒ KBS

 
[장면1] 일본 산케이신문 해설위원과 아사히신문 기자, 그리고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일본 특파원이 일본의 한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지난 10월 25일 방송된 KBS 1TV <시사 직격> '한일관계, 인식과 이해 2부작-2편 한일 특파원의 대화' 편에서였다. 방송 직후 산케이 해설위원의 "문재인씨" 호칭 논란 등 '편파 방송', '친일 방송' 논란이 일었다.

같은 달 28일 제작진은 입장문을 통해 "현재 한일관계로 인해 악화된 국민 정서와 감정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였음을 통감한다"며 "결과적으로 애초의 기획의도와 다르게 논란을 일으키고 시청자 여러분께 불쾌감을 드린 부분에 대해 뼈아프게 받아들이며 거듭 송구하다는 말씀 드린다"고 밝히며 사과했다.

[장면2]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여의도 한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지난달 22일 오후 11시 첫 방송된 KBS 1TV <정치합시다>를 통해서였다. 두 사람은 최은정 아나운서와 함께 정치 현안에 대해 토론을 한 후, 2부 성격에 해당하는 '후토크'를 포장마차에서 이어갔다.

이 장면은 본편 말미에 짧게 담겼고, 2일 유튜브 <정치합시다> 채널에 1시간 20분 여 짜리 풀 영상('민심포차')이 공개됐다. 이 영상은 12일 현재 유튜브 조회수 18만 회를, 본편 풀영상은 40만 회를 기록했다. 향후 21대 총선까지 10회 방송을 예고한 <정치합시다>의 첫 회 시청률 4.1%(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나타났다.

[장면3] 이번엔 정치인들이 술잔을 기울였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정의당 이정미, 바른미래당 권은희,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이 진행자인 임재성 변호사와 함께 소주잔을 부딪쳤다. 6일 방송된 <시사직격> '엔드게임 - 국회의 겨울' 편에서였다.

연이은 KBS의 술자리 토크
 
 KBS <정치합시다>의 한 장면.

KBS <정치합시다>의 한 장면. ⓒ KBS

 
시청자들은 안다. 방송 카메라 앞에서 출연자들이 부딪치는 '술잔'이 그저 제스처일 뿐이라걸. 그럼에도 KBS 시사 프로그램은 연이어 정치인이나 기자들을 술자리에 앉혔다. 왜 그럴까.

방송 초기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등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콘셉트였던 KBS <거리의 만찬>과는 분명 온도차가 있다. 그럼에도 술자리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더군다나 누가 봐도 대립각이 예상되는 출연자들끼리 술잔을 부딪치는 형식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그도 아니면 좀 더 부드러운 대화를 유도(한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어쩌면 쉬이 예상할 수 있는 그림이다. 놓치지 말아야할 것은, 그 대화가 어떤 주제인지, 그 주제를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다.

사실 저 세 장면의 성격에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다. 한일 특파원과의 대화는 그야말로 대립각이 예상되는 한일 특파원들을 술자리에 불러 모았다. 제작진은 그것이 '그림'이 되겠다고 판단하겠지만, 쉽지 않았다. 그들의 목소리가 기계적으로 나뉘지도 않았을뿐더러, 예상치 못한 네 사람의 주장을 제작진이 세련되게 걸러내지도 못했다.

유시민 이사장과 홍 전 대표의 술자리는 뒤풀이 성격이 강했다. 본격 토론 후에 이어진 사적인 이야기를 끌어내고자하는 뉘앙스가 분명했다. 이 뒤풀이는 본 방송에서 예고편 격으로 삽입됐다. 게다가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그림은 유튜브 '<홍카콜라>X<알릴레오>'나 MBC 특집 < 100분 토론 >에서 경험한 익숙한 풍경이기도 했다. 그림 자체도, 이들이 나눌 이야기도 예상 가능한, 참신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가장 의아했던 건 <시사직격> '엔드게임 - 국회의 겨울' 편의 술자리였다. 시기 자체도 그랬거니와 방송 자체도 여야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해 있던 상황을 다뤘다. 그런데도 굳이 제작진은 정치인들을 '술자리'에 불러 선거법 개정안과 사법 개혁안에 대한 각 당의 목소리를 내게 만들었다.

일견 효과적이었다. 각 당의 입장이 날카롭게 대립했지만 본격 토론 프로그램과 달리, 제작진이 적극적으로 편집에 개입할 수 있었다. 간간이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단식과 민식이법을 위시한 어린이 생명 안전법 처리 막전막후도 카메라에 담겼다.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설 화면도 보태졌다. 서초동과 광화문 집회 참가자의 상반된 목소리도 담겼다. 

