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기자말]

"전 솔직히 엄마가 변호사랑 선보라길래 저랑 선을 왜 보시나 했어요."

올 한 해 가장 화제가 됐던 드라마 중 하나인 KBS <동백꽃 필 무렵>. 극 중 규태(오정세)는 자영(염혜란)과 선을 보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는 규태와 자영이 얼마나 커플로서 '어울리지 않는지'를 표현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 커플, 드라마 주인공인 동백(공효진)-용식(강하늘) 못지않은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말았다. 사실 내겐 예쁘기만 한 동백-용식 커플보다 지지고 볶으며 사랑하는 자영-규태 커플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매력적이었다.
 
도대체 '선보기에도 가당찮은' 이 커플은 어떻게 서로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또, 이혼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사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동백꽃 필 무렵>의 자영-규태 커플의 사랑에 담긴 심리기제를 살펴본다.

'빈틈'이 부러웠던 자영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를 둔 변호사 자영과 지방 지주의 아들인 안경사 규태. 두 사람은 배경도 성격도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다. 같은 입시학원을 다닌 자영과 규태는 청소년기부터 확연히 다른 삶을 살았다. 자영은 그야말로 똑똑한 모범생이었다. 반면 규태는 자영의 말대로 "공부 빼고 모든 걸 다 한" 말썽꾸러기 학생이었다.

자영이 규태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입시학원에 다니던 시절부터다. 엄마를 속이고 말썽을 피우다 들통 난 규태가 학원까지 쫓아온 엄마에게 크게 야단을 맞던 날. 자영은 규태를 곁눈질로 바라보며 슬쩍 미소 짓는다.

왜 자영은 이런 규태의 모습에 매력을 느낀 것일까.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내면에 서로 대립되는 성향들을 모두 지니고 태어난다. 하지만, 삶의 조건이나 환경에 따라 이 중 어느 한 쪽의 성향만을 발달시키고 다른 쪽은 억압한 채 살아간다. 대표적인 예가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칼 융이 말한 아니마-아니무스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이분화하는 문화적 전통 속에서 여성들은 자신 안에 있는 남성성인 '아니무스'를 억압한 뒤 여성성만 발휘하며 살아가고, 반대로 남성들은 자신 안의 여성성인 '아니마'를 억압시킨 채 살아간다. 때문에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늘 공허함을 느낀다. 그리고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성향을 통합시켜 보다 온전한 내가 되고자 애쓰며 살아간다.

빈틈없는 완벽주의자로 늘 똑 부러지게 행동해왔던 자영 안에도 분명 규태처럼 허술한 면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영은 똑똑함과 완벽함을 자신의 생존방법으로 선택함으로써 자유롭고 허술한 면을 억압한다. 이런 자영에게 어린아이처럼 말썽을 부리고, 거짓말을 해도 금세 들통이 나버리곤 하는 규태의 모습은 자신이 억압해 둔 자유로운 아이의 모습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자영의 무의식은 이런 규태를 통해 자신이 억압한 면들을 채워나가길 바랐을 것이다.

학창시절이 지나고 자영은 변호사가 된다. 성인이 된 자영의 주변에는 모두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발현시킨 똑똑한 완벽주의자들 뿐이었을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영은 규태의 '빈틈'과 '솔직함'이 더욱 그리웠을 것이다. 때문에 자영은 선 자리에서 "난 너여서 나왔어"라며 규태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먼저 청혼한 자영은 그 이유를 묻는 규태에게 "난 너랑 있으면 편해, 행간이 없잖아"라고 답한다. 이는 말과 행동의 이면을 따져보지 않아도 될 만큼 자유롭고 솔직한 규태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면들을 보완하고픈 욕구가 사랑으로 이어졌음을 잘 보여주는 대사였다.
 
 자영과 규태는 자신과 상반되는 상대방의 매력에 빠져 결혼을 결심한다.

자영과 규태는 자신과 상반되는 상대방의 매력에 빠져 결혼을 결심한다. ⓒ KBS

 
'엄마' 같은 익숙함을 선택한 규태

그렇다면 규태는 어땠을까? 규태는 일명 '마마보이'다. 외도를 한 남편과의 소원한 관계를 아들을 통해 보상받고자 했던 규태 어머니는 온갖 정성을 다해 규태를 양육한다. 지나칠 정도로 모든 것을 챙겨주는 양육방식은 규태의 의존성을 강화했을 것이다. 때문에 규태는 어머니에게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아이 같은 행동으로 결국 어머니 품으로 돌아와 통제당하는 일을 반복한다.

이런 규태에게 자영은 엄마 같으면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점을 지닌 완벽한 파트너였을 것이다. 연애시절, 자영은 마치 엄마처럼 축구클럽으로 규태를 데리러 가고, 함께 하룻밤을 보낼 땐 "칫솔 사"라고 일러줄 만큼 규태를 세심히 챙긴다. 엄마 없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규태에게 자영의 이런 모습은 오히려 익숙하고 편안했을 것이다.

