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1박2일 ⓒ kbs2

 
정준영을 시작으로 김준호, 차태현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 1박2일 > 시즌 3를 더 이상 이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 1박2일 > 시즌 3는 종영했고, 다음 시즌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제 아무리 일요일 밤 스테디셀러라 해도, 재기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몇 달이 흐른 뒤 시즌4가 다른 멤버들을 앞세운 채 시청자들을 찾아왔다. 연정훈, 김선호, 딘딘, 문세윤, 라비, 그리고 김종민까지. 방위 소집 기간을 제외하고 1박 시즌 내내 생존했던 김종민은 그렇다 치고, 최근 먹방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낸 문세윤 정도만이 예능에서 익히 봐왔던 인물이었다.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을 보인 딘딘이라지만 차라리 한가인의 남편으로 더 잘 알려진 연정훈이 익숙할 정도로 눈에 익은 얼굴은 아니었다. 김선호나 라비는 예능 분야에선 거의 신인과도 같다. 중장년층이 주 시청자인 점을 감안했을 때, 출연자 대부분이 생소한 인물들이었다. 과연 저 사람들을 데리고 일요일 밤 메인 예능 진행이 가능할까, 우려가 앞섰다. 

명불허전 까나리부터 

그런 우려 때문이었을까? 오전 6시 30분 KBS 본관 앞에서 시작하는 오프닝에 참여하기 위해, 더 이른 시각 각자의 차량에 탄 멤버들의 손에 쥐어진 건 다름아닌 미션이 적힌 종이였다. 첫 번째 미션은 타고 있던 차에서 내려 단 돈 만원만 가지고 오프닝 장소까지 시간에 맞춰 도착하는 것이었다. 

시즌 4를 시작하는 제작진의 묘수는 바로 < 1박2일 >다움이었다. 출연진이 누구건, 심지어 일반인이라도 피해갈 수 없었던 그 < 1박2일 > 특유의 가차없음이 시즌4를 열었다. 제작진은 그 '1박2일다움'으로 멤버들의 낯섬을 넘어서고자 했다. 

그렇게 숨을 헐떡이며 추레한 모습으로 오프닝 장소에 도착한 이들 앞에 낡은 트럭 한 대가 등장하고, 두 트럭의 승차를 가를 200개의 아메리카노와 까나리카노가 등장한다. 언제나 그렇듯 미션은 명쾌하다. 아메리카노를 먹으면 통과, 심지어 연달아 먹으면 두 배, 당연히 까나리가 걸리면 탈락이다. 예외는 있다. 까나리카노를 다 마시면 아메리카노와 같은 경우로 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 시즌을 통틀어 봤을 때, 그것을 버텨낸 사람은 찾기 어렵다.

드디어 시작된 까나리 미션. 첫 타자인 라비는 당연하게 '본능적'으로 뱉고 만다. 그런데 반전은 두 번째 미션 멤버였던 '딘딘'부터였다. 올해 하반기에 운이 좋다는 자화자찬이 무색하게 딘딘은 첫 번째 아메리카노를 순탄하게 넘기고부터 연속으로 까나리가 걸렸다. 그런데 그걸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셨다.  

나중에 차에 탄 그의 말처럼, "아들이 < 1박2일 >에 들어가서 걱정되고 좋아서 하루 세 번  기도하신다"는 어머님 때문이었을까? 딘딘은 무려 한번도 아니고 두번, 세번에 걸쳐 까나리를 원샷하며 까나리 미션의 새 장을 열었다. 제작진의 얼굴은 그가 까나리를 원샷할 때마다 굳어져 갔다. 당연히 < 1박2일 > 역사에선 고려해 보지 않았던 가능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름부터 낯선 '딘딘'이란 청년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난처한 처지를 뚫고 시작한 < 1박2일 > 시즌4의 가능성이 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 1박2일 >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무한도전>의 정신이 논바닥을 헤집던 <무모한 도전>이었듯이, < 1박2일 > 역시 혹한이든 혹서든 그 어떤 조건에서도 주어진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멤버들의 '헝그리 정신' 아니었을까. 그게 강호동이었든 이수근이었든, 김준호였든 시즌을 상관없이 힘들어 하면서도 '최선'을 다했던 모습, 그게 바로 일요일 저녁이면 사람들이 무람없이 채널을 KBS2로 고정시킨 '본류'가 아니었을까.