방송 말미, 선거법 개정안과 검찰개혁안을 두고 '더불어한국당'이라거나 '더불어정의당'이란 야당 의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분명 흥미로웠다. 반면 사회자인 임재성 변호사가 국회 로텐더홀 계단을 올라가는 황 대표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는 장면은 씁쓸함만을 남겼다. 카메라를 등진 황 대표 대신 "예정된 인터뷰가 아니라 사양한다"는 보좌진의 목소리만 전파를 탔다. 이 장면을 접한 시청자들은 어떤 감정을 갖게 됐을까. 그리고 제작진은 시청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 
 
 KBS <시사직격>의 한 장면.

KBS <시사직격>의 한 장면. ⓒ KBS

 
의도적 균형과 안일함

결론은 익숙한 '여야 대립'에 그쳤다. '노답' 국회, 기득권 국회를 비판할 순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정치 혐오'로 귀결되는 것은 언론이 경계해야 할 결론이 아닐 수 없다. 공영방송의 이러한 중계가 시청자들에게, 국민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가. 그러한 국민들의 '정치 혐오'를 자양분 삼아 정치적 이익을 누리는 이들이 따로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그러한 결론의 도출 과정에 훨씬 더 섬세한 '정치'함이 요구된다. 하지만 <시사직격>의 결론은 그렇지 않았다. 실제 현실을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그저 대결과 대립 구도만을 중계하는 건, 대안이나 제대로 된 비판 없이 '왜 너희들은 싸우기만 하느냐'고 훈계하고 끝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사안을 또 여야 갈등으로 '예산 처리 시안도 넘겼고', '민생을 돌보지 않고'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 정치부 보도가 딱 지금 정확한 팩트를 가지고 왔잖아요. 50건은 한국당 의원들이 발의했다고 법안 숫자까지 세어 왔어요."

지난 5일 공개된 KBS 유튜브 채널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에 출연 중인 KBS <뉴스9> 주말 뉴스 앵커 정연욱 기자의 말이다. 같은 사안에 대해, 작금의 국회 상황, 여야 갈등으로 "싸잡아서" 비판하는 보도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KBS 기자들이 자사 보도와 이슈들을 옴브즈만하는 이 채널은 해당 '묻힌 뉴스 브리핑'의 소개를 이렇게 달았다. <시사 직격>과의 차이는 현저했다.

"필리버스터가 민생법안을 위한 것? 실제로 세어봤다! 한국당의 새카만 속마음. 자신들이 대표 발의한 법안까지도 막아선 한국당! 속이 빤히 보이는 수법에도 '여야 공방' 프레임을?"

유튜브로, 유튜브로 달려가는 작금의 시청자들은 이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시사/보도 외 분야에서도 <시사직격>과 같은 '안일함'이 곳곳에서 감지된다는 사실일 것이다.
 
 KBS 유튜브 채널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의 한 장면.

KBS 유튜브 채널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의 한 장면. ⓒ KBS

 
그간 언론은 '기계적 균형'만으로, 여야 대결을 그저 중계하는 것만으로 비판을 피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작금의 시청자들은 '그 보다 더'를 원한다. 여야가, 진영이 첨예하게 갈리고 대립하는 사안에 대해 팩트를 기반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주길 원한다. 특정 진영을 편들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한 '정치함'은 화기애애한 '술자리 토크'로 쉬이 도출될 수 없다.

KBS 보도국 엄경철 신임 보도국장은 최근 출입처 제도 폐지 혹은 개혁을 천명했다. 공영방송 KBS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제대로 시작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계적 균형'이 '의도적 균형'으로 나아가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공영방송 KBS에 바라는 건 그거다.

참고로, 미래미디어연구소는 지난 11일 한국언론학회 회원 451명이 참여한 '2019 미디어 어워드' 결과를 발표했다. KBS는 신뢰성 부문 5위였다. 지난해 2위였던 걸 감안하면 급전직하라 할 수 있다. 또 공정성은 5위 밖이었고, 유용성도 5위, 미디어 영향력은 3위였다. 이 조사는 9개 방송사(KBS·MBC·SBS·YTN·연합뉴스TV·JTBC·TV조선·채널A·MBN), 발행 부수 기준 상위 5개 신문사(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경향신문·한겨레), 인터넷신문사 1개(노컷뉴스) 등이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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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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