게다가 자영은 자신이 발달시키기 못한 완벽함과 똑똑함, 독립성을 지닌 인물 아닌가. 규태 역시 자신도 모르게 이런 자영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보완하고자하는 욕구가 생겨났을 것이다. 엄마같이 자신을 보살피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줄 것 같은 파트너. 규태에게 자영은 심리적으로 매우 이상적인 파트너였음에 분명하다.

하지만 자신에게 부족한 면을 상대방을 통해 보완하려는 심리기제가 강하게 작동하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아무리 서로의 반대되는 면에 대해 끌렸다 하더라도 둘은 이성으로서 사랑을 갈망했을 테다. 그런데 규태의 아이 같은 면에 끌린 자영은 규태를 더욱 아기로 만들어 버리고, 반대로 규태는 자영을 엄마로 만들어 버린다.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이성관계가 아닌 '엄마-아들'같은 관계로 이들의 사랑은 변질되어 간다.

게다가 상대방에게 끌렸던 바로 그 지점은 내가 발휘하지 못하는, 나의 약점이 아닌가. 연애하면서 잠시 보았던 모습은 매력이지만, 결혼을 한 후 매일같이 상대방을 통해 드러나는 나의 약점을 본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 되어버린다. 때문에 자영은 규태의 아기 같은 허세에 치를 떨고, 규태 역시 자영의 완벽함에 숨이 막힌다. 상대방에게 끌렸던 바로 그 매력이 상대방이 '미치도록 싫은' 이유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거리를 두자 보이는 자신의 모습 
 
 규태는 자영과 이혼조정기간을 가지면서 관계의 파탄에 자신이 기여한 바를 깨닫는다.

규태는 자영과 이혼조정기간을 가지면서 관계의 파탄에 자신이 기여한 바를 깨닫는다. ⓒ KBS

 
그렇게 둘은 이혼에 이른다. 하지만 서로 떨어져 거리를 두고 지내자 관계의 파탄에 기여한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먼저 자신을 돌아본 쪽은 규태다. 심란한 시간들을 거치면서 규태는 자신이 자영에게 '남편'이 아닌 '아들'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솔직하게 자영에게 말한다.

"당신도 여자하고 싶었을 텐데 맨날 엄마노릇 하게 해서 미안해. 근데 당신이 나 혼내는 마음도 사랑이었듯이, 내가 죽어라 개기는 마음도 사랑이었어. 당신 앞에서 나도 좀 남자하고 싶었어. 그래서 더 못나졌던 거 같아. 미안해."

34회 규태의 이 발언은 정말 놀라운 통찰이었다. 사랑했던 자영과의 관계가 엉망이 되어버린 이유를 정확하게 꿰뚫고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 규태. 그는 이때부터 자신에게 참견하는 어머니를 밀어내고 보다 독립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자영에게 대신해주길 바랐던 점을 스스로 실천함으로써 한 단계 더 성숙해간다.

자영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본다. 겉으로는 여전히 툴툴대지만, 규태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은 자영은 '까불이'로 오해받는 규태를 적극 변호한다. 마지막 회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던 자영이 동백을 찾아가 술을 마시며 자신의 약한 내면을 드러내는 장면이 나온다. 실컷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한 없이 망가지는 자영. 이는 그동안 강하고 완벽한 모습 뒤에 감춰두었던 자신의 약하고 자유로운 모습을 마침내 수용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즉, 자영 역시 규태를 통해 얻고자 했던 '자유로움'을 스스로 체현해낸 것이다.
 
 상대방을 통해 충족하려했던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체현해 내면서, 규태와 자영은 마침내 서로에게 남자와 여자가 된다.

상대방을 통해 충족하려했던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체현해 내면서, 규태와 자영은 마침내 서로에게 남자와 여자가 된다. ⓒ KBS

  
이 커플이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랬다. '남자하기'를 바랐던 규태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술에 취한 자영이 있는 집에 들어간다. 그리고 소파에 쓰러져 있는 자영에게 다가가 "누나. 홍자영!"이라고 이름을 부른다. 아마도 자영은 이 때 '남자 규태'의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관계에 자신이 행한 몫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약점을 수용해 보다 온전한 한 사람이 되어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분명 이후에는 훨씬 더 행복한 커플로 살아갔을 것이다.

이렇듯 자영-규태 커플은 사랑에 빠지는 심리적 기제와 그 함정을 극복하고 각자가 성장해 서로를 진정한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너무나 잘 보여주었다. 둘의 첫 만남 때 규태가 가졌던 의문 "저랑 선을 왜 보시나 했어요"에 대한 답은 자명하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상대를 통해 인식하고, 이를 나 자신 안에 수용해냄으로써, 보다 온전한 한 사람이 되어가기 위해' 이들은 만났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도 누군가를 만나고 싸우고 이별하며, 다시 사랑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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