바로 그 '1박'의 정신을 시즌4의 신입 멤버 딘딘이 까나리를 거뜬하게(?) 세 잔이나 원샷하며 새로이 부활시켰다. '과연 시즌3의 그 최악의 구설수를 저 낯선 멤버로 극복할 수 있을까'란 우려를 '까나리 원샷'으로 대번에 불식시켰다. 두 번째 미션자 딘딘이 그러다 보니, 그 뒤의 멤버들도 본의 아니게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연정훈은 최연장자라 체면을 차려야 해서 마시고, 유세윤은 먹방의 대가답게 마시고, 예능 뽀시래기라는 김선호는 안절부절하다 마시고, 유일하게 시즌을 경험했던 김종민만 빼고. 모든 멤버들이 한두 잔, 심지어 세 잔까지 마시며 시즌4의 새로운 공기를 만들어냈다. 물론 까나리를 원샷한 덕분에 이어진 휴게소 화장실 레이스는 문세윤의 천연덕스런 중계와 함께 '애교'가 되었다.  

낯설지만 어느덧 친근해진 멤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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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 못하던 사이라 오프닝에서 데면데면하던 이들은 단 한 번의 까나리 먹방으로 대번에 동지애를 얻는다. 나이가 많다지만 어쩐지 어수룩하며 힘든 상황에서 나이 핑계를 대며 뒤로 물러서지 않는 연정훈에, 추임새하며 중계방송에 심지어 진행까지 능숙한 문세윤은 <맛있는 녀석들>의 먹방러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와 함께 거의 '만담'에 가까운 콤비 플레이에 뭐든지 일단 '해보고' 보는 '딘딘'은 첫 회만에 정겨운 느낌을 준다. 아직 카메라가 낯선 김선호의 뽀시래기한 어색함과 초조함, 그럼에도 잘 해보려는 모습은 새 시즌의 정서를 한껏 살리고, 막내 라비의 똘끼는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반전'의 묘미가 있다. 무엇보다 멤버들 각자가 예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꾀부리지 않고, 애써 웃기려 하기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 인상 깊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김종민. 방송은 왜 김종민이 거의 전 시즌에 '출석'할 수 있었는가를 첫 회에 다시 보여준다. 선배라 나서지 않고, 그러면서도 예의 까나리 먹방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어느 틈에 저 새로운 멤버 중 한 명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 어떤 시즌의 멤버들과도 이물감 없이 어울리는 것이야 말로 김종민의 장기가 아닐까.

그렇게 어느 틈에 어우러진 김종민과 함께 불과 몇 십 분 만에 이 낯설었던 멤버들을 향해 익숙하고 친밀한 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만드는 < 1박2일 >의 동질감이 놀랍다. 까나리를 비롯한 전통적 미션의 익숙함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그건 독불장군 강호동도, 이방인 김c도, 머쓱대던 김주혁도, 심지어 생전 처음 본 일반인 참가자까지 그 모두를 < 1박2일 >이라는 용광로 속에 잘 추스려 냈던 '전통'의 '제조 방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전통은 소중하다. 하지만 전통을 이어가는 건 쉽지 않다. 버릴 것과 지켜야 할 것에 대한 그 경계가 늘 어렵기 때문이다. 시즌 4의 첫 회를 연 < 1박2일 >은 버려야 할 과거는 과감히 버리고, 낯설지만 새로운 그러나 익숙한 전통의 줄 위에 섰다. 첫 회만에 멤버들 면면이 벌써 친근해 졌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출발이다 싶다. 물론 갈 길은 멀다. 하지만 한 걸음을 잘 걸어냈으니 앞으로의 길도 기대해 볼만 하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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