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오리라> 포스터

<그날은 오리라> 포스터 ⓒ (주)씨맥스이앤씨

 
허안화는 멜로나 스릴러, 액션 같은 장르영화가 주를 이루는 중화권 영화계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감독이다. <심플 라이프>, <황금시대>를 통해 잔잔함 속에 삶의 의미와 정취를 담아내며 특유의 연출력을 선보였다. <그날은 오리라>는 일본의 홍콩점령을 배경으로 시대를 위한 용기와 희생을 보여준다. 오락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감독이 지닌 장점인 드라마적인 완성도에 주력한다.
 
여성 항일 운동가 방고(方姑)의 전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1941년 홍콩이 일본에 강제 점령당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세 주인공은 마치 운명처럼 민족 해방 전선에 뛰어든다. 이들의 임무는 일본의 감시를 받고 있는 800여 명의 학자와 문화인들을 홍콩 밖으로 구출하는 것이다.
 
문화에는 그 민족만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이 정체성이 담긴 예술작품은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탄압과 차별에 맞선 투쟁심을 증폭시킨다. 이에 일본은 문화예술인들을 잡아들이며 정신적인 자긍심을 말살시키고자 한다. 이에 맞선 청년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투쟁을 보여주지만 그들 사이의 공통된 정서를 통해 동질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날은 오리라> 스틸컷

<그날은 오리라> 스틸컷 ⓒ (주)씨맥스이앤씨

 
청년들을 이끌며 무력투쟁에 앞서는 류흑자는 총과 칼을 쥐고 일본군을 무찌른다. 혼자의 힘으로 다수를 처리하는 건 물론 위기상황에서 센스 넘치는 아이디어로 고난을 극복하는 모습은 오락적인 재미를 준다. 감영은 일본 헌병 대좌 밑에서 일하며 항일단체에 정보를 넘기는 임무를 수행한다. 겉보기에는 연약해 보이지만 굳은 마음으로 적진의 한가운데에 서있다.
 
팡란은 교사 일을 그만두고 항일단체에 들어간다. 어쩌면 어머니와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행복한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었던 그녀는 모든 걸 포기하고 항일운동에 전념한다. 이들의 마음에는 조국을 향한 헌신과 함께 두려움의 정서가 자리 잡고 있다. 팡란은 기르던 토끼가 어머니에게 잡아 먹힐까봐 숲에 풀어줄 만큼 여린 마음을 지니고 있다. 항일투쟁을 하겠다는 팡란에게 어머니가 처음 하는 말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여린 마음을 지닌 그녀가 향하는 길이 너무나 거칠고 위험하기에 어머니는 만류하고자 한다. 한밤 중 길거리에서 여성들을 잡아 강간하고 죽이는 일본군의 모습은 그런 공포를 가중시킨다. 팡란의 마음은 갑자기 굳세어지지 않는다. 어머니를 뒤로 하고 유격대로 갈 때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날은 오리라> 스틸컷

<그날은 오리라> 스틸컷 ⓒ (주)씨맥스이앤씨

 
하지만 민족해방이란 사명 앞에 발걸음을 옮긴다. 이는 감영 역시 마찬가지다. 팡란의 연인으로 그녀에게 프로포즈까지 한 감영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겁이 많은 성격이지만 사명을 위해 사랑과 목숨을 뒤로하고 임무를 수행한다. 팡란과 감영, 류흑자는 서로에게 빠지며 삼각관계의 모양새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해방이란 목표를 위해 그 감정을 잠시 접어둔다. 시대의 급류에 휩쓸린 젊은이들에게 사랑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허안화 감독은 긴장감이 넘치는 연출이나 폭발적인 액션, 서로의 정체를 속고 속이는 스파이물의 매력 등 오락적인 요소를 적재적소에 담아내지 않는다. 대신 각 인물들이 지닌 목표와 정신을 진한 드라마로 보여준다. 정적인 연출 사이에 액션은 화려함을 보여주고 비장한 드라마 속 시대의 아픔 때문에 이별과 죽음을 경험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눈시울을 자극한다.
 
<그날은 오리라>는 같은 아픔을 간직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작가이자 민족운동가였던 심훈의 시 '그 날이 오면'을 연상시키는 제목은 어느 국가나 지배와 탄압 속에서 독립과 해방을 향한 시대적 요구가 수반됨을 보여준다. 소재를 통한 흥미의 유발이 아닌 시대의 정신을 강렬한 주제의식으로 담아냈다 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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